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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변화된 平統 “北 조평통 나와라!”

南 평통 vs 北 조평동의 기싸움 … 北 언론, 평통 활동 맹비난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변화된 平統 “北 조평통 나와라!”

변화된 平統 “北 조평통 나와라!”

7월1일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제14기 평통 자문회의 출범식, 자문위원의 임기는 2년이다. 제14기 평통은 ‘통일 일꾼’ 역할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요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평통)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 정치에 밝은 사람이라면 평통이 유신체제 때 국민을 대신해 대통령을 간접선거로 뽑던 ‘통일주최국민회의’(이하 통대)의 후신이라는 사실 정도는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통대는 모두 4번 대통령 선거(이하 대선)를 치렀는데, 그 결과는 정말 가관이었다.

10월 유신 직후인 1972년 12월 제8대 대선에서 통대는 단독으로 출마한 박정희 후보에게 100% 득표를, 6년이 지난 78년 7월 제9대 대선 때도 역시 혼자 출마한 박정희 후보에게 100% 몰표를 안겨줬다. 박 전 대통령 사후인 79년 12월 제10대 대선에선 단독 출마한 최규하 후보에게 96.7%의 표를 몰아줬고, 최 전 대통령이 하야한 뒤 신군부의 전두환 후보가 단독으로 출마한 제11대 대선에서도 100% 지지를 보여준 ‘거수기’가 바로 통대였다.

국내 232개, 해외 35개 지부 조직

통대는 유신체제를 끝내고 신군부체제의 출범을 알리는 1980년 10월27일 8차 개정헌법에서 대통령 간접선거 임무를 대통령선거인단에 넘겨주고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로 변신해 살아남았다. 그리고 신군부체제를 끝내고 대통령을 국민 직접선거로 뽑는 87년 10월29일 9차 개정헌법(현행 헌법)에서 ‘정책’자를 떼고 평화통일자문회의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없어질 것 같은 조직임에도 국회, 사법부, 감사원처럼 헌법(92조)에서 거론한 기관이라는 자격으로 용케 살아남은 것이다. 헌법기관인 평통의 의장은 대통령이다. 그러나 다망한 대통령 대신 수석부의장(현재는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이 대표 노릇을 하고, 살림은 사무처장(현재 김대식)이 맡고 있다. 평통 사무처는 사무처장 이하 64명으로 구성된 단출한 조직.



평통의 본업은 통일정책을 펼치는 곳에서 자문해오면 그에 대해 대답해주는 것이다. 자문에 응하려면 통일정책 분야에 정통해야 하는데 평통에는 그 분야의 현업을 경험한 사람이 적어 자문을 해오는 곳도 별로 없었다. 따라서 고인 물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한 기관으로 존재해온 것이 그간의 평통이었다.

어느 조직이든 활동력은 누구를 상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센 자를 상대하면 그에 따라 행동이 커지고, 약한 자를 라이벌로 삼으면 숨소리도 미미해지는 게 이치다. 조용하던 평통의 맥박이 요즘 펄떡거리고 있다. 고인 물이 흐르는 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조평통’으로 약칭되는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상대로 선정했기 때문.

1961년 5월13일 북한은 남한 주민과 해외 동포를 상대로 그들이 말하는 자주통일을 이루려는 정치사업을 위해 소설가 출신인 홍명희 부수상을 위원장으로 조평통을 만들었다.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조선노동당의 대남 부서들이 당 차원에서 대남 및 해외 공작활동을 한다면, 외곽 단체인 조평통은 북한 정권 차원에서 대남 및 해외 정치사업을 떠맡게 된 것이다.

조평통은 햇볕정책이 펼쳐지던 당시 한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바 있다. 조평통 위원장은 허담을 거쳐 김용순이 맡다가, 2003년 김용순이 사망한 이후 공석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주로 부위원장들이 전면에 나서서 활동했다. 조평통 부위원장은 강관주 김광천 김경호 김기남 림동옥 안경호 양형섭 전금진 등 9명이나 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헷갈린 적이 많았다.

변화된 平統 “北 조평통 나와라!”

평통 의장인 이명박 대통령이 출범식에서 평통 깃발을 흔들고 있다(맨위). 제14기 평통 자문회의 출범을 맹비난한 북한 로동신문(중간). 김대식 평통 사무처장과 이기택 평통 수석부의장(오른쪽).

조평통은 ‘아태’로 불리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함께 햇볕정책을 추진한 우리 측 인사를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여러 사업을 성사시켰다. 평통은 사무처 조직은 미약해도 전체 조직원 수만큼은 대단하다. 평통은 국내 232개 시·군·구와 해외 35개국에 지부를 뒀다.

이들 지부를 통해 1만7800여 명의 자문위원을 관리하는데, 자문위원들은 시·도지사와 해외 공관장의 추천을 받아 의장인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내 자문위원들은 당연히 한국 국적자이지만, 해외 자문위원들은 현지에서 수십 년을 살면서 노력해 성공한 사람들이기에 현지 국적을 가진 경우도 많다.

이들 자문위원의 능력과 경험에 주목한 이가 김대식 사무처장이다. 김 처장은 이들을 ‘통일 일꾼’으로 만든다는 생각에 이들에게 ‘비핵개방 3000’으로 요약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을 숙지시키기 위해 애썼다. 특히 비중을 둔 것은 해외 자문위원. 이들 가운데는 거주국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통하면 MB 정부의 대북정책을 현지 국가의 주요 인사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현지 공관원이나 국가정보원 주재관이 할 수 없는 일들도 이들이라면 가능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지난 7월 이기택 수석부의장이 직접 해외로 나가 현지 자문위원들을 격려하고 MB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을 설명했다.

北 재건 ‘통일 예비군’으로 탈바꿈

평통은 국내 자문위원을 ‘통일 예비군’으로 만들려고 한다. 중병을 앓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타계해 북한 정국이 혼미해지면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북한을 안정시키기 위해 평화유지군을 파견할 수 있다. ‘현역’들이 펼치는 이러한 노력으로 북한이 안정되면 사회 재건을 위해 분야별 전문가들이 ‘예비군’으로 투입돼야 한다. 이 시기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행한다는 의미에서 평통 자문위원들이 앞장서 들어가자는 것.

자문위원들은 생계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전문 분야도 가졌기에 장기간 북한에 머물면서 자신의 특·장점을 살린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 김 처장은 “그러나 1만7800여 명의 자문위원으로는 북한의 안정화가 힘들기에 1명의 자문위원이 다른 분야의 일을 할 수 있는 6명의 동조자를 모으는 노력을 하고 있다. 무지개는 일곱 색깔이 모였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통일 시대에 대비해 우리는 통일 무지개 운동을 펼치고자 한다”고 말했다.

평통의 변화를 주도하는 김 처장은 요즘 주목받는 ‘MB맨’이다. 전남 영광 출신인 그는 부산 동의대 일문과(학사)와 대전 한남대 대학원(석사)을 나온 뒤 일본 오타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 동서대 일문과 교수로 오래 활동해오다 MB 캠프에 투신해 대통령직인수위 활동을 거쳐 현직에 이르렀다. 그는 ‘조직화의 귀재’로 불릴 만큼 발로 뛰는 게 특기다.

북한은 평통의 이러한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8월11일자 ‘로동신문’은 ‘반(反)통일 모략기구, 동족대결의 돌격대’라는 제목으로 평통의 변화된 모습을 격렬히 비난했다. 과거 조평통이 한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면 이제는 거꾸로 북한 핵심 언론이 평통의 활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평통과 조평통이 펼치는 이번 싸움의 최종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주간동아 2009.09.15 703호 (p56~57)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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