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9

2010.01.12

가슴 시린 608일 러브 스토리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

  • 왕상한 서강대 법학부 교수 shwang@sogang.ac.kr

    입력2010-01-06 16: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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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 시린 608일 러브 스토리

    김영균 지음/ 김영사 펴냄/ 301쪽/ 1만2000원

    2009년 9월1일, 영화배우 장진영이 위암 투병 끝에 생을 마감하고 팬들의 곁을 떠났다. 투병 중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다”고 꿋꿋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죽음을 예상할 수 없었기에, 무엇보다 작품마다 열연했던 그녀가 다시 환한 미소로 스크린에 등장하길 바라는 기대가 컸기에 그녀의 사망 소식은 영화계뿐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충격과 안타까움을 주었다.

    영화배우 장진영은 알아도 그녀의 남편 김영균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 이 책은 장진영과 김영균의 사랑을 담았다. 운명을 예감한 첫 만남부터 예기치 않았던 위암 진단, 예정된 이별을 앞두고 영원을 약속한 결혼식, ‘부부’라는 이름을 얻기 위한 혼인신고, 그리고 4일 후 다가온 마지막 작별의 순간까지 그들의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608일간의 사랑이 때로는 웃음 짓게, 때로는 눈물겹게 새겨져 있다.

    “지금은 선명하게 모두 기억하지만 언젠가 내 기억도 흐려지겠죠. 그게 싫습니다.” 저자가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책으로 출간한 이유다. 그녀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남자는 그녀가 남긴 말 한마디와 동작 하나까지 기억하려 애쓰며 첫 만남부터 이야기를 풀어냈다.

    김영균이 장진영을 만난 것은 2008년 1월. 한동안 사업에 전념하느라 연애할 시간조차 없던 그가 사업을 안정 궤도에 올려놓고 있을 무렵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는 사이 마흔을 넘긴 그가 이유를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느끼고 있을 때 지인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영화배우 장진영을 소개해주기로 한 것.

    저자는 첫 만남부터 그녀가 ‘내 여자’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여배우와 인연을 만드는 데는 여러 장애가 뒤따랐다. 스캔들에 휘말려 그녀가 곤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늘 조심스럽게 만나야 했으며, 그녀에게 집착하는 스토커의 협박 문자에 그녀 몰래 밤새 그녀의 집을 지켜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사랑에 조심스럽던 그녀의 마음을 여는 일이었다. 그러나 수영을 못하는 그가 그녀를 위해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하고, 기꺼이 아침을 챙겨주는 요리사가 되는 정성으로 그녀의 마음을 열었고 마침내 사랑은 시작됐다.



    그녀가 위암이라는 예기치 않은 소식을 접한 것은, 이대로 깨어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던 연애 9개월 무렵이었다. 복통을 호소하는 그녀의 증상이 심상치 않아 종합검진을 받은 결과 이미 위암 4기였다. 수술 후 5년 내 최고 생존율 10%. 김영균은 믿어지지 않는 진단 결과 앞에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신에게 기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잠깐 회복하는 듯했던 그녀의 건강은 점점 나빠졌고, 의사는 그녀가 곧 떠나게 될 것임을 알렸다.

    암이라는 무서운 병 앞에서 현실적 선택을 위해 헤어지는 많은 연인과 달리, 그는 옆에서 그를 지켜본 의사의 말처럼 ‘30년 해줄 사랑을 1년에 모두 해주려는 듯’ 진행 중인 사업 프로젝트를 중단하며 그녀 곁을 지켰다. 이별이 예정돼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에게 영원을 약속한 결혼을 선물했고, 떠나기 4일 전 혼인신고로 ‘아내’라는 이름을 줬다.

    책에는 김영균과 장진영이 주고받은 마음, 편지와 문자 그리고 함께 찍은 사진들이 담겨 있다. 건강 상태가 악화돼가는 연인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는 그에게 오히려 “내 사랑 울지 마요. 내가 많이 미안해요. 열심히 치료해서 꼭 나을게요. 내가 나중에 행복하게 해줄게요”(2009년 8월1일)라며 위로한 그녀의 문자나, 혼인신고를 했다는 말에 눈물을 쏟고는 “영균 씨, 당신한테 너무 고마워요. 당신이 없었으면 어떻게 이 공포를 견딜 수 있었을까. 상상이 안 가. 내 마음 알죠?”라고 한 그녀의 말은 코끝을 시리게 한다.

    무엇보다 가슴 시린 것은 그가 정성스럽게 간직한 결혼식 사진이다. 라스베이거스의 한 결혼식장에서, 평소보다 마른 모습이지만 하얀 원피스에 빨간색 장미 부케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짓는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30일 전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그 환한 미소가, 그 아름다운 사랑이 너무 빨리 멈춰야 했다는 사실은 더없는 안타까움을 준다.

    그녀와의 사랑이 전해진 뒤 많은 사람이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저자의 사랑이 분명 한 배우를, 한 여자를 향한 사랑이었음에도 저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 것은 ‘진정한 사랑’이 소설이나 영화 속이 아닌 현실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줬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담긴 이 책은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말처럼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에게, 사랑이 서로를 지키지 못하고, 서로를 갉아먹는 사람들에게 분명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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