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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술의 전쟁’ 종군기 10

술 익는 名酒의 고향 나라를 먹여 살렸다

역사와 자연 살피면 해외여행 재미 배가

  • 김원곤 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술 칼럼니스트

술 익는 名酒의 고향 나라를 먹여 살렸다

술 익는 名酒의 고향 나라를 먹여 살렸다

미국 켄터키 주 우드포드사의 버번위스키 삼중 증류기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해외여행이 자율화된 지도 20년, 이제 세계여행도 명승고적 위주의 ‘사진찍기 여행’에서 한 걸음 나아가 ‘테마 여행’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영상이나 활자매체로 대하던 것들을 직접 현장에서 접하면 어설픈 지식은 그때서야 자신의 것이 된다.

건축, 음악, 미술, 역사 등 다양한 테마 여행이 책이나 잡지에 소개되지만 술과 관련된 여행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술은 남자의 전유물이란 ‘구석기적 착각’을 하는 이가 많기 때문일까. 다른 이유라면 명주(名酒)의 고장을 찾는 길이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것일 터. 그러나 대부분의 테마 여행은 절대 한 번에 끝마칠 수 없다. 술 테마 여행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지역에 가든 차로 10시간 거리 안에는 명주의 고장이 있으니 출장 등으로 외국에 나갈 일이 있으면 틈을 내 찾아가면 된다.

필자는 이런 방식으로 20여 년간 애주가 대부분이 아는 명주의 고향들을 섭렵했다. 오늘 소개할 곳은 술로 많이 알려졌지만 정작 제조환경이나 특산 지역에 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지역들이다.

달콤한 바닐라 향이 매력 … 미국 버번위스키 트레일

버번위스키는 특유의 짙은 바닐라 향과 대중적인 이미지로 국내는 물론 세계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는 술이다. 가장 정통적인 켄터키 스트레이트 버번위스키는 미국의 관련 법규에 따라 ‘켄터키 주에서 생산된 제품으로, 옥수수가 51% 이상 혼합된 곡물을 발효시켜 만든 양조주를 증류해 80% 이하의 증류액을 만든 다음, 안쪽을 불로 그을린 새 오크통에서 2년 넘게 숙성시켜 알코올 농도 40% 이상으로 병입한 것’으로 규정돼 있다.



이 버번위스키를 만드는 켄터키 버번 지역의 증류소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이 ‘버번위스키 트레일(Bourbon Whiskey Trail)’이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과 켄터키 더비로도 유명세를 떨치는 켄터키 주는 버번위스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도 강해 이 코스를 중요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 버번위스키 트레일에는 짐빔, 헤븐힐, 메이커즈 마크, 우드포드, 버펄로 트레이스, 와일드 터키, 포 로지스 등 주요 버번위스키 증류소가 포함된다.

출발 지점은 보통 켄터키 주의 중심 도시인 루이빌과 렉싱턴 중 한 곳. 광활한 지역과 미국 자동차 문화 특성상 이들 증류소를 보려면 개인 자동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투어버스 같은 단체관광 프로그램은 버번위스키 축제 기간을 제외하고는 운용하지 않는다.

버번위스키는 옥수수를 주재료로 보리, 귀리, 밀 등을 사용해 만든다. 회사마다 이들 재료의 혼합비율이 다르고, 같은 회사 상품 중에서도 제품에 따라 혼합비율이 달라진다. 메이커즈 마크는 밀을 처음으로 다량 사용해 버번위스키 맛에 전기를 마련한 바 있다.

재료 혼합비율이 결정되면 이들을 발효시켜 양조 알코올을 만들고 난 뒤 증류 과정을 거쳐 높은 알코올 농도의 술을 얻게 된다. 증류가 끝난 술은 숙성 과정에 들어가는데, 버번위스키의 오크통 숙성은 2년이라는 의무기간에 관계없이 보통 4년 넘게 계속된다. 최근에는 6~8년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제품도 많이 출시된다. 다만 스카치위스키와는 달리 수십 년간 장기 숙성시키는 것은 피한다. 너무 오래두면 지나친 오크통 향으로 버번위스키의 특성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

몰트위스키의 성지 스코틀랜드 아일라 섬

아일라(Islay)는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스제도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섬. 남북으로 40km, 동서로 32k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으로, 인구도 340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인구의 3분의 1은 바닷가 마을인 보모어(Bowmore)에, 또 다른 3분의 1은 남쪽의 항구도시 포트엘렌(Port Ellen)에 산다. 그 나머지 3분의 1이 섬 이곳저곳에 살고 있으니, 섬 크기에 비해 체감 인구밀도는 낮은 편이다.

술 익는 名酒의 고향 나라를 먹여 살렸다

1 미국 켄터키 주에서 생산되는 버번위스키 제품들.
2 스코틀랜드 아일라 섬의 보모어 증류소.
3 아일라 섬의 브루클라딕 증류소.
4 아일라 섬에서 생산되는 몰트위스키.

그런데 이 섬을 유명하게 한 것은 사람이나 풍광이 아니라 위스키다. 이 작은 섬에 무려 8개의 위스키 증류소가 있다. 그것도 대부분의 증류소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품질 면에서도 스카치위스키 중 최고를 자랑한다. 특히 이곳에서는 피트(peat, 土炭)라는 천연 매장연료를 사용해 몰트 보리를 볶는데, 술에서 배어 나오는 강력한 피트 향은 수많은 아일라 위스키 마니아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 때문에 아일라 섬은 ‘위스키의 성지’로 불리기도 한다.

술 익는 名酒의 고향 나라를 먹여 살렸다

프랑스 코냐크 지방에서 생산되는 ‘코냑’.

8개의 증류소 중 킬코먼(Kilchoman)은 규모도 가장 작고 설립된 때도 2005년 11월로 역사가 짧아 제품 인지도가 높지 않다. 그러나 나머지 7개 증류소는 위스키 애주가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곳이다. 섬 북쪽에는 부나하먼(Bunnahabhain)과 쿠릴라(Caol Ila) 증류소가 있고, 포트엘렌 근처에는 아드벡(Ardbeg), 라가불린(Lagavulin), 라프로익(Laphroaig) 증류소가 삼총사처럼 모여 있다. 그리고 섬 중간에는 전통의 보모어 증류소와 브루클라딕(Bruchladdich) 증류소가 있다.

지역에 따라 술맛도 차이가 뚜렷해 남쪽의 3개 증류소는 강한 피트 향이 특징인 데 비해 북쪽의 2개 증류소는 피트 향이 약하다. 지역적으로 중간에 있는 보모어는 피트 향도 중간이고, 브루클라딕 증류소의 현재 제품들은 피트 향이 강하지 않으나 곧 강한 피트 향의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들 외에도 여러 증류소가 있었으나 폐쇄됐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은 1820년대 후반 설립됐다 폐쇄된 포트엘렌 증류소. 이곳에서 생산한 제품은 지금도 인기가 대단해 위스키 마니아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된다.

사람들이 아일라 섬을 찾는 큰 이유는 위스키 증류소 때문이지만 조류 관찰, 낚시, 캠핑 등 여가를 즐기러 오는 이도 적지 않다. 아일라의 해안선은 퍽 아름답다. 마을과 바다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가 하면, 마치 미니어처 다도해 같은 풍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낮은 관목이 펼쳐진 구릉과 초원 등 내륙의 풍치도 빼어나다.

아일라 섬으로 가는 길은 배로 가는 방법과 비행기로 가는 방법이 있다. 배를 타려면 글래스고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3시간 30분가량 달려 케너크랙(Kennacraig) 부두까지 가야 한다. 페리에 차를 실을 수 있어 편리하다. 비행기는 글래스고 공항에서 아일라 공항까지 직항이 있다. 35분쯤 걸려 빠르긴 하나, 배에서 아름다운 섬을 바라보며 들어가는 낭만은 포기해야 한다.

스카치위스키 본고장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영국 북쪽에 자리한 스코틀랜드는 세계 최고의 위스키로 평가받는 스카치위스키의 본고장이다. 그 위상에 걸맞게 스코틀랜드 전역에는 90개가 넘는 증류소가 지금도 활발하게 위스키를 만들어낸다. 그중에서도 하일랜드 동북쪽에 있는 스페이사이드(Speyside)는 위스키의 최중심지.

스페이사이드는 글자 그대로 스코틀랜드에서 긴 강 중 하나인 스페이 강 유역을 일컫는다. 스페이사이드는 8개의 소지역으로 나뉘는데, 이곳으로의 여행은 보통 유서 깊은 도시 엘긴(Elgin)에서 시작된다. 엘긴은 스페이사이드의 상업 중심지이자 가장 큰 도시로, 스코틀랜드 양대 도시인 에든버러나 글래스고에서 기차로 연결된다. 엘긴과 그 주변에는 시내에 자리한 ‘글렌 모레이(Glen Moray)’를 포함해 8개의 증류소가 산재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스페이사이드 증류소를 여행하려면 이곳에서 40~50분 버스를 타고 더프타운(Dufftown)이라는 마을로 가야 한다. 더프타운은 스페이사이드의 노른자위 지역. 인구 25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지만 한때 9개의 증류소가 있어 ‘세계 위스키의 수도(malt whisky capital of the world)’라는 별칭을 얻었다.

더프타운에 기반을 둔 9개 증류소 중 3개는 폐쇄됐고, 현재 가동 중인 증류소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글렌피딕사(William Grant · Sons)의 ‘글렌피딕(Glenfiddich)’ ‘발베니(Balvenie)’ ‘키닌비(Kininvie)’ 3개와 디아지오사의 ‘모틀락(Mortlach)’ ‘더프타운’ ‘글렌둘란(Glendullan)’ 3개다. 더프타운에선 해마다 봄, 가을 2차례 위스키 축제를 벌이는데, 세계 위스키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밖에 스페이 강 본류 유역에는 ‘매캘란(Macallan)’ ‘아버라워(Aberlour)’ ‘글렌파클라스(Glenfarclas)’ 등 ‘빅3’를 비롯한 여러 증류소가 자리해 스카치위스키 애주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브랜디의 황제’ 만드는 프랑스 코냐크 마을

코냐크 마을은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브랜디 ‘코냑(cognac)’의 핵심 생산지다. ‘코냑’이란 명칭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브랜디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

코냐크 마을은 프랑스 서쪽 중간에 있는데, 항구도시는 아니지만 대서양 연안 가까이 있다. 코냐크 마을로 가는 길은 여러 경로가 있지만 유명 와인 산지인 보르도에서 기차로 가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보르도역에서 코냐크역까지는 1시간30분 정도 걸리지만, 중간에서 환승할 때 시간이 잘 맞지 않으면 2~3시간 걸리는 경우도 많다.

코냐크는 로마시대 이전의 유물이 발굴될 만큼 역사가 오래된 곳이지만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마을이라 웬만한 곳은 기차역에서 도보로 갈 수 있다. 코냐크 마을에는 이 지역의 젖줄 노릇을 하는 샤랑트(Charente) 강을 중심으로 유명 코냑 회사들이 들어서 있다.

샤랑트 강의 중심부에는 세계 최대의 코냑 회사인 헤네시(Hennessy) 본사가 자리잡았다. 1765년 리처드 헤네시가 만든 이 건물은 강가에 연해 양쪽으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해 그 위세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방문객을 위한 비지터센터도 있고, 투어 프로그램도 잘 짜여 있다. 유람선을 타면 강 양쪽의 회사를 모두 구경할 수 있다.

술 익는 名酒의 고향 나라를 먹여 살렸다

1 스코틀랜드 더프타운의 스카치위스키 ‘글렌피딕’ 증류소.
2 프랑스 코냐크 마을의 간이역 코냐크역.
3 멕시코 테킬라의 관문 과달라하라의 구시가지에 있는 대성당.
4 다양한 테킬라 제품들.

헤네시만큼이나 잘 알려진 레미마르탱(Remy Martin) 본사도 코냐크 마을 중심지에서 4km 떨어진 메르팡(Merpins)에 있다. 1724년 설립된 레미마르탱은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코냑 회사로 인정받는다.

코냐크 마을에는 또 세계 5대 코냑사에 드는 마르텔과 까뮈를 비롯해 오타르, 라센, 프론삭 등의 군소 회사가 들어서 코냑 본고장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코냐크 동쪽에 자리한 인구 5000여 명의 마을 자르낙(Jarnac)은 넓게는 코냐크 지역에 속하지만 하나의 독립된 마을로 코냑 생산의 제2 중심지다. 이곳에는 역시 샤랑트 강변을 끼고 세계 5대 코냑사의 하나인 쿠보와지에를 중심으로 여러 코냑 회사가 있다.

‘멕시코의 영혼’ 원산지 테킬라

멕시코의 아이콘이라 할 ‘테킬라(Tequila)’는 멕시코를 넘어 세계적인 술로 위상을 굳힌 지 오래다. ‘테킬라’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멕시코 5개 주에 걸친 특정 지역 내에서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켜 생산된 술이라야 한다.

법정 테킬라 지역의 범위는 매우 넓지만, 테킬라를 유명하게 만든 곳은 할리스코(Jalisco) 주의 테킬라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구체적으로는 테킬라 생산 1, 2위 회사가 자리잡은 테킬라 마을, 그리고 제3의 회사인 에라두라(Herradura)가 있는 이웃 동네 아마티탄을 말한다. 이들 지역을 보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도시가 멕시코 제2의 도시이자 할리스코 주도인 과달라하라.

과달라하라에서 테킬라 마을로 가는 방법은 크게 3가지.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일일 투어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테킬라 마을의 호세 쿠에르보 증류소와 아마티탄의 에라두라 증류소를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테킬라 익스프레스’라는 기차를 이용하는 방법. 매주 토요일 에라두라 증류소로 출발하는 기차에선 마리아치의 음악 연주와 테킬라 무한 제공 등의 서비스를 하는데 방문객에게 인기 높은 프로그램이다. 다만 예약이 어렵고 요일이 한정되며 값이 비싼 게 단점이다. 세 번째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30분마다 출발하는 버스를 타는 방법인데, 일반 여행객은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세계 최고의 테킬라 회사 호세 쿠에르보는 테킬라 중심지에 있다. 굴지의 회사답게 잘 만들어진 비지터센터를 갖추고 일주일 내내 투어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건물에 들어서면 까마귀 동상을 마주하는데 ‘쿠에르보’는 스페인어로 까마귀를 뜻한다. 투어에는 일반 투어(100페소)에서 VIP 투어(300페소)까지 여러 종류가 있다. 투어가 끝나면 자체 바에서 테킬라 베이스로는 가장 유명한 칵테일인 ‘마가리타’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세계 제2의 테킬라 회사인 사우자(Sauza)도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한편 에라두라는 아마티탄에 있는데 대지가 매우 넓다. ‘테킬라 익스프레스’의 종착지답게 투어 프로그램도 잘 마련돼 있다.



주간동아 2009.06.02 688호 (p44~47)

김원곤 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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