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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콘텐츠 왕국 日本 07

‘라쇼몽’에서 ‘오쿠리비토’까지 영화로 읽는 일본 미학

폭력과 섹스로 뒤덮인 B급 작품도 할리우드 유혹

  • 도쿄=이윤진 자유기고가 nestra@naver.com

‘라쇼몽’에서 ‘오쿠리비토’까지 영화로 읽는 일본 미학

‘라쇼몽’에서 ‘오쿠리비토’까지 영화로 읽는 일본 미학

인기 드라마를 스크린에서 만나는 건 일본에선 흔한 일이다. 사진은 영화로 만들어진 TV 드라마 ‘고쿠센’.

지난 2월 제81회 아카데미상은 일본 영화 ‘오쿠리비토’(한국 제목·굿바이)에게 ‘외국어영화상’을 안겨줬다. ‘쓰미키의 집’까지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상을 받아 일본은 2관왕이란 쾌거를 이뤄냈다. ‘일본 영화가 여전히 세계에서 통용되는 저력을 갖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도 큰 소득.

해외 유명 영화제 잇따라 수상, 자신감 회복

사실 일본에선 자국 영화가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1951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1954년 기누가사 데이노스케 감독의 ‘지옥문’이 각각 베니스영화제와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며 서구 영화계에선 ‘아시아 영화=일본 영화=예술영화’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

특히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속 일본적인 배경과 그 안에 담긴 철학적인 질문에 서구사회는 찬사를 보냈다. 개항기 우키요에(浮世繪·일본의 풍속회화)가 서구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것처럼, 전후 일본 영화는 서구사회에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

하지만 1950년대 중후반 TV가 보급되면서 일본 영화계는 쇠퇴기에 들어서고, 해외의 높은 평가에도 영화산업은 위기를 맞았다. 대형 영화사 ‘니카츠(日活)’가 도산 위기의 타개책으로 에로 영화를 양산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 우리나라에 ‘일본 영화=에로 영화, 저질 영화’라는 공식을 남겨준 ‘포르노 로망’의 시작이기도 하다.



니카츠의 포르노 로망은 정해진 분량의 노출과 섹스신만 들어가면 나머지는 모두 감독의 재량에 맡기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표현의 자율권을 보장해줬다. 프랑스 68혁명의 여파로 학생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불던 당시 일본 사회에서 과감한 성적 표현에 비판적 성향을 입힌 니카츠의 포르노 로망에 지식인들은 열광했고, 이는 실력 있는 신인 감독들의 데뷔 무대로 활용됐다.

‘셸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주온’의 구로사와 기요시, 코미디 배우로 더 유명한 다케나카 나오토 등 1990년대 이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감독들이 포르노로망을 통해 데뷔했다. 야쿠자 영화, 형사물도 포르노로망과 함께 B급 오락영화의 한 축을 이뤘다. 이처럼 구로사와 아키라로 대표되는 ‘아트 무비’와 폭력, 섹스로 뒤덮인 B급 영화로 연명해오던 일본 영화는 할리우드라는 지구 정반대편에서 다시 저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일본 영화의 영향을 받은 할리우드 흥행작이 잇따라 등장한 것. 대표적인 작품이 ‘스타워즈’다. 이 영화를 만든 조지 루카스 감독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숨은 요새 속의 세 악인’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 리들리 스콧의 누아르 영화 ‘블랙 레인’은 일본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영화다.

도쿄의 뒷골목이 주무대라는 점은 물론, 일본 누아르의 간판스타인 마츠다 유사쿠와 다카쿠라 겐이 비중 있는 역으로 출연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블랙 레인’은 뒷날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 제작에 영감을 줬고, ‘공각기동대’는 ‘제5원소’와 ‘매트릭스’에 영감을 줬으며, 이는 다시 2000년대 이후 일본 SF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미쳤다.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국 영화에 열광하는 日 관객들

자칭 ‘일본 문화 오타쿠’라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일본 영화 ‘여죄수 사소리’를 리메이크한 ‘킬 빌’을 통해 일본 B급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 특히 ‘재패니스 호러’라 불리는 일본 공포영화는 할리우드 영화계에 새로운 공포의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과거 작품에 대한 열광일 뿐, 정작 일본 최신작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최근 몇 년간의 흥행작 대부분은 TV방송국에서 제작한 영화다. 자사에서 출자한 영화의 흥행을 위해 화려한 캐스팅은 물론, 무차별적인 홍보전략을 펼치니 방송국과 손잡지 않은 영화는 홍보전에서 뒤처지게 마련. 심한 경우 히트한 드라마의 속편을 영화로 제작하기도 한다. 방학에 맞춰 10대 취향의 모바일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극우주의 영화가 화제작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일본 영화의 평가 기준이던 예술성도, 일상성에 기댄 보편적 정서도, 소재와 표현의 참신함도, 영화에 담긴 감독의 철학도 점차 미약해지는 추세다. 상당수 일본 관객은 지금까지 자국의 영화에서 접해보지 못한 다양한 소재와 힘 있는 스토리를 가진 한국 영화에 열광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 ‘말아톤’ ‘선물’ 등은 일본에서 새롭게 리메이크했다.

해외 영화제에서의 잇따른 수상 등 한국 영화 선전에 대해 일본 영화계는 견제와 동경을 함께 표시한다. 일본 영화는 세계 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과거가 현재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본 영화계는 ‘왜 더 이상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감독이 나오지 않는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영화를 새로운 대안이자 경쟁자로 삼았다. 어렵게 세계 영화사의 톱니바퀴에 편입된 한국 영화와 이미 수레를 굴리는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한 일본 영화, 양자의 미래는 상호협력 속에 있지 않을까.

2009 일본 드라마 열풍, 그 성공의 비밀

‘라쇼몽’에서 ‘오쿠리비토’까지 영화로 읽는 일본 미학

일본에서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진 ‘꽃보다 남자’.

지난해 ‘하얀 거탑’을 시작으로 2009년 대한민국 여성들을 열광시킨 ‘꽃보다 남자’ ‘결혼 못하는 남자’ 등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 작품이 방송가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드라마의 폐해로 지적받는 소재 고갈과 패턴 반복에서 오는 스토리의 진부성을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우리의 안방을 사로잡은 일본 드라마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지금부터 그 비밀을 하나하나 살펴보자.1. 스토리의 일관성
일본 드라마는 보통 9~12편을 3개월에 걸쳐 방영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정확한 방영 편수와 스케줄을 미리 알 수 있으므로 드라마 제작에 필요한 모든 것을 사전에 결정한다. 속전속결로 이뤄지는 한국 드라마 제작현장과 달리 충분한 검토를 거치고, 전체 분량의 3분의 1가량인 2~4편이 사전 제작해놓은 상태에서 방영을 시작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중간에 내용이 바뀌거나 방영시간을 때우기 위해 졸속 제작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드라마 종영까지 일관된 스토리는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TV 앞에 붙잡아놓는 기능을 한다.
2. 탄탄한 원작
일본 드라마는 만화나 소설,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인기 블로그에서도 소재를 발굴한다. 이미 원작을 통해 스토리를 검증받은 만큼 재미는 물론, ‘원작의 팬’이라는 고정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다. 또 등장인물의 캐스팅, 캐릭터 구축부터 광고의 사전판매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만큼 탄탄한 원작이 일본 드라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3. 원소스 멀티유즈
일본에서 성공한 드라마는 드라마로 끝나지 않는다. 시즌3까지 나온 ‘고쿠센’이나 올해로 시즌4를 맞은 ‘구명병동 24시’처럼 시리즈화는 기본. 미완성으로 끝난 결론을 ‘극장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스크린에서 펼치기도 한다. 드라마와 관련한 상품 판매에도 적극적이다. 예전엔 드라마를 소설화하거나 사진집을 출판하는 정도였지만 요즘에는 DVD 발매나 드라마 관련 잡화를 개발해 각 방송국에서 직영하는 캐릭터숍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기무라 다쿠야 주연의 드라마 ‘화려한 일족’은 식품회사와 손잡고 ‘화려한 카레빵’을 한정판매해 수익을 창출함은 물론 드라마 홍보 효과를 높이기도 했다.
4. 폭넓은 배우층
종종 주인공의 연기력 부족 등을 지적받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 드라마에선 캐스팅을 둘러싼 잡음이 거의 없다. 이는 일본 드라마가 폭넓은 배우층을 확보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 주연급 배우가 풍부하기 때문에 특정 배우가 매 시즌 연속으로 주인공을 독점하거나, 인지도만 높은 아이돌 그룹 출신의 새내기 연기자가 단숨에 주인공 자리를 꿰차거나, 전편에서 연기력 논란을 겪고도 다시 주연급으로 캐스팅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덕분에 드라마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주간동아 2009.09.15 703호 (p34~35)

도쿄=이윤진 자유기고가 nestr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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