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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

웃음보 터뜨리는 타이밍의 미학

연극 ‘라이어’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웃음보 터뜨리는 타이밍의 미학

웃음보 터뜨리는 타이밍의 미학

연극 ‘라이어’는 11년째 롱런 중이다.

두 연인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인’ 옆에서 ‘다른 연인’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스케줄을 조정할 땐 한 치의 실수도 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두 집 살림’은 오죽하겠는가. 연극 ‘라이어’(레이 쿠니 작/ 원제 Run for your wife)에는 바로 옆 동네에 살림을 차려놓고 두 마누라 사이를 오가는 간 큰 남자가 등장한다.

런던의 택시 운전사 존 스미스(신용진 분)의 이중생활은 화려하다. 밤에는 윔블던가에서 ‘쭉쭉빵빵’한 바바라(이미선 분)와 함께, 낮에는 그 바로 옆 동네인 스트리트햄에서 착한 여자 메리(조하연 분)와 산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도로를 달린다. 대단한 능력이라고 칭찬할 만하나, 아무리 성격이 치밀해도 그러한 생활을 오래도록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불의의 사고로 스케줄이 꼬이는 바람에 지금까지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일궈온 두 집 살림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을 맞는다. 지난밤 강도를 잡겠다고 현장에 뛰어들었다가 오히려 강도로 오인받아, 핸드백에 머리를 맞아 실신한 채 병원에서 하루를 보낸 것이다.

이 때문에 두 아내는 각각 윔블던 경찰서와 스트리트햄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한다. 똑같은 이름, 직업, 상처를 지닌 남자에 대해 두 명의 아내가 실종신고를 했다는 점은 형사들의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는 10분 거리에 있는 아내들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실종 이유에 대해 둘러대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형사들이 나타나서 캐묻고, 나아가 그의 영웅적 행각과 그의 사진을 실은 신문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불상사가 연거푸 발생한다.



존은 형사들에게 즉석 거짓말을 늘어놓고 신문을 ‘먹어버린다’. 한편 그 과정에서 활약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깐죽거리기의 대명사이며 무위도식자인 스탠리다. 존의 베스트 프렌드인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농부인 척했다가 친구 존의 행세도 하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상황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엽기적으로 발전한다. 존은 법적으로 금하고 있는 중복 혼인의 상태를 들키지 않기 위해 형사들 앞에서 스탠리를 붙들고 거짓 ‘커밍아웃’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라이어’는 인과관계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엉뚱한 상황들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오해로 극을 이끌어가는 전형적인 소극(笑劇)으로, ‘타이밍’의 미학을 얼마나 잘 보여주느냐가 포인트다. 두 형사와 두 마누라가 한집에 모인 총체적 난국 속에서 인물들이 깻잎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등·퇴장을 반복하는 가운데,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존의 모습이 폭소를 유발한다. 치밀하게 짜인 레이 쿠니의 원작 대본과 재치 있는 무대연출(연출 류현미)이 돋보였는데, 양쪽 집의 ‘난리법석’을 하나의 무대에서 동시에 표현하면서도 동선이 엉키거나 산만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는 게이 코드가 살뜰하게 활용된다. 바바라가 사람들에게 의상도착증이 있는 남자로 여겨지고 존이 스탠리와 동성 커플인 듯 연기하는 가운데, 때마침 위층으로 이사 온 게이 디자이너 바비 프랭클린이 가세하면서 스트리트햄의 집은 게이들의 아지트로 변신하게 된다.

여기에 마초 캐릭터인 트로우튼 형사의 오버 액션이 웃음의 타이밍을 짚어준다. 게이도 퀴어도 아닌, 그들을 비하하는 ‘호모’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일부 관객은 그러한 형사의 행동에 진심으로 동감할 수도 있겠지만 편견의 상징인 그의 모습 역시 희화화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

꼬리 무는 엉뚱한 상황 재치 있는 연기

‘라이어’는 교묘한 타이밍과 캐릭터의 유머 코드가 중요한 만큼 재치 있는 연기가 요구된다. 존재감 강한 트로우튼 형사 역의 이용환, 사람 좋은 포터하우스 역의 최석준, 유머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스탠리 역의 김강섭을 비롯한 배우들이 모두 특색 있게 설정된 각 캐릭터의 특징을 잘 표현했다. 한편 두 아내의 경우 외형적 모습 이외의 캐릭터 표현이 다소 약했고,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템포감을 떨어뜨리는 포즈를 만들어낸 부분은 아쉬운 점이었다. 포터하우스 형사와 바비 프랭클린은 인물의 드라마가 좀더 엿보이는 연기를 보여준다면 따뜻하고 여운이 남는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열 여자 마다 않는 남자들의 심리를 건드리며 11년째 롱런하고 있는 ‘라이어’는 요즘 같은 불황기에 한바탕 웃기에 좋은 소극이다. 오픈 런, 대학로 아티스탄홀, 02-747-2050



주간동아 2009.01.20 670호 (p81~81)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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