주간동아 733

2010.04.27

“본전이 어디냐” 펀드 환매 봇물

주가 1700선에 뭉칫돈 대거 이탈 … 수수료 챙기고 배짱 튕기던 펀드판매사들 긴장

  • 조충현 한국펀드투자연구소 소장 smcon@naver.com

    입력2010-04-20 11:2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본전이 어디냐” 펀드 환매 봇물
    학수고대(鶴首苦待).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이 목을 길게 뺀 ‘학의 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2007~2008년 펀드 열풍이 한창일 때, 돈 좀 벌어보겠다며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의 마음이 꼭 이와 같다. 그들은 투자금이 반 토막 나는 아픔을 겪으며 종합지수 1700포인트가 되기를 학수고대했다. 마침내 원하는 지수가 되자 환매를 요구하는 투자자가 몰리면서 대량 환매가 현실화하고 있다.

    금융업계는 대량 환매가 지속되면 행여 시장에 충격을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3월 주식형펀드에서 2조7385억 원이 순유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4월 들어서는 종합지수 1700포인트를 상회하던 2일(5003억 원)과 5일(5307억 원) 이틀간 모두 1조여 원이 빠져나갔다. 이는 금융투자협회가 펀드자금 유출입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6년 6월 이후 하루 순유출 규모로는 역대 두 번째이며 3년 3개월여 만에 최대치다.

    자산운용업계는 펀드 환매의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집합투자위원회는 긴급회의 후 ‘주식형펀드 환매 특별대책반’을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향후 환매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수요기반 확대 및 우호적인 펀드 판매환경 조성방안 등을 정책 당국에 건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분주한 움직임과 달리 투자자들은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서 불안해하는 상황이다.

    이틀간 1조 원 환매 러시, 역대 두 번째

    최근의 환매 러시는 예상했던 일이다. 금융투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2007년 7월부터 2008년 8월까지 13개월 동안 코스피지수 1700~1800선에 6조3000억 원이 유입된 것을 포함, 1700선 위에 그동안 쌓인 물량이 25조 원 이상으로 분석됐다. 이 자금 대부분이 금융위기 이전 ‘묻지 마’ 투자 열풍이 불었던 시기에 들어온 것이다. 본의 아니게 장기투자가 된 자금으로 투자자들은 원금만 회복하면 시장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리적으로 불안하면 언제든 대량 환매로 이어질 수 있는 자금인 것.



    국내 주식형의 경우 고점에서 거치식으로 목돈을 넣어둔 투자자는 여전히 손실이 난 상태지만, 전체 유입액의 80%에 이르는 적립식펀드 투자자는 최근 주가상승에 힘입어 평균 10~20%의 수익률을 거두고 있다.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은행 정기적금에 비하면 괜찮은 수익이다. 최근 대량 환매 물량에는 이 같은 심리적 요인 외에 실물지표를 근거로 한 매물도 적지 않은데, 향후 경제 전망을 밝게만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일단 환매해 현금으로 확보해두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펀드업계는 이제 수수료만 챙기는 염치없는 집단이란 불명예를 벗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간 펀드업계는 수수료를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됐을 뿐, 투자자가 투자금 손실로 아픔을 겪는 것은 애써 외면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수익감소와 주가침체에 얽매이지 말고 이번에야말로 사태의 본질을 읽는 노력이 절실한 때다.

    “본전이 어디냐” 펀드 환매 봇물
    펀드업계를 바라보는 투자자의 눈은 차갑기만 하다. 무조건 오른다며 가입에만 열을 올렸지, 환매 타이밍이나 교체 매매시점을 알려주기 위한 노력은 거의 없었다. 올 1월 정부가 수수료를 내리려 펀드판매사 이동제를 실시했지만, 실제 판매수수료를 낮춘 펀드는 5개에 그쳤다. 이런저런 구실과 비협조로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 펀드의 남발, 펀드매니저의 잦은 교체, 불투명한 판매수수료·보수체계 등 펀드 시장의 고질적인 병폐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부동자금 새로운 투자처 찾아 이동

    “본전이 어디냐” 펀드 환매 봇물
    한국의 펀드 순자산은 세계 14위지만 펀드 수는 단연 1위다. 펀드매니저는 1인당 평균 9개의 펀드를 관리한다. 심지어 1명의 펀드매니저가 40개 이상을 관리하기도 한다니, 일반 투자자로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나마도 매니저가 수시로 바뀐다. 매니저의 운용철학이 반영될 틈이 없는 것이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수수료와 보수체계는 또 어떤가. 정률제 수수료 체계도 손볼 대목이다. ‘소액 투자에는 아주 적은 수수료’ ‘고액 투자에는 지나치게 많은 수수료’를 받도록 돼 있어서 고액 투자자를 위한 서비스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본시장법에서 도입을 검토했다가 뒤로 미룬 펀드슈퍼마켓을 비롯한 판매채널 다양화 방안을 정식으로 거론할 때가 됐다.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경쟁이 불가피하다. 다양한 판매채널 도입이 시급하다. 외국인과 대기 매수층이 두터운 지금, 최소한의 충격으로 판매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는 기초를 놓아야 한다.

    대규모 펀드 환매로 빠져나간 돈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기웃거리고 있다. 머니마켓펀드(MMF), 예탁금,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증시 주변에서 머물고 있으며 이 같은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금리인상 가능성에도 채권에 돈이 몰리는 현상 또한 나타나고 있다. 부동자금이 몰리는 향후 방향이 금융시장 구도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펀드에서 이동한 자금이 ‘랩어카운트(Wrap Account)’로 방향을 틀고 있는 점은 새롭게 주목할 부분이다. 랩어카운트는 펀드와 달리 투자자의 성향이나 시장변화에 따라 주식 등 자산의 비중을 수시로 조정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이는 펀드처럼 펀드매니저에게 막연히 투자하기보다는 자신이 일정 부분 투자에 참여하고, 수시로 점검하겠다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많은 투자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펀드의 속성을 깨닫게 됐다. 이들을 다시 시장으로 끌어들이려면 펀드업계가 소비자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과감하고 신속하게 전환해야 한다. 지금 투자자들은 대량 환매를 통해 업계의 변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임시방편적인 얘기만 되풀이하면 환매 러시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본전이 어디냐” 펀드 환매 봇물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