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7

2010.03.16

아랍인, 감옥에서 인생을 배우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예언자’

  •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입력2010-03-10 1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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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인, 감옥에서 인생을 배우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예언자’로 거장의 길을 예약했다.

    한 소년이 첫 번째 살인을 명령받았을 때는 부들부들 손을 떨었지만, 두 번째 살인 지령 때는 자신만의 지략으로 조직의 보스가 된다. 남들은 학교에서 인생을 배울 기간인 6년 동안 아랍인 말릭은 감옥에서 인생을 배운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예언자’는 감옥판 ‘대부’인 동시에 동족을 살해한 채 고난의 연대기를 통과하는 한 선지자의 수난기다.

    ‘예언자’는 캐릭터의 구성과 인물에 접근하는 태도에서 영화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영화는 철저히 감옥에 갇힌 주인공 말릭의 시선을 견지한다. 심지어 말릭이 그를 조종하는 코르시카 갱 세자르의 협박에 눈을 다치면 카메라의 화면도 제한된다. 그러나 영화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오버하지는 않았다. 푸른색으로 도배된 감옥은 말릭에게 선생님이자 친구이자 전쟁터이며, 편견의 벽 자체인 프랑스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감독은 넘치는 감상이나 각 잡힌 범죄 장르의 클리셰(clich´e·너무 많이 반복돼서 진부해진 것)에 빠지지 않고 150분 동안 한 인간에 대한 깊이 있고 세밀한 탐구서를 선보인다.

    예를 들어 말릭이 처음 감옥에 들어왔을 때 꼬깃꼬깃 접어 운동화에 넣었던 지폐를 보자. 출소할 때 구겨진 지폐를 바라보는 말릭의 감회는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된다. 첫 번째 살인을 연습하는 동안에는 혀 속에 면도날을 넣고 피를 흘린다. 단언컨대 이 작품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의 교과서가 될 것이다. 아버지 미셸 오디아르처럼 감독 자신도 시나리오 작가 출신임을 고려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욕설과 협박, 총알이 오가고 마약 밀매가 이뤄지는 살벌한 환경 속에서도 영화는 서정적인 기운을 잃지 않는다. 빈번히 등장하는 장면인 말릭이 창밖을 내다보는 옆얼굴에서는 가녀린 희망의 빛이 읽힌다. 영화에서는 때론 사슴이, 때론 바다와 하늘이 나타나고, 때론 말릭이 죽인 아랍 사내가 유령이 돼 면도날에 베인 목의 상처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기이하게도 이런 서정성과 환상성은 감옥이라는 현실과 자연스럽게 섞여 죄책감, 호기심, 존재론적 고독감 등 말릭의 복잡한 내면과 결합한다.

    그러면서도 ‘예언자’는 이슬람 문화를 바탕으로 한 비밀을 곳곳에 숨기고 있다. 영화 속 말릭은 이슬람교도의 처지에서 보면 이슬람을 이끌 일종의 예언자다. 단, 특별한 예언자가 아닌 도처에 은밀히 존재하는 내공 있는 사람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말릭의 피 묻은 손, 피 묻은 티셔츠는 그가 소명과 자의식을 갖기 이전의 죄로 물든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그가 마침내 세자르의 수하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단을 내리고 살인의 지령을 어긴 채 독방에 갇혔을 때, 그는 예수나 모하메드처럼 ‘40일’이란 상징적인 고행의 시간을 거쳐 비로소 이슬람 조직을 이끌 수 있게 된다.



    자크 오디아르는 날카로운 메스로 프랑스 사회의 아랍인에 대한 편견과 오만을 적확하게 해부했다. 동시에 현재 이슬람의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이슬람교도들의 투쟁의 역사에 포개놓았다. 개체 발생의 연대기에 계통 발생의 역사를 포갠 것이다.

    ‘예언자’는 올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세자르 영화상 등 9개 부문을 휩쓸었다. 자, 이제 아카데미 영화제는 ‘예언자’에 어떤 점수를 내릴까. 아카데미가 ‘예언자’에 마지막 월계관을 씌워주지 않더라도 자크 오디아르는 거장의 길을 예약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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