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1

2009.04.14

讀書百遍義自見

  • 편집장 이형삼 hans@donga.com

    입력2009-04-10 0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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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채를 쥔 지 올해 4년째인데 아직도 100타 넘기는 날이 허다합니다. 보다 못한 동반자들이 “자세가 무너졌다”며 다시 레슨을 받으라고 충고하지만 귓등으로 듣습니다. 골프 잘 쳐서 팔자 고칠 일도 없는데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새파란 레슨프로한테서 그립이 어떠네, 어드레스가 어떠네, 허리를 트네 마네 잔소리 듣는 게 딱 싫습니다. 연습장에서 슬렁슬렁 몇천 번 채 휘두르다 보면 어느 순간 절로 자기류(自己流)가 무르익겠거니 합니다. 국어책에도 나오잖습니까. 讀書百遍義自見, 책을 100번 읽으면 그 뜻을 저절로 깨친다!

    중1 땐가 무술영화에 심취해 태권도장엘 나갔습니다. 몇 달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가만히 보니 사범이라는 자가 아주 편하게 돈을 벌더군요. 만날 똑같은 지르기, 발차기 연습만 시키다가 시간 좀 지나면 품세 하나 달랑 가르쳐주고 승급 심사비를 챙겼습니다. 이 정도면 집에서 혼자 태권도교본 보며 해도 되겠다 싶어 바로 그만뒀습니다. 소년 무도인의 꿈은 그걸로 땡!

    고교시절엔 여러 번 자퇴할 생각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건 다 참고서에 나오는데, 왜 밤늦도록 서슬 시퍼런 교사들 등쌀에 시달리며 이 고생을 하나 싶었습니다. ‘그까이 꺼 대충’ 독학해도 검정고시 패스하고 내신등급 올려 얼마든지 좋은 학교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행여나 실천에 옮겼다면? 게을러터진 자퇴생은 讀書‘無’遍義自‘滅’로 치달았겠지요.

    까칠한 낯가림에다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더해져 남에게서 뭔가를 진득하게 배워내질 못합니다. 남이 내 고유의 리듬을 무시하며 끼어드는 게 싫고, 남이 잠시나마 내 자유를 구속한다는 뻑뻑한 느낌이 싫습니다. 그래서 기타는 사흘을 배우다 말았고, 내 몸과 차의 일체화 과정을 못 기다려주는 강사가 꼴 보기 싫어 도로연수도 딱 두 시간 받고 끝냈습니다. 덕분에 여전히 악보를 못 읽고, 나이 먹어도 방어운전에 미숙합니다. 와인이 좋으면 조용히 즐길 것이지, 동호회다 뭐다 몰려다니며 스월링한답시고 시끄럽게 잔 딸그락거리고 해마다 11월이면 보졸레 누보를 전세기 가득 들여와 유난 떠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덕분에 여전히 라벨을 볼 줄 몰라 그저 주머니 사정에 맞춰 와인을 집어듭니다.

    결과적으로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이렇게 살면 늘 갑(甲)의 배포로 호기를 부릴 수 있기에 아드레날린이 덜 나와 뱃속은 참 편안합니다. 그러나 이런 학습관은 취미생활에나 적용시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생계와 직결되는 배움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내 가족이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낯가림과 자만심은 절대 금물. 꼼꼼한 독학도 워밍업, 스트레칭에 불과합니다. 한 걸음이라도 더 발품을 팔아서 재야 고수들의 가르침에 겸손하게 귀 기울여야겠지요.



    讀書百遍義自見
    요즘 같은 불황기에 한껏 달아오른다는 경매·공매 시장이 바로 그런 바닥입니다. 꼬리표 달려 싸게 나온 집,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기분으로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칩니다. ‘법정지상권’ ‘대위변제’ ‘예고등기’ ‘명도’ 같은 난형난제의 복병들이 곳곳에서 비수를 벼리고 있습니다. 이번 주엔 ‘주간동아’와 경매공부 한번 해보시죠. 법학,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이 골고루 버무려져 식욕과 승부욕을 적절하게 부추깁니다. 어렵다고요? 讀書百遍義自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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