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6

2010.03.09

댁에도 ‘밤보초네’[큰아기]가 있습니까?

伊 부모들, 독립 않는 성인 자녀들 때문에 한숨과 탄식

  • 로마 = 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입력2010-03-04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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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댁에도 ‘밤보초네’[큰아기]가 있습니까?

    영화 ‘마마보이’의 한 장면. 요즘 이탈리아에는 20대는 물론 30대, 심지어 40대가 돼서도 부모 둥지를 떠나지 않은 이들이 수두룩하다.

    요즘 이탈리아에서 ‘큰아기’란 뜻의 신조어 밤보초네(Bambocione)가 유행이다. 그만큼 부모에게 기대 살며 애 노릇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는 20대는 물론 30대, 심지어 40대가 돼서도 부모 둥지를 떠나지 않은 마마보이가 수두룩하다.

    레나토 브루네타(Renato Brunetta) 공공관리부 장관이 “성인이 되면 부모 집을 떠나도록 법(‘마마보이 규제법’)으로 규정하겠다”고 발표하고 나서면서 전국이 시끄러워졌다. 불씨는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 시 법원이 제공했다. 이혼한 아버지가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32세 딸에게 생활비를 계속 대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 13년째 대학을 다니는 만년 대학생으로,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했으므로 생활비를 대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부모가 언제까지 자식을 부양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마마보이 규제법’을 만들겠다고?

    독립을 슬금슬금 미루는 ‘큰아기’ 현상은 이탈리아의 큰 골칫거리 중 하나다. 한 유명한 가구회사는 ‘큰아기’ 현상을 광고 테마로 이용하기도 했다. “대폭 할인해줄 테니 밤보초네, 독립해”라는 슬로건 아래 아기 옷을 입고 우유병을 입에 문 30대 남성을 모델로 등장시킨 것.

    ‘마마보이 규제법’을 제안한 브루네타 장관도 사실은 밤보초네 출신이다. “이탈리아에 마마보이, 마마걸이 많은 것은 젊은이들에게 사회 참여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한 부모들 잘못’이라고 지적한 그 또한 서른 살에 독립했는데 그때까지 침대 정리조차 할 줄 몰랐다고 한다. 브루네타 장관만이 ‘큰아기’ 출신은 아니다.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에 따르면 정치인들의 독립 연령 조사 결과 이냐치오 라 루사(Ignazio La Russa) 국방부 장관은 27세에, 루카 자이아(Luca Zaia) 농림부 장관은 30세에 밤보초네를 청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 국립통계청 이스탓(ISTAT)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18~39세의 약 72.9%가 부모와 함께 살고 20.8%만 독립했다. 그리고 독립한 사람도 결혼(43.7%)과 동거(11.8%)가 주요 동기이고 자립의 필요성을 느껴서는 28.1%, 취업인 경우는 8.8%에 불과했다.

    2003년도만 해도 전체 인구의 47.7%였던 큰아기의 수가 급증하고, 연령 폭이 40대까지 확장된 주요 원인은 취업난과 주택난이다. 계약직이 많다 보니 수입이 불안정하고 부모 세대에 비해 사회 진출이 수년간 늦어지고 있다. 게다가 턱없이 비싼 집값이 큰 부담이다. 10년 전에는 7년 6개월 치 월급을 모으면 주택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지금 로마에선 14년 치 이상 월급을 모아도 거실에 방 하나짜리 미니 아파트를 살 수 없다. 전셋집도 마찬가지. 웬만한 월급은 몽땅 월세로 나갈 판이다. 그러니 공과금과 생활비 부담 때문에 부모에게 얹혀사는 게 더 경제적이란 계산이 나온다. 불황으로 청년 실업률이 증가하자 ‘큰아기’는 더욱더 많아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50대 후반까지 누구나 ‘젊은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관념이 실제 자신의 나이를 인식하지 않는 피터팬형 ‘큰아기’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결혼 적령기가 없어지고, 일자리를 중시하는 여성이 늘어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이탈리아 부모들의 자녀 사랑은 유별나다. 유럽에서 ‘이탈리아 엄마’란 표현은 헌신적인 엄마를 뜻하는 대명사로 쓰인다. 모권이 강하다 보니 ‘엄마 치마에 매달린 아들’이라는 뜻의 ‘맘모니(mammoni)’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는 이탈리아 엄마들은 아침마다 다림질한 와이셔츠를 대령하고 식사 때마다 따끈한 파스타를 준비한다. 이러다 보니 엄마만 한 신붓감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 연중 파업이 난무하는 이탈리아에 유일하게 파업을 안 하는 직업이 바로 가정주부다.

    불황으로 큰아기 현상 고착화 우려

    ‘큰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은 ‘마마보이 규제법’에 반색할 것 같지만 오히려 회의적이다. “18세면 아직 너무 어려 세상 물정을 모르는데 어떻게 집에서 나가게 해요”라며 품안에 끼고 살겠다는 캥거루 엄마가 있는가 하면 “계약직이라 경제적 능력이 안 돼 독립을 못 시켜요”라며 한숨짓는 엄마도 있다. 최근 라이(RAI) 방송 TV 프로그램에는 40세 넘은 의사인 큰아기를 위해 아침에 에스프레소까지 대령하는 엄마의 모습이 방영됐다. 그 엄마는 “우리도 자유를 찾고 싶어요”라고 하소연하면서도 “애인과 자주 헤어지는 아들이 동거할 생각도 결혼할 생각도 없어 보여 돌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반면 밤보초네인 아들은 “이보다 더 좋은 삶이 어디에 있느냐”라며 반색한다.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요즘 세대의 특징인 것이다.

    이탈리아 엄마들은 정부가 법 제정에 급급하지 말고 밤보초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큰아기’ 문제는 부모에게 의존한다는 심리적 문제보다 사회 구조적, 경제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직장을 잡은 사회 초년생에게 조세 부담을 덜어준다든지, 전세금을 지원해준다든지 하는 식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22~30세 젊은이에게 월 210유로씩 4년간 월세 지원을 해주는 스페인과 학생 신분으로 동거나 결혼하는 경우 연간 5500유로까지 월세 지원금을 주는 프랑스를 벤치마킹하자는 것. 그러나 이것은 이탈리아 젊은이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브루네타 장관은 최근 마마보이들을 독립시키기 위해 매달 500유로씩 지원금을 책정하자는 획기적인 제안을 했다. 그러나 퇴직 연금자들의 연금을 깎아 마마보이들을 독립시키자는 아이디어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반대로 좌초됐다. 슈퍼맨 같은 정치가가 나타나 대안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큰아기 현상은 고착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또 하나 비상이 걸렸다. 리턴(return)형 밤보초네가 늦게나마 자유를 찾은 부모들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양육비 지불로 거덜 난 이혼남들이 다시 짐을 싸서 부모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결혼해서 가정 꾸리는 것’이 가장 평범한 인생 여정인 것 같지만, 자식 둔 이탈리아 부모들에게는 점점 누리기 힘든 축복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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