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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꽃보다 드라마 09

“어설픈 ‘타깃 마케팅’ 한류 죽일라”

‘겨울연가’ 윤은경 작가 “공감 가는 내용, ‘진심’ 다해 만들어야 성공”

  • 윤은경 드라마 작가 zonca@naver.com

“어설픈 ‘타깃 마케팅’ 한류 죽일라”

“어설픈 ‘타깃 마케팅’ 한류 죽일라”

첫사랑이라는 소재엔 국경을 뛰어넘는 ‘공감’의 힘이 있다. ‘겨울연가’의 성공도 그래서 가능했다.

2004년 초봄 무렵, ‘낭랑 18세’라는 드라마를 쓰고 있을 때 일이다. 마지막회 대본을 앞두고 정신없는 와중에 뜻밖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일본 NHK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것이었다. ‘일본? NHK?’ 바빠 죽겠는데 웬 장난전화인가 싶어 끊으려는데 정말이란다. 그렇게 해서 만난 NHK 프로듀서는 예상 밖의 이야기를 전했다. 일본 열도에 ‘겨울연가’ 열풍이 불고 있다는 것이었다.

‘겨울연가’ 성공비결은 첫사랑의 힘

‘겨울연가’가 일본의 위성TV에서 방송된 뒤 꽤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머나먼 바다 건너 일본 땅에서 인기가 있어봤자 얼마나 있으랴 싶었다. 작품 준비 때문에 바쁘기도 해서 한동안 잊고 지내는 사이 주연배우 배용준은 ‘욘사마’가 됐고, 촬영지였던 남이섬과 춘천은 일본인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가 돼가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NHK 공중파 방송을 마치고 열린 종방연에서야 그 열기를 실감했다. 5000명도 넘는 사람이 NHK홀을 메운 채 ‘겨울연가’ 주제가를 따라 부르는 모습은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었다. 그 믿기 어려운 열기에 사람들은 ‘한류’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겨울연가’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대단했다. 2002년 방송 당시 5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SBS 드라마 ‘여인천하’를 20%대로 끌어내리며 전국에 ‘준상이 신드롬’을 일으켰다.

준상 역으로 나온 배용준의 바람머리가 대유행했고, 너나 할 것 없이 배용준식 목도리 매기를 배웠으며, 극중 주요 소품인 ‘폴라리스’ 목걸이가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오히려 일본만 못했다. 도대체 일본에서 빅 히트를 친 비결이 뭐냐고 많은 이가 물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오히려 묻고 싶은 사람은 나였다. 일본인들은 왜 ‘겨울연가’를 좋아한 것일까?



당시 일본의 드라마는 20, 30대를 겨냥한 수사물이 주류를 이뤘기에 중장년층이 볼 만한 멜로드라마가 없었다는 나름 설득력 있는 이야기부터, 일본 남자들 중에는 배용준 같은 얼굴형이 없어 ‘블루오션’을 개척한 게 성공요인이라는 성형외과 전문의의 농담 섞인 분석에 이르기까지 ‘겨울연가’ 성공요인에 대한 생각은 참으로 다양하다.

기억상실증과 출생의 비밀처럼 강력한 한국적 클리셰(cliche ·진부한표현)의 융단폭격을 처음 맞은 일본인들이 그 세고 아찔한 맛에 잠시 넋이 나간 거라고 비아냥대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 처지에서 곰곰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은 ‘첫사랑의 힘’이었다. 바꿔 말하면 ‘공감 가는 설정의 힘’이라는 뜻이다.

첫사랑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죽은 줄 알았던 첫사랑이 10년 만에 눈앞에 나타난다는 설정은 첫사랑을 해본 사람들을 가슴 아련하게 만드는 ‘공감’의 힘이 있었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공감하게 하는 것. 맥 빠질 만큼 뻔한 소리이긴 하나, 모든 드라마의 기본 원칙이라고 볼 수 있는 이 명제가 지금의 ‘겨울연가’를 탄생시켰고, 한류를 만든 것이다.

수출용과 내수용 제작 실패, 교훈 삼아야

“어설픈 ‘타깃 마케팅’ 한류 죽일라”

한류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중압감으로 특정 시장만 겨냥해 제작한 작품들은 대개 실패했다. ‘대장금’의 성공은 한국적 소재로도 세계인의 공감을 살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런데 한류가 시들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겨울연가’ DVD는 일본에서 수십만장이 팔렸지만 이제는 꽤 괜찮다는 드라마도 1만장 판매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한류 드라마’의 상업적 성공에 힘입어 아예 한류시장을 겨냥해 드라마를 내수용과 수출용으로 구분해서 만들 만큼 공을 쏟았는데 왜 반응은 점점 시들해지는 걸까.

나는 바로 이 어설픈 ‘겨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만을 겨냥해, 또 중국만을 겨냥해 드라마를 만든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한평생 한국에서만 살았고, 한국 사람들을 위해 드라마를 만들어온 필자만 해도 아직 한국 시청자들의 복잡다단한 마음을 모르겠는데 말이다.

정말 재미있는 스토리라 생각하고 내심 잘 썼다고 자부하며 방송을 내보냈는데 쓴소리가 쏟아져나오기도 하고,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도 시청률은 고공행진을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내 나라 시청자들의 마음도 이토록 오리무중인데 어떻게 바다 건너 외국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짐작하며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겨울연가’나 ‘대장금’처럼 성공한 한류 드라마들은 모두 비교적 ‘사심’ 없이 제작됐다. ‘사심’이 없다 함은 특정 해외시장만 겨냥해 억지춘향 격의 ‘배려’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드라마라는 장르가 본디 상업적이기에 시청자를 향한 계산 없이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시청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더 좋아할까를 고민하는 것은 제작진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긍정적인 노력과는 별개로 ‘일본 시청자들이 이런 걸 좋아할 거야’라는 식의 어설픈 추측으로 집어넣는 설정은 배려가 아니라 오만이자 무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톱스타의 출연이, 기억상실증과 출생의 비밀이, 화려한 해외 촬영이 성공비결이라고 자꾸만 착각을 한다. 그렇게 착각한 많은 이가 ‘수출용’ 드라마와 ‘내수용’ 드라마를 구분해 만들기 시작했고 결과는 물어볼 것도 없이 실패로 귀결됐다.

한류의 경제적, 문화적 가치를 의심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그런 목적의식이 앞서서 드라마 만드는 이들의 발목을 잡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물론 방송사의 누군가는 일본 시장을 고려하고 수출의 득실을 따져가며 손익계산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진에게 그 짐을 지워서는 안 될 일이다. “이게 일본에 먹힐까” “아니야, 먹히지 않을 거야”라는 식의 이야기로부터 드라마를 시작하는 것은 너무나 서글픈 일이며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일이기까지 하다.

한류를 이어나가자는 깃발 아래 만들어진 ‘한류 맞춤형’ 드라마들이 얼마나 초라하게 사라져갔는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사실 한류가 한 차례 지나간 뒤,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이전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됐다. 제작비는 엄청나게 뛰어올랐고, 사람들의 눈높이 또한 올라갔으며, 방송국의 편성을 따기 위해 벌어지는 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살벌하다. 편성을 따려면 스타가 필요하고, 스타는 고액의 개런티를 요구한다.

제작사는 캐스팅을 위해 무리한 PPL(제품 간접광고)을 끌어오게 마련이고, 제작 지원에 참여하는 기업과 지방자치단체들은 본전 생각에 극의 배경과 등장인물 직업에까지 참견하려 든다. 절대로 PPL은 못한다고 작가 혼자 악다구니를 쓰기에는 제작사의 상황이 너무나 빤하고, 그렇다고 배우를 포기하자니 편성이 물 건너가게 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를 물고 연결되는 이 악순환이 어떻게 끊어질 수 있는지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토록 어려워진 제작환경 속에서 한류 드라마의 인기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는 것일까. 예전에 홍콩 영화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거품이 꺼진 뒤에는 한국 드라마 시장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까지는 우리 드라마가 지닌 긍정적인 힘을 믿고 싶다. 다만 제작진으로서 잊지 않아야 할 가장 큰 원칙은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것. 이 평범한 원칙이 한류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한류의 인기를 이어나갈 비법이라고 생각한다. 길은 늘 평범한 진리 속에 있다.

윤은경 작가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드라마 쓰기를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겨울연가’ ‘낭랑 18세’ ‘눈의 여왕’ ‘밤이면 밤마다’ ‘아가씨를 부탁해’ 등이 있다.




주간동아 2009.11.24 712호 (p42~43)

윤은경 드라마 작가 zonc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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