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3

2009.12.01

다양한 시선으로 본 미국의 역사

샘 듀랜트의 ‘청교도 이야기 : 자연사’

  • 김지은 MBC 아나운서·‘예술가의 방’ 저자 artattack1@hanmail.net

    입력2009-11-30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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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시선으로 본 미국의 역사

    Sam Durant, Natural History Parts 1~4, 2007, Multimedia installation

    18~19세기 복장을 하고 곤봉을 든 유럽인들과 무릎을 꿇고 있는 인디언. 조악하게 만들어진 이 밀랍인형은 현재 문을 닫은 플리머스 국립밀랍인형박물관에 전시됐던 것들입니다. 작가 샘 듀랜트(Sam Durant·48)가 인형들과 이를 찍은 사진들을 미술관에 옮겨놓았는데요, 그는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영국에서 미국으로 온 102명의 청교도가 가장 먼저 발을 디딘 항구도시인 매사추세츠 플리머스 출신입니다. 이곳은 인구 4만5000여 명의 작은 도시지만, 미국의 역사를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코스로 알려져 있죠. 작가는 그동안 하나의 렌즈로만 봐온 미국 역사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제작한 것이 바로 ‘청교도 이야기 : 자연사’(2007)입니다.

    샘 듀랜트는 이 작품에 ‘역사’ 대신 ‘자연사’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승자의 시각으로 본 왜곡된 역사에서 탈피, 자연사처럼 객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맨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빵과 옥수수를 먼저 살펴볼까요? 매년 11월 셋째 주 일요일은 미국의 명절 중 하나인 추수감사절입니다. 1621년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신대륙에서 첫 수확을 한 청교도들이 하느님에게 감사하고, 옥수수 경작법 등 신대륙 생활에 실질적 도움을 준 인디언을 초대해 추수한 곡물을 나눠먹던 풍습에서 비롯된 명절이죠.

    하지만 작가는 추수감사절이 인디언 처지에서 보면 ‘비탄의 날’일 수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당시 청교도들이 나눈 것은 빵이 아니라 인디언의 뼈였을 수 있다는 거죠. 실제로 옥수수 경작법을 알려준 원주민 추장 마사소이트는 잔인하게 살해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또 당시 청교도들에게 인디언의 문화를 수용하고 그들을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주장하고, 인디언들에게는 부당한 대우에 강력히 저항할 것을 종용한 개혁가 토머스 모튼은 플리머스 민병대의 습격으로 솔라스 섬에 버려진 뒤 가까스로 영국으로 탈출했지요. 그가 운영하던 유토피아적 공동체 ‘메리마운트’가 초토화된 것은 물론이고요. 작가는 미국이라는 마차가 자랑스러운 청교도 역사와 부끄러운 인디언 수난사라는 2개의 바퀴로 굴러갔음을 먼지 덮인 밀랍인형의 입을 빌려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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