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3

2010.04.27

대남 3개월 전략…北風 저지르나

북한, 선거 앞두고 한바탕 소란 가능성 …가뜩이나 어려운 남북관계 더 경색될 듯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입력2010-04-20 1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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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계획(plan)을 신봉하는 사회주의 국가다. 1990년대 동유럽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쇄 붕괴에 따른 경제위기 이후, 여러 분야의 정책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마음먹은 대로 성과를 내는 능력(competency)은 크게 떨어졌지만 지도부가 우선순위를 두는 국방 등 중요 분야의 정책은 여전히 계획적으로 수행된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한의 대북 정책이 바뀌면서 북한 대남 정책의 긴장도가 높아졌고, 이는 다양한 형태의 대남 도발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북한의 대남 정책도 치밀한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최근 “올해 초 제3국에서 북한의 대남 정책 실무자가 ‘우리 대남 정책은 3개월마다 바뀐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이 발언은 북한 지도부가 3개월을 내다보고 대남 정책을 수립해 실행한 뒤 평가하고, 또 3개월 계획을 세운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 대남 정책을 ‘복기’해보면 이 발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북한은 2008년 1월 1일자 신년 공동사설에서 이명박 당선자가 6·15공동선언과 그 실천 강령으로서 10·4선언을 지키라고 한 뒤 3월 말까지 대략 3개월 동안 관망했다. 그러다 4월 1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이 대통령의 선거공약이던 ‘비핵·개방·3000 구상’을 전면 반박한 뒤, 6월까지 약 3개월 동안 새 정부의 대북 정책 개요를 조목조목 비난했다.

    그 후 3개월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7월 1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8월 중순 추정), 김 위원장의 당 창건 60돌 기념행사 불참(9월 9일) 등으로 혼란스럽게 지나갔다. 이어진 3개월(2008년 10~12월)은 북한이 금강산과 개성공단을 오가는 육로 통행을 제한, 차단한 ‘12·1조치’를 단행한 기간으로 구분된다. 이 시기 북한의 움직임은 최근 북한의 금강산 및 개성공단 위협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양한 형태로 대남도발 자행



    당시 남북군사실무회담 북측 대표단은 10월 2일 판문점에서 실무회담을 자청, 남측 대표단에게 군사분계선 통행을 제한할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남한 민간단체들이 김 위원장의 사생활 등을 담은 대북 전단(삐라)을 날리고, 남한 당국이 이를 방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북측은 수거한 전단을 자루 가득 담아와 남측 대표단 앞에 쏟아놓고 험담을 퍼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상황은 알려진 대로다. 북한의 당과 군, 내각 등은 한목소리로 남한의 대북 정책을 성토한 뒤 12월 1일자로 통행제한 및 차단조치를 단행했다.

    올해 4월 초 북한이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혼란에 빠진 남한 정부를 금강산 부동산 동결조치와 개성공단 통행차단 위협으로 압박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2008년 10월 당시 상황과 지나치게 유사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4월 10일 남북장성급회담 북측 대표단장 명의의 통지문을 남측에 보내 “남측 인원들의 동·서해지구 북남관리구역 통행과 관련한 군사적 보장합의를 그대로 이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정식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해지구 통행은 개성공단으로 가는 육로 통행을 말한다. 이에 앞서 북한은 8일 명승지개발지도국 명의의 성명을 내고 금강산 내 남측 부동산 동결 등 4개항의 조치를 발표한 뒤 “(향후 남측의 태도 여하에 따라) 개성공업지구 사업도 전면 재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이 올해 1~3월 금강산 및 개성관광 재개를 위한 대남 공세에 주력하다 4월 초 갑자기 개성공단 위협을 들고 나온 것은 ‘대남 3개월 계획’에 개성공단 이슈가 추가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육로 통행을 차단할 수 있다고 위협하면서 그 명분으로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을 문제 삼고 나온 것은 2008년 10월과 똑같다. 북한은 지난해 8월 고(故) 김대중 대통령 빈소에 조문단을 파견한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등 대남 유화공세를 펴면서 9월 12·1조치를 대부분 해제했다. 최근 발언은 이를 되돌리겠다는 뜻이다.

    이 조치가 ‘3개월 계획’에 따른 것이라면 올해 상반기의 마지막인 6월까지 지속될 프로그램이 이미 마련돼 있다는 뜻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북한이 6월 2일 실시되는 남한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성공단에서 한바탕 소란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4~6월 남북한의 접촉면인 금강산과 개성공단에서 긴장을 고조시켜 집권당인 한나라당의 표를 떨어뜨리고 정부의 대북 정책 전환을 꾀하겠다는 의도가 큰 것으로 관측된다.

    금강산관광은 2008년 7월 11일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 이후 만 21개월이나 중단된 상태였지만 개성공단에서는 여전히 120개 남측 기업이 조업을 하고 있어 다시 통행이 차단될 경우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한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은 “과거와 같은 통행 차단 사태가 다시 벌어지면 바이어들의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는 등 타격이 클 것이 분명하다”며 “벌써부터 입주 기업들의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정부도 북한의 공세 가능성을 대비해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4월 10일 북한의 통지문 발송 이후 정부는 일부 민간단체에 대북 전단 살포 자제를 권고했다. 정부는 또 육로로 방북하는 국민에 대한 방북 교육을 강화하고, 북측이 체제 유지에 위협이 된다고 오해할 수 있는 물품을 방출하지 않도록 검색을 강화했다.

    그러나 북한이 6월까지 계획대로 금강산과 개성공단에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의도한 정치적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천안함 침몰에 대한 북한 개입설이 커지는 가운데 금강산과 개성공단에서 긴장을 조성할 경우 남한 보수층의 결집을 가져와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득세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등 과거 햇볕정책을 주장하던 이들의 입지는 그만큼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과거 선거 때마다 보수층을 도왔던 ‘북풍’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제적 비난과 제재 강화

    대신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 고위 당국자는 “남북 간 육로 통행 제한 차단도 한 번은 넘어갈 수 있었지만 똑같은 일이 반복되면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해 북한도 나중에 발뺌할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4월 13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출석해 “개성공단도 중단될 수 있지 않느냐”는 진영 한나라당 의원의 우려에 대해 “(북한이) 개성공단이 잘되는 방향으로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훼손으로 가면 남북관계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98회 생일인 북한 최대 명절 ‘태양절’에 서해에 빠진 천안함 함미를 인양, 본격적인 진상규명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에는 미국과 호주 등 온 국제사회가 동참했다. 만일 북한이 국제사회의 이름으로 천안함 침몰의 주범으로 지목된 상황에서 ‘대남 공세 3개월 계획’을 그대로 강행한다면 국제적 비난과 제재의 강화에 따른 혹독한 다음 3개월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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