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3

2009.12.01

영국 신사가 전해주는 한국과 한국 문화

  • 런던=전원경 객원기자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09-11-30 1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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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신사가 전해주는 한국과 한국 문화
    “유현목 감독은 특별하다. 그는 멜로물을 만들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멜로물이 한국 영화의 큰 축이었음을 감안하면 상업적인 감독은 결코 아닌 셈이다. 그는 또 새로운 영화의 개척자였다. ‘수학여행’에서 그는 처음 서울에 온 시골아이들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고도 따스한 시선으로 그리는가 하면, ‘오발탄’에서는 전후(戰後)의 서울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족을 묘사하면서 결코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를 부각하지 않는다.”

    이 리뷰를 쓴 사람은 놀랍게도 한국인이 아니라 영국인, 그것도 영화 전문가가 아니라 순수한 아마추어 애호가다. 세계 금융계의 중심지인 런던 시티지역의 한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필립 고우먼(47) 씨가 그 주인공. 부드럽고 침착한 태도가 돋보이는 전형적 ‘영국 신사’인 그는 2006년부터 런던에서 열리는 한국 관련 행사들과 각종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런던 코리안 링크’를 열고 인터넷의 ‘한국 알리미’로 맹활약 중이다.

    그의 웹사이트 ‘런던 코리안 링크’(http://londonkoreanlinks.net)에는 한국과 관련된 정보가 다양하게 실려 있다. 최근 런던의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봉준호 감독 특별회고전 같은 행사는 물론 세르비아와 한국 국가대표팀의 축구 경기, 런던을 방문한 재즈 가수 나윤선과 트로트 가수 김수희의 소식, 심지어 북한 망명자들이 영국 의회에서 증언한 뉴스까지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고우먼 씨가 한가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한창 근무 중일 때는 단 10분의 전화통화도 어려울 정도다. 그처럼 바쁜 그가, 더구나 한국과는 아무 연고도 없는 그가 어떻게 한국 문화에 푹 빠져들게 된 것일까.

    “저는 원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피아노를 연주하고,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고, 수공예 책을 만드는 과정도 배웠죠. 그러다 10년쯤 전에 제가 다니는 회계법인에서 한국의 한 은행 런던 지점 개설을 돕게 됐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조금씩 한국인과 한국이라는 나라에 호기심이 생겼죠. 또 한국 영화를 보게 되고, 한국인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2006년에 웹사이트를 열고 난 뒤부터는 여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취미를 모두 포기하게 됐습니다.”



    몇 명의 도우미가 있긴 하지만 웹사이트의 기사 절반 이상은 고우먼 씨가 직접 쓴다. 그러니 최소 하루 한 번은 새로운 기사를 써야 한다.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다”는 그의 말이 엄살이 아닌 셈. 그의 웹사이트에는 하루 1000명가량의 누리꾼이 방문한다. 최근에는 점점 그 수가 늘고 있는 추세다.

    “기사를 쓰면 쓸수록 단신보다 좀더 깊이 있는 기사를 쓰고 싶어집니다. 그러니 늘 시간이 부족하죠. 아무래도 제가 약간 미친 건가 싶기도 해요.(웃음)”

    그는 최근 들어 한국에 대한 런던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늘어나는 것을 체감한다고 전했다. 특히 한국 영화제를 찾는 관객 수가 많아졌다고.

    “가끔 한국 감독들과 관객들의 만남의 자리 같은 행사가 열립니다. 그 자리에서 영국 관객들이 한국 감독에게 질문을 하는데, 그 질문의 내용이 점점 깊이 있어지더군요. 영국에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는 이창동, 임권택, 임상수 감독을 좋아한다.

    “나 자신에게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이 세 감독의 영화는 생각할 여지를 줌과 동시에 재미도 있죠.”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도 보통이 아니지만 고우먼 씨가 최고로 꼽는 한국 문화는 음악, 그중에서도 현대음악과 결합한 전통음악이다.

    “사물놀이가 가진 현대적 감각에 놀랐습니다.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해서도 좀더 많이 알고 싶어요. 언젠가는 직접 종묘제례악 실연을 들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출장차 또는 짧은 휴가를 이용해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다. 그가 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로 꼽는 곳은 해인사.

    “절 안에 가득한 평화로운 분위기가 잊히질 않아요. 이런 기억 때문에 한국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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