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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김지은의 Art & the City

수영복 벗어던진 빅사이즈 ‘핀업걸’

톰 웨슬만의 ‘Nude’

수영복 벗어던진 빅사이즈 ‘핀업걸’

수영복 벗어던진 빅사이즈 ‘핀업걸’

‘Nude’, oil on canvas, 61x66cm, 1979

이 여인, 뜨거운 태양 아래 캘리포니아 해변을 누볐던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아직도 작열하는 태양 빛은 미처 걸러지지 않은 듯, 창가의 푸르스름한 블라인드를 통해 방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벗어던진 수영복 때문에 과감하게 노출된 가슴은 붉은색 젖꼭지로 인해 한층 더 노골적으로 보입니다. 눈, 코가 사라진 얼굴에 남아 있는 육감적인 입술은 붉은 커튼 앞에 배치된 활짝 핀 꽃과 비슷한 색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여성의 누드는 고전회화의 단골 주제지만 톰 웨슬만의 ‘Nude’(1979)에는 우리가 ‘고상함’이라 부르는 그 어떤 요소도 없습니다. 그는 잡지나 옥외 광고, TV, 영화 등 대중매체 속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핀업걸(Pin-up Girl)’ 이미지를 작품에 차용함으로써, 너무 흔해 진부하기까지 한 미국인의 일상 속 성적 판타지를 드러내는 듯합니다. 육체적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젊은 여인이 쾌적한 공간에서 마음껏 자신의 성공을 즐기는 모습을 묘사한 ‘위대한 미국의 누드(Great American Nudes)’ 시리즈는 1960~70년대 막강한 미국의 경제력과 충만한 성적 자유, 팽창일로에 있던 소비주의 문화 등 전후 미국이 이룬 성과에 대한 완벽한 은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형태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도전입니다. 작품 속 누드 여성은 실제보다 엄청나게 큰 사이즈입니다. 후반기로 갈수록 신체 전체를 묘사하기보다는 지금 보는 것처럼 신체 부위를 확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압도적인 사이즈는 관람자의 에로틱한 연상을 막으면서, 누드가 아닌 분할된 색면 그 자체로 더 공격적으로 대담하게 호소합니다. 즉 짙푸른 꽃병이나 진초록 소파가 금발 머리나 가무잡잡한 피부와 동일한 요소로 관객에게 다가간다는 거죠.

그는 ‘여인(Woman)’ 시리즈로 유명한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윌렘 드 쿠닝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에도 전혀 다른 양식을 택했습니다. 드 쿠닝이 파괴적이고 거친 화면으로 여인의 모습을 거의 추상에 가깝게 해체한 반면, 톰 웨슬만은 누드의 형상을 유지하고 몬드리안적인 정갈함을 지키면서도 추상표현주의 못지않게 기존의 회화가 가진 문법을 파괴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가 다룬 것은 전통적인 누드, 정물, 실내 풍경이었지만 원근법을 없애 공간감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결국 회화의 평면성을 성취했다는 거죠. 평면성이야말로 회화가 회화이게 하는 조건으로, 모더니즘 회화가 그토록 추구했던 덕목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클래스 올덴버그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졌지만, 톰 웨슬만을 모르고는 미국의 팝아트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3월7일까지 63스카이아트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러브 앤 팝아트’전에서 팝아트 거장들의 작품과 톰 웨슬만의 또 다른 작품들을 놓치지 말길 바랍니다.



주간동아 2010.02.16 724호 (p120~120)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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