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1

2009.04.14

세계 최대의 쇼핑몰 혹은 키클롭스적 환상

  • 김민경 holden@donga.com

    입력2009-04-10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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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의 쇼핑몰 혹은 키클롭스적 환상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 ‘더 두바이몰’입니다. ‘당신이 찾는 모든 것’을 갖췄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죠. 사실은 쇼핑몰에 가서야 내가 뭘 찾고 있었는지 알게 되지만 말입니다. 중앙 아트리움에서 보니, 어쩐지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의 환상 같은 느낌도 들더군요.

    아주 짧은 해외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출장지는 두바이였어요. 페르시아만의 아랍에미리트연방(UAE)을 이루는 7개 도시국가 가운데 하나죠. 금융, 상업,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갑자기 세계 중심으로 떠올라 기상천외한 건설 프로젝트가 잇따라 진행되는 곳이기도 해요.

    두바이도 최근 세계 경제위기로 ‘주춤’하고 있다는데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 두바이 정부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출장이었어요. 두바이가 일종의 조정기에 들어간 건 사실인 듯해요. 하지만 두바이에서 세계 최대, 세계 최고의 뭔가가 무서운 속도로 너무 많이 진행됐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이 보기엔 이것도 ‘다행’스러운 기회가 아닐까 싶기도 하더군요. 세계 지도 모양과 태양계 모양의 거대한 인공섬, 804m 높이의 두바이 버즈-세계 최고의 빌딩으로 삼성이 지었고 ‘무한도전’팀이 올라갔던 바로 그 건물-가 완공되기도 전에 잇따라 발표된 1km와 1mile 높이의 빌딩 건설 계획 등이 일단 ‘보류’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꼭 나쁜 일일까요? 이미 두바이에는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도 있고, 세계 기록을 가진 것이 많은데요.

    “두바이는 멈추지 않는다(Dubai never stop)”고 강조한 현지 정부 관계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희 일행을 최근 문 연 세계 최대의 쇼핑몰 ‘두바이몰’로 데려갔어요. 오늘 ‘잇위크’는 여기서부터입니다(두바이발 소식은 다음 기회에). 결론은 쇼핑을 싫어하는 남성에게 세계 최대의 쇼핑몰이란 세계 최대의 감옥이란 거예요. 쇼핑몰 밖에서는 서로를 잘 이해하고 정치적 견해와 역사관도 비슷하던 사람들이 쇼핑몰 안에서는 서로의 행태를 마치 기이한 동물 보듯 바라보게 될 수도 있더군요.

    세계 최대의 쇼핑몰이라는 새로운 체제에 재빨리 적응한 저의 경우, 쇼윈도의 조명을 받는 순간 오전의 빡빡한 스케줄로 늘어졌던 동공이 오그라들면서 눈동자에는 촉촉이 물기가 돌았고,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간 앉아 있던 병자처럼 무거웠던 무릎이 ‘일어나 걸으라’는 말씀을 들은 듯 가뿐해져 세계 최대의 쇼핑몰을 두 시간 만에 사뿐사뿐 횡단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쇼핑몰 문 앞에 서자마자 마치 사막에 떨어진 피부호흡동물처럼 절망적인 표정을 지은 한 남성은 “난 정말 쇼핑몰이 싫다”고 선언하더군요. 건물 안으로 열 걸음쯤 걸어 들어간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공황상태에 빠진 것처럼 휘청거리며 바깥 로비로 나가 담뱃불 붙이기를 반복했어요.

    “사방에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 차 있는 곳에서 어떻게 몇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죠?” 모든 남성이 이렇진 않아요. 제가 아는 몇몇 남성은 쇼핑몰을 물개처럼 미끄러져 다니며 진정 쇼핑을 즐기죠. 옷, 구두, 안경테를 하나씩 품평하고 까다로운 취향을 과시해요. 그들은 마음에 드는 걸 샀을 땐 머리맡에 두고 잔다더군요. 마찬가지로 쇼핑을 증오하는 여성들도 있어서, 허리 사이즈를 줄자로 잰 뒤 남편에게 “인터넷에서 당신 것 살 때 내 것도 하나 사. 28인치면 될 것 같아. 색깔? 아무거나”라고 말하기도 해요.



    사소한 차이일 뿐이죠. 쇼핑몰을 돌아다니는 대신 책을 읽거나, 주식거래를 하거나, 달리기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어쨌든 대형 쇼핑몰을 국책 사업-두바이와 중국-으로 건설하기도 하는 이 시대에 쇼핑몰을 두려워한다면 좀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세계 최대의 쇼핑몰을 혐오하던 그 남성은, 그래서 다소 체 게바라 같았던 그는 드디어 특산품 대추야자를 사곤 무척 흐뭇해했어요.

    “이거야말로 두바이에서만 쇼핑할 수 있는 물건이에요. 한국에서도 살 수 있는 티셔츠나 구두 같은 거 말고, 이런 걸 사요.”

    우리 집 냉장고에 지난번 대형 마트에서 산 덕용 포장 대추야자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그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합리적 소비는 진짜 쇼핑이 아니라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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