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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꽃보다 드라마 02

‘막장’의 질주 … 꽃미남 전성시대…

키워드로 정리, 2009년 한국 드라마 본색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이지연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chance@donga.com

‘막장’의 질주 … 꽃미남 전성시대…

  • 막장, 가족, 꽃미남, 여왕, 스피드라마, 대마불사(大馬不死)…. 올해의 한국 드라마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2009년엔 ‘아내의 유혹’으로 대표되는 막장 드라마부터 ‘선덕여왕’ ‘아이리스’ 등 대작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풍성하게 만들어졌다. 우리를 TV 앞으로 이끈 올해의 드라마를 키워드로 정리했다.
‘막장’의 질주 … 꽃미남 전성시대…
2008년 하반기부터 2009년 상반기까지 우리나라 드라마의 최대 화두는 ‘막장’이었다. 작품의 완성도나 일관성 등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오로지 자극적인 요소로만 채워진, ‘갈 데까지 간’ 드라마라는 뜻의 막장 드라마가 시청률 상위권을 독식한 것이다.

중장년층 시청자들은 KBS ‘너는 내 운명’, SBS ‘아내의 유혹’, MBC ‘에덴의 동쪽’을 봤고, 젊은 여성 시청자들은 꽃미남 고교생 왕자님들이 가득한 ‘10대판 막장’ KBS ‘꽃보다 남자’에 열광했다. 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 씨는 “막장 드라마 속 세계는 법과 원칙이 제거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돈과 권력의 힘으로만 굴러가는 세상에서 주인공은 짓눌리고 굴욕을 당한 후 끝도 없는 복수전에 들어선다. 하지만 이는 희망이나 비전을 위한 노력이 아닌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절망적 몸부림”이라며 “이런 막장 드라마를 띄운 건 올 초까지 이어진 경제난 때문인 듯하다”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정치·사회적 혼란 속에서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2009년 대중은 욕하고 짜증내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를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내의 유혹’으로 정점을 찍은 막장 열풍은 곧 수그러지기 시작했다.

칼럼니스트이자 드라마 전문웹진 ‘텐 아시아’의 고정 필진인 정석희 씨는 “비슷한 막장이 거듭되자 이후 작품들은 ‘아내의 유혹’처럼 시청자를 유혹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대신 사회문제를 경쾌하게 다룬 MBC ‘내조의 여왕’과 SBS ‘시티홀’, 가족 간의 사랑을 담은 ‘착한’ 드라마 SBS ‘찬란한 유산’이 큰 사랑을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드라마가 보여주는 배경이 막장 드라마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직장에선 권모술수가 만연하고(‘내조의 여왕’), 지역사회는 시장과 의원들이 마음대로 ‘말아먹으며’(‘시티홀’), 계모는 남편이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도 사망보험금을 독식하려 든다(‘찬란한 유산’).

하지만 막장 드라마와 결정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점은 주인공이 이러한 상황에 분노하며 개인적인 복수를 하려고 몸부림치지 않는다는 것. 이영미 씨는 “올해 중반 이후 정치·경제적 허무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대중이 평상심을 찾으면서 ‘막장’ 같은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데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것이 사회와 정치를 풍자한 드라마가 인기를 끈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가족 해체되고 복원되다!

이관희 프로덕션의 이관희 대표는 한국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소재를 꼽았다. 그는 “한국 드라마는 가족 간 갈등과 해소가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며 가족 구성원 간의 끈끈한 애증이 잘 드러나는데, 이는 다른 나라 드라마에선 보기 어려운 특성”이라고 말했다. 한류 드라마의 성공요인 역시 가족이라는 소재에 있다는 것. 올해에도 ‘찬란한 유산’ 등 가족을 중심에 놓은 작품이 많았다.

하지만 다루는 소재와 형식이 과거보다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SBS 드라마국 김영섭 CP는 “‘찬란한 유산’은 가족 간의 사랑과 성공이라는 긍정적인 주제의식을 전달하면서도, 극의 재미를 위해 복수와 미스터리 코드를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가족의 해체와 복원을 중점적으로 다룬 것도 올해 가족 드라마의 특징이다. 최근 20%가 넘는 시청률을 올리며 화제가 되고 있는 시추에이션 드라마(시트콤) MBC ‘지붕 뚫고 하이킥’은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뿐 아니라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확장’ 가족의 이야기를 위트 있게 다룬다.

한날한시 과부가 된 두 동서가 함께 살면서 겪는 갈등과 화해를 보여주는 KBS ‘다 함께 차차차’와 35년차 잉꼬부부, 10년차 권태기 부부, ‘속도위반’ 연상연하 부부 등 다양한 부부의 삶을 그리는 MBC ‘살맛납니다’도 인기. 솔약국집 네 아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아낸 KBS ‘솔약국집 아들들’은 최근 4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그러나 가족이 전면에 나서는 드라마는 주로 일일극이나 주말극에 한정된다. 일례로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은 주로 오피스텔 등에서 혼자 살지만, 일일극이나 주말극에선 3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이 반드시 등장한다. 정석희 씨는 “주말, 일일극에는 부모가 주인공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나타나지만, 미니시리즈에서는 카메오 수준에 머문다”며 “주요 시청자층이 다른 만큼, 다루는 세상도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꽃미남 청춘스타, ‘누나팬’ 사로잡다!

올해 TV 화면을 달군 가장 ‘핫’한 남자배우는 배용준, 권상우, 소지섭 등 톱스타가 아니라 ‘꽃보다 아름다운’ 신인 이민호였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 억지스러운 구성과 내용에도 큰 인기를 누린 것은 이민호를 비롯한 ‘F4’ 캐릭터가 가진 스타성 때문.

자기중심적이지만 순수하고 귀여운 구준표(이민호 분), 한없이 여주인공을 지켜주는 ‘키다리 아저씨’ 윤지후(김현중 분), 매력적인 바람둥이 소이정(김범 분) 등은 타깃 시청자인 10대뿐 아니라 20, 30대 여성들의 감성마저 자극했다.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씨는 “‘꽃보다 남자’의 흥행에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청춘 드라마의 부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꽃보다 남자’ 이후 수많은 ‘꽃미남’ 캐릭터가 나타났다. 이승기, 정윤호, 이홍기 등 아이돌 가수 출신 남성 연기자가 많아진 것도 젊은 여성 시청자를 겨냥한 측면이 크다. ‘선덕여왕’의 화랑들은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고, SBS ‘미남이시네요’는 ‘꽃미남’ 남성 밴드를 전면으로 다뤘다.

한편 ‘내조의 여왕’은 ‘꽃중년 신드롬’을 만들었다. 윤상현, 오지호, 최철호 등 30대 중후반의 중견 남자 탤런트들이 중후한 매력을 바탕으로 여성 시청자들을 설레게 했다. 이 트렌드는 ‘아이리스’의 이병헌으로 이어진다.

여왕 공주 넘어 여왕으로 … 여성 드라마 열풍!

올해는 특히 ‘세고 강한’ 여성이 많았다. ‘아내의 유혹’에서 시청자를 유혹한 건 구은재(장서희 분), 신애리(김서형 분) 2명의 기 센 여자였고, 중년들의 사랑과 갈등을 그린 KBS ‘미워도 다시 한 번 2009’에서도 여성 사업가로 성공한 한명인(최명길 분)과 국민배우 은혜정(전인화 분)이 이야기의 중심축이었다. 이 두 드라마에서 남성 캐릭터는 갈등의 원인이자 골칫거리, 방관자에 지나지 않았다. ‘내조의 여왕’과 KBS ‘공주가 돌아왔다’ 역시 생활력 강한 기혼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SBS ‘스타일’과 올해 최고 화제작 ‘선덕여왕’에서도 불꽃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여성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미실과 덕만은 왕이 후궁을 부리듯 수많은 남자를 거느린다. 정석희 씨는 “‘선덕여왕’의 미실과 덕만은 1300여 년 전 인물이고 ‘스타일’의 박 기자는 지금 이 시대의 인물이지만, 남자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지녔다”고 했다. 이문원 씨도 “‘선덕여왕’ ‘천추태후’ 등 올해는 특히 여성이 중심인물로 등장한 사극이 많았다”며 “덕만, 미실 등 실력 있는 여성 지도자가 정적으로 대립하며 성장하는 스토리가 요즘 시청자들의 기호에 맞는 것 같다”고 봤다.

스피드라마 ‘미드’처럼 빠르다!

‘선덕여왕’과 ‘아이리스’는 등장인물이 얽히고설켜 매회 다양한 에피소드가 펼쳐지고 빠른 줄거리 전개로 시청자를 빨아들이는 ‘미국 드라마’(미드)식 구성을 보이고 있다. 방송사 간 시청률 경쟁이 심해졌고, ‘프리즌 브레이크’ ‘CSI 과학수사대’ 등 긴장감 넘치는 상황을 보여주는 미드식 전개에 익숙해진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드라마 전개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는 것이 방송가의 분석.

‘막장’의 질주 … 꽃미남 전성시대…
대부분의 드라마가 매회 하나의 사건을 보여주는 데 비해 ‘미드’식 드라마는 한 회에 여러 사건을 담는다. ‘아이리스’ 6회의 경우 헝가리에서 남한 정보요원인 김현준(이병헌 분)이 탄 경비행기가 추락하고 미지의 인물이 나타나 그를 구조하는 스토리, 몸을 추스른 김현준이 헝가리를 탈출해 일본으로 떠나고 북한 공작원인 김선화(김소연 분)가 그를 따라가는 이야기, 김현준을 살해하는 데 실패한 김선화가 마침내 그에게 호감을 갖는 이야기까지 숨가쁘게 진행된다.

‘아이리스’ 제작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 한수민 대리는 “‘아이리스’는 기본적으로는 영화 같은 스토리를 추구한다. 회를 거듭할수록 이야기가 증폭되고, 이전 회에서 발생한 사건의 결과가 다음 회에 등장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선덕여왕’은 ‘사극은 느리다’는 편견과 달리 빠르고 복잡한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 드라마 홈페이지에 소개되는 등장인물만 35명에 이르며, 이 인물들이 매회 새로운 갈등구조를 선보인다.

이 작품의 박상연 작가는 “최근 국내 시청자들은 빠른 스토리 전개와 다양한 에피소드를 선호한다. 개연성을 담보하면서 빠른 전개를 보여줘야 하는 점이 작가에게는 딜레마가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선덕여왕’은 김영현·박상연 두 작가가 공동으로 집필한다. 박 작가는 “공동 집필이라는 형식도 ‘선덕여왕’이 미드와 유사한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미드는 ‘크리에이터’로 불리는 기획자를 중심으로 여러 명의 작가가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작품의 대략적인 틀을 잡고, 여기서 나온 내용을 기반으로 집필 작가가 대본을 완성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국내 드라마는 작가 한 명이 보조작가를 두고 기획, 취재, 집필 등 전 과정을 전담했다. SBS ‘천사의 유혹’도 ‘미드’식 전개를 보이는 드라마다. 이 작품을 쓴 김순옥 작가는 전작 ‘아내의 유혹’에서도 마치 ‘줄거리 요약판’을 보는 것처럼 속도감 있는 전개를 보여줬다.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드라마평론가)는 “드라마의 줄거리 전개가 빨라진 것은 ‘아내의 유혹’부터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천사의 유혹’은 주아란(이소연 분)이 복수를 위해 원수 집안의 아들 신현우(한상진 분)를 유혹해 결혼하고, 결혼 후 남편에게 불륜 관계를 들키고, 남편을 태우고 가다 차 사고를 내 남편이 크게 다치고, 사고를 남편이 낸 것처럼 위장하는 내용이 방송 2회에 모두 담겼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첫 회가 방영된 10월12일 10.3%를 기록한 데 이어, 11월10일 9회에서 18.3%로 치솟았다.

대마불사(大馬不死) 대작 드라마, ‘대박’ 나나?!

올해 하반기 최고 인기드라마는 ‘웰 메이드’ 대작인 ‘선덕여왕’과 블록버스터 드라마 ‘아이리스’다. ‘대마불사’ 공식이 현재까지는 두 작품에 그대로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선덕여왕’과 ‘아이리스’를 ‘대박’ 드라마로 분류할 수 있을까. 위의 표는 현장에서 뛰고 있는 방송사 및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 대중문화평론가 등의 의견을 바탕으로 만든 두 작품의 ‘중간평가서’다.



주간동아 2009.11.24 712호 (p18~20)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이지연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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