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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03

눈물로 쓰고 한숨으로 고치고

토종 실력파의 ‘writing 정복기’

  • 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 박사과정, 조인직 동아일보 기자·미국 컬럼비아대 MBA 과정

눈물로 쓰고 한숨으로 고치고

눈물로 쓰고 한숨으로 고치고

스탠퍼드대학에서 유학 중인 김수경 씨

“당장 써먹을 표현 닥치는 대로 모아두니 유용”

유학을 가겠다며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질 때만 해도, 내 모습은 드라마에 나오는 골드미스처럼 그럭저럭 멋졌다. 볕 좋은 노천카페에 앉아 원서를 읽으며 외국 친구들과 토론하는 상상. 조금은 허영 같아도 당장 텅 빈 월급통장의 헛헛함을 채우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유학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영어 울렁증’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다. 나는 그 흔한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한번 다녀온 적 없는 100% 토종 한국인이다. 토론은 고사하고 커피나 제대로 주문할 수 있을지가 걱정인 현실이었다.

수년간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도 외국인과의 간단한 대화에서조차 주눅이 드는 내 말하기 실력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영작이었다. 말이야 안 통하면 손짓 발짓이라도 할 수 있지만 연구계획서, 보고서 등을 단어만 나열해 작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언어에서나 문어(文語)는 구어(口語)보다 정확한 표현과 문법을 요한다.

일주일 걸린 숙제 “도대체 무슨 소리?”



유학 첫 학기 첫 과제물이 지금도 기억난다. 책을 한 권 읽고 내용을 요약한 뒤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간단한 숙제였다. A4 용지 2장을 채우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릴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교수의 코멘트는 간단했다. 한마디로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뭘 모르겠다는 거야! 아무리 읽어봐도 내 눈엔 모든 게 명확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서류를 정리하다 우연히 당시 보고서를 읽게 됐을 때 나는 얼굴이 화끈거려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다. 여기도 콩글리시, 저기도 콩글리시, 도처에 콩글리시였다.

문제는, 한국어로 사고하고 그것을 영어로 직역하는 과정에서 국적 불명의 표현들이 속출한 것이다. 동사의 용법은 모른 채 뜻만 무조건 외우고 그것을 한국식 표현에 끼워 맞추다 보니 와인글라스에 담아낸 막걸리처럼 뜬금없고 이상했다.

처음으로 나는 너무나도 모범적이었던 내 학창시절이 억울했다. 그동안 만든 단어장만도 100권은 될 터. 이등병의 관등성명처럼 툭 건드리기만 해도 뜻을 읊어댈 정도로 수천, 수만 개의 단어를 외워왔지만 중요한 것은 단 몇 개의 어휘라도 정확하게 구사하는 능력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미드’에 ‘버닝’하는 편이 나았어.

그러나 뒤늦은 후회를 해서 무엇하랴. 나는 일단 영작의 기초를 익히기 위해 학교에서 외국인 학생에게 제공하는 영작 수업을 들었다. ‘thing’과 같은 모호한 표현은 절대 쓰지 않는다든지, ‘get’ 같은 구어체 동사는 피해야 한다는 등의 법칙들을 배울 수 있었다.

영작이란 콜럼버스의 달걀 같아서, 듣고 보면 쉬워도 먼저 생각해내긴 어렵다. 때문에 유학을 온 뒤로는 책이나 잡지를 읽을 때마다 영작에 써먹을 수 있는 표현들은 엑셀 파일에 정리해두는 습관이 생겼다. 유학 초기부터 모으기 시작한 표현들이 지금 수백 개 축적돼 있어 보고서를 작성할 때마다 요긴하게 쓴다.

눈물로 쓰고 한숨으로 고치고

미국의 한 대학교 캠퍼스에서 토론수업 중인 학생들.

스스로 만들어낸 표현이 ‘콩글리시’는 아닐까 의심될 때는 구글 같은 영어 검색엔진에서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문서가 있는지를 점검했다. 이렇게 하면 내 표현이 틀렸다 해도 유사 검색어에서 운 좋게 올바른 표현을 찾기도 한다. 이 방법은 혼자 터득한 것인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그 과정을 겪고 나면 비교적 완벽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다.

잘 쓴 영어 문장을 베끼는 것도 도움이 됐다. 매일 짧은 영자신문 기사를 한 개 정해서 한 문장씩 읽고 외운 뒤 연습장에 적는 것이다. 처음에는 두세 단어밖에 기억을 못해 다시 들춰봐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짧은 문장 정도는 외울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을 익힐 수 있다.

완벽한 논리, 쉽고 간결한 문체가 생존전략

영어사전은 반드시 영영사전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갑갑했지만 단어의 정확한 용법이나 미묘한 의미 차이를 익히기에 영한사전은 2% 부족하다. 다 쓴 뒤에는 꼭 소리 내어 읽어본다. 그러면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어딘가 어색하고 이상한 부분이 있다.

그게 바로 ‘감’이라는 것인데, 이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론 ‘감’을 익히려면 많은 양의 독서가 필요하다. 다행히도(?) 매 학기 수천 페이지의 책과 논문을 읽어야 했기에 지금은 어느 정도의 ‘감’을 갖게 됐다.

그러나 고백건대 포기해야 할 부분도 있다. 한국어에는 없는 ‘the’ ‘a’ 같은 정관사의 용법이다. 한때 이를 정복해보고자 애썼지만 원어민조차 시원하게 답변해주지 못했다. 정관사의 사용을 결정하기 위해 원어민의 뇌는 순간적으로 수십 가지 사항에 대해 무의식적 판단을 내린다고 하니, 외국인인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유학생활도 벌써 4년차에 접어들었다. 매 학기 조교로 일하며 미국 대학생들의 보고서를 채점한 결과는 의외였다. 수업시간에는 말 못해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것처럼 서로 말하겠다고 아우성이더니, 막상 보고서는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한 가지는, 말하기가 잘되면 쓰기는 자동적으로 잘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영작, 넓게는 작문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논리’다. 학생들의 보고서를 보면 횡설수설하거나 모순된 진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그들 역시 이제 스무 살을 넘긴 대학생일 뿐이기 때문이다.

영작에는 왕도가 없다. 지금까지 서술한 방법들은 스스로 체득한 나만의 방식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도 한 문장을 붙들고 한 시간씩 고민할 때가 많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생존전략은 완벽한 논리와 쉽고 간결한 문체다. 원어민만큼 영어를 할 수 없다면 논리 면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김수경 씨는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근무했습니다.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과정 중 유학을 떠나 현재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눈물로 쓰고 한숨으로 고치고

컬럼비아대학의 체육관(맨 위), MBA 도서관 내에 있는 그룹스터디룸에서 급우들과 회의 중인 조인직 기자(가운데), 경영대학원 입구(맨 아래).

원어민이 보낸 e메일 몽땅 카피 작전

영어 공부를 하다 보면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필요한 부분이 라이팅(writing)이라는 데 동의하게 된다. 결국은 쓰기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한 사람의 영어 실력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쓰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말하기에서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짧은 유학생활에서 실감하곤 한다. MBA 과정만 해도 모든 게 쓰기로 귀결된다. 간단한 논문에서부터 기말 논술시험까지, 성적에 평가되는 대부분의 항목이 페이퍼의 양과 질에 따라 결정된다.

MBA나 로스쿨 입학은 물론, 아이비리그 입학 때도 3000~4000자 분량의 에세이가 합격을 좌우하는 요소로 자리한 지 오래다. 어지간해서는 휴대전화를 걸지 않는 문화 때문인지 미국에선 학생 간의 의사소통 수단도 라이팅(e메일)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몇 년간 영어 라이팅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어느 정도의 실력 진전을 이룬 것 같다(물론 ‘절대적 기준’으로는 간신히 유학생활을 따라가는 정도지만). ‘신토불이’인 내가 효과를 본 방법은 3가지로 요약된다. 이 3가지 방법을 터득하기 전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도 그럴 것이 토플, 토익 같은 시험영어엔 ‘비법’이라는 게 있고, 리스닝(listening)과 스피킹(speaking) 역시 ‘미드(미국 드라마)’의 유행 등으로 재미있는 학습방법이 많이 소개된 데다, 실제 그 방법으로 효과를 본 학생도 많다.

흉내내기가 실력

하지만 라이팅만큼은 (감히 말하지만) 한국에서 잘나간다는 학원들도 실상 ‘별로’일 뿐 아니라, 그들이 ‘전가의 보도’라고 내세우는 첨삭지도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의 구조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어색한데 몇 군데 밑줄 긋고 시제 일치 정도 손보는 것으로 어떻게 근본적인 수술이 되겠는가.

3가지 방법론은 영어신문 감상하며 읽기, 원어민 e메일 감상하며 읽기, 자기소개서 영어로 쓰고 다듬기다. 이 3가지를 관통하는 테마는 ‘카피(copy)’다. 스피킹이란 게 결국 미국 사람이 하는 말을 얼마나 잘 흉내내느냐인 것과 같은 이치가 라이팅에 적용된다고 보면 된다.

우선 영어신문은 읽는 양이 중요하다. 예컨대 30페이지 중 5페이지라도 매일 정독하면 지겹도록 자주 보는 상투적인 표현들이 나온다. 양을 늘려가다 보면 사전 찾을 필요성도 줄어든다. 어차피 ‘보고 또 보는’ 단어들을 굳이 단어장에 옮겨 적으며 시간 낭비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상투적인 단어 숙어들이 눈에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영어 문장을 ‘감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눈물로 쓰고 한숨으로 고치고

컬럼비아대학의 도서관.

나는 직업상 한국 신문을 읽을 때도 내용보다 기자의 이름과 캐릭터를 떠올려보며 해당 기사의 전개방식 등을 짐작하는데, 그러다 보면 그 기사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비슷한 식으로 “이 타이밍에서 필자가 이런 표현을 썼네”라며, 마치 연극이나 영화 감상하듯 표현들을 즐기면 더 입체적으로 영어가 이해되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예컨대 “미국 달러가 약세로 돌아선 것 같다”를 “The US dollar appeared to have run out of steam since the end of last year”(달러가 지난해 연말 이후 활력을 잃은 듯하다)로 표현한 문장을 보면 “왜 이렇게 썼을까” 하며 되새김질하고 연습장에도 한 번씩 써보면, 다음에는 내가 그 비슷한 표현을 응용할 확률이 높아진다.

자기소개서 써보면 실력 쑥

두 번째는 e메일 학습법이다. 원어민 지인이 있으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안부인사든, 업무관계든 일단 원어민에게서 답장을 받으면 죄다 워드파일에 붙여놓은 뒤 컴퓨터에 옮겨 쳐보면 좋은 공부가 된다. 새삼 시제나 단·복수 표현, 동사 뒤에 붙이는 부사의 쓰임새 등 실전에서 경험해보지 않고는 터득되지 않는 구문들이 ‘내 것’으로 흡수되는 것을 느낀다. 몇 가지 상투적인 표현, 예를 들면 “If you have any question, please feel free to reach out to me”(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같은 문장은 머릿속에 통째로 남을 개연성이 훨씬 커진다. 주변에 원어민 지인이 없으면 구글 등을 검색해서 외국 학교나 회사의 대외업무 부서에 e메일을 보내는 방법이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본 뒤 “그 회사(학교)에 이러저러한 관심이 있는데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요?” “입학(입사)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하나요” 같은 질문을 던지면, 웬만한 규모의 회사나 학교는 세 줄짜리라도 답장이 오게 마련이다.

마지막으로는 자기소개서 학습법이다. 입사 준비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동기부여가 더 쉬울지 모르겠다. 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내 이력은 어떻고 인생 목표, 리더십 경험은 어떤 것인지 등을 한글로 써본 뒤 영어로 바꾸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영어로 써놓은 글이 제대로 된 것인지 검증하는 것조차 어렵지만,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서점에 가서 ‘하버드대 입학 에세이 모음집’류의 책을 사서 여러 사례를 읽다 보면, 국적은 다르더라도 “매사 적극적이다” “리더십이 강하다” 등의 일반적인 상황 묘사는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그 책에서 영어 표현들을 벤치마킹해 수첩에 적어놓고 응용해본다. 그런 과정에서 ‘적극적인’은 ‘positive’보다 ‘proactive’로 써야 어감 전달이 쉽다는 식의 ‘감’을 익히게 된다. ‘자기소개서’를 업그레이드된 세련된 표현으로 고쳐가면서 ‘남의 영어’가 ‘내 영어’가 되는 걸 실감하는 것 또한 커다란 진전이다.

조인직 기자는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등에서 근무했습니다. 현재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에 재학 중이며 주간동아에 ‘앤드루 조의 아이비리그 잉글리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주간동아 2009.01.20 670호 (p24~27)

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 박사과정, 조인직 동아일보 기자·미국 컬럼비아대 MBA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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