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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천신일 회장 “6월에 와인 한잔 하자”

‘박연차 게이트’ 불구속 확신? … 여권 일각에선 “총대를 멜 사람”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천신일 회장 “6월에 와인 한잔 하자”

천신일 회장 “6월에 와인 한잔 하자”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대검 중수부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천신일 세중나모그룹 회장.

‘박연차 게이트’는 전 정권과 현 정권 모두를 겨냥한다. 태광실업 박연차 전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 600만 달러, 40만 달러, 명품 시계를 제공한 점은 확인됐다. 현 정권에서는 박 전 회장의 의형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친한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그룹 회장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

박 전 회장이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며 천 회장에게 청탁했는지, 천 회장이 실제로 권력기관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는지, 박 전 회장이 그 대가로 사전·사후에 천 회장에게 금품을 줬는지, 박 전 회장이 준 금품이 천 회장을 거쳐 여권으로 흘러들어갔는지가 쟁점이다.

천 회장과 박 전 회장의 개인 간 돈거래는 2008년 8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박 전 회장(레슬링협회 부회장)이 천 회장(레슬링협회 회장)에게 올림픽 선수단 격려금으로 줬다는 2000여 만원이다. 반면 기업 간 돈거래는 빈번했다. 취재 결과, 박 전 회장 측 7개 회사가 천 회장 측 회사에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들어가 ‘태광실업 주식회사와 그 종속 회사 연결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를 분석했다. 매출 3011억원, 매출총이익 710억원의 ‘능력 있는 신발판매 전문회사’인 ㈜태광실업이 ㈜세중게임박스라는 ‘뜬금없는 회사’에 투자한 사실을 회계사가 놓치지 않고 지적했다. 세중게임박스는 천 회장의 세중나모그룹 계열사다. 보고서 ‘주석’란엔 “세중게임박스 등의 비상장 주식 및 출자금 11억6652만원은 시장성이 없고 공정가액을 측정할 수 없어 취득원가로 계상하였습니다”라고 돼 있다.

주석란의 다른 곳에도 세중게임박스 주식(취득가 10억9524만원)에 대해 “시장성 없는 주식”이라고 썼다. 흑자기업인 ㈜휴켐스 주식에 대해선 “시장성 있는 주식”이라고 구별했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 측은 “경영의 귀재 박 전 회장이 10억원이 넘는 거액을 천 회장 회사에 투자한 진짜 이유가 무엇이겠나. 양측 거래가 석연치 않다는 점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대통령 친구가 잘못되면 좋은 모양 아니야”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박 전 회장은 노 정권 시절 거침없었다. 농협의 알짜 흑자기업 휴켐스를 입찰가격보다 300억여 원 낮은 헐값에 인수하는 등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별세무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박 전 회장은 이명박 정권의 막후실세이자 의형제인 천 회장에게 자연스럽게 SOS를 보내게 된다.

기자는 천 회장이 검찰에 소환되기 직전 그를 인터뷰했다. 그는 세무조사와 관련해 “10원도 받은 적 없다”고 했고, ‘박 전 회장에게 10억원을 수수했다’는 보도에 대해선 “오보다” “상당히 억울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박연차 세무조사 문제에서 손 떼라’는 정부 측의 경고를 받았는가”라는 질문에는 “조언을 들었다”고 대답했다. 박 전 회장이 세중나모그룹 측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봤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의 인터뷰 답변을 바탕으로 추론하면 이렇다. 천 회장은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박 전 회장은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30년 전 한 동네에 살면서 천 회장은 자신의 집 담을 벽 삼아 박 전 회장이 임시가옥을 짓고 가내수공업 신발공장을 하도록 편의를 봐줬다. 천 회장의 동생 문일 씨가 세상을 떠나자 장지에서 박 전 회장은 천 회장에게 “문일이 대신 동생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천 회장은 “남자답다”고 느꼈다. 포스코, 삼성 등 거대 기업의 최고경영자와도 친분이 두터운 ‘마당발’ 천 회장은 박 전 회장이 ‘전국구 사업가’로 성장하는 데 물심양면 도움을 줬다. 박 전 회장은 마침내 나이키사에 신발을 납품하면서 급성장했다. 그러자 천 회장 회사에 투자하는 등 ‘형님’에게 보답했다. 이 경우 박 전 회장이 세무조사 무마를 요청해와 천 회장은 알고 있던 여권 인맥과 접촉했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받지 않은 게 된다.

검찰은 5월19일 천 회장을 18시간 동안 소환조사했다. 박 전 회장이 투자금을 돌려받지 않음으로써 세무조사 무마 로비의 대가를 치른 것은 아닌지를 확인했다고 한다. 두 사람 간 거래가 인간적 보은인지, 세무조사 무마의 대가인지, 아니면 현 정권에 보험 들기 차원인지 딱 부러지게 규명하기가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천 회장은 인터뷰에서 “지난해 7월25일부터 30일까지 이 대통령과 휴가를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잘못되면 친구가 죄를 지은 셈이니까, 친구인 대통령도 모양이 좋은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심경이 복잡한 듯했다. 불구속을 확신하는 듯, 혹은 강하게 기대하는 듯 기자에게 “6월에 와인 한잔 하자”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선 ‘천 회장이 잠시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고 본다. 반면 당사자는 구속만은 피하고 싶어했다. 이 지점에서 여권 일각의 기조와 당사자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것으로 보인다.

천신일 구속, 노무현 불구속?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사법 정의를 세우는 계기가 될까. 검찰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일부 언론은 “임채진 검찰총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불구속기소 의사’를 설파하고 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사건을 뒤로 미룬 채 천 회장을 먼저 사법처리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현 정권의 실세인 천 회장을 엄정 처리해놓으면 노 전 대통령의 신병처리 문제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 대신 현 정권의 대선 자금 문제는 수사대상에서 빠지는 조짐이다. 천 회장은 대선 당시인 2007년 12월3일 이명박 후보에게 특별당비 30억원을 빌려준 바 있는데 이를 두고 여야는 ‘대납의혹’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림 로비’ ‘대통령 친인척 접촉’ ‘기획 출국’ 의혹을 받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미국에서 e메일로 검찰 조사에 응했다. 한 전 청장은 박 전 회장의 세무조사와 관련해 “천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한 전 청장의 답변서는 A4용지 20장. ‘답변 양이 많고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매수까지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전 청장을 직접 불러 조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많다. 한 전 청장도 거리낄 게 없다면 못 올 이유가 없다. 한 전 청장은 누가 박 전 회장의 세무조사 문제에 연루됐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가 천 회장을 넘어 ‘박연차 게이트’와 여권의 또 다른 ‘의혹의 고리’라는 말도 들린다.

국가정보원도 ‘박연차 게이트’에 이름이 오르내린다. 국정원 측은 검찰에 ‘노무현 불구속’을 요청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국정원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지만, 검찰 측은 그런 요청이 있었는지 뚜렷이 말하지 않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여권 실세 천신일 구속, 노무현 전 대통령 불구속’으로 종결되는 흐름일 경우 “절묘하게 균형점을 맞췄다”는 평가가 따를 수 있다.

수사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했고 ‘살아 있는 권력’에 더 엄정했다는 인상을 준다. 여권을 굳이 더 파헤치지 않더라도 말이다. 수사 상황이나 여론 향배에 따라 ‘노무현 불구속’이 ‘노무현 구속’으로 바뀔 가능성은 있다.

어쨌든 노무현과 천신일로 상징되는 전·현 정권을 모두 벌줬다는 대칭구도는 그대로다. ‘천신일’, 그는 정말 노 전 대통령의 대칭점에 서 있을 만한 ‘박연차 게이트의 여권 실세 몸통’이 맞을까. 아니면 누군가를 대신해 그렇게 ‘포장’된 존재일 뿐일까.

향후 재판에서 천 회장이 박 전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금품을 받은 점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세금 미납’ 등 개인 혐의밖에 없게 된다. 적어도 인터뷰로 접한 바로는, 천 회장은 여권 내 고위직과 두루두루 친하고 이런저런 연결 통로가 될 만한 대통령의 친구는 맞지만, 장기의 말을 움직이듯 권력기관을 요리하는 노회한 실세의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주간동아 2009.06.02 688호 (p48~49)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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