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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빙글빙글 놀라운 ‘도넛 세상’

열전도율 높이는 최적의 환경 … ‘도넛 메주’부터 핵융합 토카막 ‘도넛’까지

  • 이정아 동아사이언스 기자 zzunga@donga.com

빙글빙글 놀라운 ‘도넛 세상’

빙글빙글 놀라운 ‘도넛 세상’

도넛은 생활음식부터 첨단 우주기기까지 다양한 원리에 적용된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쫀득한 베이글이 생각나는 겨울이다. 쫄깃쫄깃해서 그냥 먹어도 맛있고, 치즈를 바르거나 계핏가루를 솔솔 뿌려 먹어도 그만인 베이글은 원래 유태인이 2000년 전부터 먹던 빵이다. 꼭 400년 전인 1610년 폴란드에서 베이글은 도넛 모양으로 다시 태어났다. 당시 터키와의 전쟁에서 불리한 처지였던 오스트리아는 폴란드에게 기마병을 지원받은 덕에 승리했다. 오스트리아 왕은 감사의 뜻으로 유태인 제빵업자를 시켜 말을 탈 때 발로 디디는 등자(독일어로 뷔겔, b··ugel)처럼 생긴 빵을 만들어 폴란드 왕에게 선물했다. 바로 베이글이다.

베이글의 친구, 도넛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 난 이유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해진다. 약 150년 전 미국의 한센 그레고리는 도넛이 골고루 익지 않아 늘 가운데를 파내는 버릇이 있었는데, 커다란 배의 선장인 그는 배를 운항하면서 구멍 낸 도넛을 먹던 중 폭풍을 만나자 급한 대로 조타 장치의 튀어나온 부분에 도넛을 꽂고 폭풍을 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구멍 뚫린 도넛이 널리 알려졌고.

도넛이나 베이글의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데는 과학적인 이유도 있다. 도넛은 대개 베이킹파우더로 반죽을 부풀린 뒤 모양을 잡아 즉시 튀겨 만드는데, 가장자리는 잘 익는 반면 가운데는 설익기 쉽다. 이때 그레고리가 그랬듯, 중간의 두툼한 부분을 없애면 설익은 부분 없이 튀길 수 있다. 결국 도넛은 ‘도넛 모양’인 덕분에 빵 전체가 고르게 익는 것이다.

빙글빙글 놀라운 ‘도넛 세상’

‘한국형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장치(KSTAR)’도 도넛 모양 토카막을 사용한다. KSTR 진공용기 내부.

우주에 떠 있는 ‘도넛 집’ 멀지 않아

베이글도 마찬가지다. 대개 빵을 만들 때는 반죽을 오븐에 넣고 높은 온도(220℃)에서 굽지만, 베이글은 반죽을 오븐에 굽기 전에 끓는 물에 한 번 데친다. 베이글도 가운데가 두꺼우면 가장자리보다 덜 익어 빵이 완성된 뒤 맛이 떨어진다. 빵에 구멍을 뚫으면 열전도율이 높아져 골고루 익힐 수 있다.



가운데가 뻥 뚫린 모양의 덕을 톡톡히 보는 것은 도넛과 베이글만이 아니다. 전북 순창에서 빚는 고추장 메주도 그중 하나다. 맛있는 전통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에서는 처서(8월23일쯤)에 멥쌀과 콩을 섞어 도넛 모양의 고추장 메주를 만드는데, 이 시기는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아 발효시키기 좋지만 동시에 부패하기도 쉽다. 그래서 고추장 메주를 재빨리 건조시켜 발효균이 잘 자라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도넛 모양으로 빚는다. 도넛 모양 메주는 긴 줄에 꿰어 처마 밑에 매달 수 있어 말리기도 편하다.

사람과 우주가 더 가까워지는 날에는 거대한 ‘도넛’ 안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SF 영화에 나오는 우주정거장은 대부분 도넛 모양이다. 지구의 네모난 건물과 달리 우주정거장 모양이 이렇게 특별한 이유는 우주 공간이 무중력 상태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도넛 가운데를 중심으로 우주정거장이 빙글빙글 회전하면 원심력이 생기면서 중심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인공 중력’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구멍과 가까운 면이 천장, 바깥쪽 면이 바닥이 돼 우주정거장 밖에서 보면 사람들이 벽을 타고 걷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건설된 우주정거장의 모양은 어떨까. 1973년 미국이 발사한 스카이랩, 1986년 러시아가 발사한 미르, 미국과 러시아 등 16개국이 참여해 건설 중인 국제우주정거장(ISS)은 도넛 모양과 거리가 멀다. 우주정거장은 부품을 우주까지 끌어올린 뒤 조립하는데, 현재 기술로는 도넛 모양의 구조물을 건설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크고 무거운 부품을 쉽게 우주로 운반하는 우주왕복선이 개발되는 미래에는 도넛 모양의 우주정거장이 탄생하지 않을까.

핵융합 장치인 토카막에도 ‘도넛’이 들어 있다. 핵융합은 태양에서처럼 원자핵 몇 개가 합쳐지면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려면 1억℃ 이상으로 뜨거운 플라스마를 토카막 안에 가둬야 한다. 토카막은 자기장을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 플라스마를 이 안에 빙글빙글 돌려 가둔다. 2007년 건설된 ‘한국형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장치(KSTAR)’도 도넛 모양 토카막을 사용한다.

머리 지탱 도넛 뼈, 윙크하는 근육

날 때부터 도넛 모양인 것도 있다. 우리 몸에도 도넛처럼 생긴 세포, 근육, 그리고 뼈가 있다. 혈관을 타고 몸속 구석구석을 다니는 적혈구는 ‘가운데가 막힌 도넛’이다. 구멍은 뚫려 있지 않지만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 있어서다. 적혈구가 일반 세포처럼 둥근 모양이 아닌 이유는 핵이 없기 때문. 이런 모양은 산소를 싣는 부분의 표면적이 넓어져, 산소를 ‘퀵서비스’ 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적혈구는 폐에서 산소를 싣고 온몸을 다니며 세포에 산소를 주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실어 폐로 돌아온다. 적혈구는 넓은 통로인 동맥과 정맥을 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적혈구의 지름(7m)보다 좁은 모세혈관을 지나간다. 적혈구는 도넛 모양인 덕에 빈대떡처럼 유연하게 비틀리면서 좁은 혈관도 쑥쑥 지나간다.

적혈구는 뼛속에 가득 찬 부드러운 조직인 골수에서 조혈모세포로 태어난다. 조혈모세포는 적혈구로 분화하면서 핵이 사라지고 가운데가 움푹 팬다. 그런데 100개 중 1~2개꼴로 핵이 사라지지 않은 적혈구(미성숙한 적혈구)가 탄생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적혈구가 전체의 1~2%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질환을 진단한다. 혈액 속에 미성숙한 적혈구가 1~2%보다 많을 경우, 빈혈이나 염증, 백혈병 등으로 적혈구가 적게 생성됐거나 파괴돼 부족한 양을 채우기 위해 몸이 적혈구를 많이 만들었다고 추측한다.

도넛을 닮은 근육은 얼굴에 모였다. 눈을 둥글게 감싸는 도넛 모양의 근육 ‘눈둘레근’은 오므렸다 폈다 하는 기능을 한다. 대개 근육은 넓적한 면에 있어 뼈를 수평으로 움직이는데, 눈둘레근은 힘을 주면 오므라들고 힘을 빼면 다시 펴진다. 덕분에 눈을 떴다 감았다 할 수 있다. 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게 하는 입둘레근도 입 주변을 둥글게 감싼다.

뼈에도 ‘도넛’이 있다. 척추의 맨 위에 있는 제1 척추 ‘아틀라스’다. 가운데에 구멍이 난 아틀라스는 막대기에 걸린 도넛처럼 제2 척추에 꽂혀 있다. 덕분에 사람은 머리를 숙이거나 회전시킬 수 있다.



주간동아 2010.01.05 718호 (p66~67)

이정아 동아사이언스 기자 zzung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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