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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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리스트’는 ‘親朴 살생부’?

친박 진영 일부 표적사정설 제기 … PK 주로 거론, 우연의 일치 주장도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09-04-10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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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차 리스트’는 ‘親朴 살생부’?

    4월1일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친박계 핵심인사인 허태열 최고위원(왼쪽)과 김무성 의원이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요? 하여간 이번 사건은 우리 정치의 수치입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4월1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4·29 경주 국회의원 재선거에 ‘친박 무소속’으로 나선 정수성 예비후보가 “이상득 의원이 이명규 의원을 시켜 나에게 후보 사퇴를 권유했다”고 폭로한 데 대한 첫 반응이었다.

    정 후보가 전날 경주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그 같은 주장을 하자 친박 계열 의원들은 반신반의했다. 이상득 의원이 곧바로 “정 후보가 나에게 먼저 만나자고 해서 약속을 잡았는데 갑자기 취소했기에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한 것뿐”이라고 반박하는 바람에 후보사퇴 권유설이 ‘진실 게임’ 양상을 띠게 된 까닭이다.

    그러다 박 전 대표가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상황을 정리하자 친박 의원들은 일제히 친이 진영을 겨냥해 공격을 퍼부었다. 영남 출신의 한 친박 의원은 “지금이 전두환 시절이냐, 친이 핵심에서 말도 안 되는 공작을 펴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친박 의원은 “이번 일로 친이-친박의 갈등이 폭발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부산권의 친박 핵심인사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을 조금 더 광범위하게 해석했다. 그는 “매사에 신중한 박 전 대표가 진실 확인도 되지 않은 경주 파문만으로 그처럼 강하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검찰의 ‘박연차 리스트’ 수사를 비롯해 최근의 전반적인 움직임에 대한 심경 표현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가를 강타한 ‘박연차 리스트’에 친박 인사가 대거 등장하는 것과 관련해 행여 이번 사건이 친이 세력의 ‘친박 말살’ 음모로 판단될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경주 사건을 빌려 날렸다는 이야기다.



    친박 현역의원만 5~6명 거론

    박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친박 의원들이 줄줄이 박연차 비리 수사선상에 오르는 데 대해선 “검찰이 수사 중이지 않느냐”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길게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이와 관련, 그의 한 측근은 “박 전 대표의 평소 스타일로 볼 때 결백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뇌물 사건을 옹호하는 듯한 말은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대신 경주 일을 강하게 언급하고,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불편한 심기를 대신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전방위 정치권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친박 정치인이 거명되고 있다. 정가에 나도는 ‘박연차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친박 현역 의원만 해도 5~6명에 이른다.

    그중에는 친박 진영의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과 친박을 대표해 한나라당 지도부에 포진한 허태열 최고위원의 이름도 올라 있다. 이를 두고 대구 출신 한 친박 의원은 “표적 사정을 통해 박 전 대표 세력을 움직이는 중진급들을 다 쓸어버리려 작정한 것 같다”고 혀를 찼다.

    김 의원과 허 최고위원은 1일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를 통해 공개 해명에 나서면서 ‘검찰이 친박 계열 PK 의원들을 표적 수사하고 있다’는 의혹을 거론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김 의원은 “그동안 검찰이 수사 방향을 어떻게 잡았기에 생사람 잡는 각종 리스트만 난무하느냐. 의혹이 있으면 밝히는 곳이 검찰인데, 지금은 거꾸로 의혹을 생산하는 공장이 되고 있고 언론들은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고 비판했다. 공교롭게도 김 의원은 다음 날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아냈다.

    김 의원과 허 최고위원이 ‘분노’를 표출하자 친박 계열인 윤상현 대변인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고, 박씨의 입만 바라보는 모습은 결코 적절하지 않다”고 거들었다. 집권여당 대변인이 검찰의 비리수사에 ‘훈수’를 두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사실 이번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 친이-친박 사이에는 화해 무드가 조성됐다. 이명박 정부 2년차를 맞아 이상득 의원이 ‘화합 전도사’를 자임해 친박 계열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지난 2월21일 김무성 허태열 서병수 의원 등 친박 중진의원들과 부산에서 조찬회동을 한 것을 시작으로 3월11일에는 최경환 유정복 의원 등 친박 계열 재선 의원들과도 만나 결속을 당부했다. 이에 박 전 대표도 3월2일 핵심 쟁점인 미디어법 처리와 관련한 당의 입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친이-친박 계파 갈등의 뇌관이던 3월20일 경주 범박(凡朴)씨 문중 춘분대제에 불참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청와대발’ 사정 의구심 못 떨쳐

    ‘박연차 리스트’는 ‘親朴 살생부’?

    3월2일 국회 본관 로텐더 홀을 점거한 한나라당 농성장을 찾은 박근혜 전 대표(가운데)가 의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그러나 ‘박연차 리스트’에 친박 성향 정치인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데다, 경주 파문마저 터지는 바람에 친이-친박은 다시 알력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친이 진영에서는 “박연차 회장의 로비 대상이 부산·경남 출신에 몰려 있고 PK의 주류 세력이 친박이니 그렇게 된 것이지, 친박을 표적으로 삼은 것이 아니다. 더구나 SD(이상득 의원)가 어렵게 화해 무드를 조성해놓았는데, 누가 다시 갈등을 조장하려 한다는 말이냐”고 항변한다.

    반면 이명박 정부 1년여 동안 일종의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친박 진영에선 이번 사정작업이 ‘청와대발(發)’이고, 그 최종 타깃은 전임 정권과 함께 친박 세력이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 여권 핵심부가 사정 칼날을 빼든 것은 노무현 정권의 흔적을 없애는 동시에 ‘내부의 적’을 견제함으로써 집권 2년차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 아니냐는 말이 친박 내부에서 나돈다. 친박 계열의 한 중진의원은 박연차 비리 수사가 친박도 겨냥한 표적수사라고 확언하면서 “모든 것을 친이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니냐. 자기들이 필요할 때, 말로만 화합을 외치면서 배려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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