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6

2008.12.23

불황 먹고 쑥쑥! 독한 色들의 반란

희망의 ‘노란색’ 주류 속 컬러 마케팅 각광차는 은색, 패션은 검은색 인기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입력2008-12-17 22: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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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황 먹고 쑥쑥! 독한 色들의 반란
    최근 미국의 유명 색채연구기관인 팬톤컬러연구소는 2009년 상징색으로 미모사 꽃잎의 색처럼 약간 붉은색을 띤 밝은 노란색(reddish yellow)을 꼽았다. 리트리체 아이즈맨 수석디렉터는 “경기 불황기에 따뜻함과 햇볕, 활력을 상징하는 노란색이 희망과 안정 그리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색(色)은 인간의 심리와 깊은 ‘내연관계’를 맺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이를 활용한 제품 개발 마케터들의 노력도 계속돼왔다. 경기 불황기에 오히려 붐을 이루는 ‘독한’ 컬러들의 유행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2009년을 대표하는 노란색은 ‘의외의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일본의 색채심리학자 기노시타 요리코는 저서 ‘설득시키는 마법의 색’(지상사)을 통해 노란색은 사교적이거나 의존적인(또는 불쌍한) 느낌을 자아내 주변 사람들이 그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효과 덕에 노란 옷을 입은 영업사원은 평소보다 더 많은 수금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은색 차 관리비 적게 들고 중고시장서도 선호

    한편 미국의 ‘USA투데이’는 최근 불황을 맞아 전 세계에서 ‘컬러 마케팅’이 각광받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업계 전문가의 말을 빌려 “산업계에서는 경기가 어려울 때 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 방법으로 저렴한 가격을 첫 번째로, 제품 색상의 차별화를 두 번째로 꼽는다”고 했다. 현재 미국에서 델 컴퓨터는 100여 가지 색상의 제품으로 ‘레인보 마케팅’을 앞세우고 있고, 애플사의 MP3 아이팟과 모토롤라의 휴대전화 역시 빨강 핑크 파랑 자주 등 유색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어려운 현실에서 변화를 찾고 싶어하는 욕구가 기분을 좋게 하는 알록달록한 제품들의 선호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불황 먹고 쑥쑥! 독한 色들의 반란

    자동차는 은색, 고급 보석은 ‘투명색’, 넥타이는 붉은색, 옷은 검은색.

    그러나 이들 소비자가 ‘준(準)부동산’으로 여겨지는 자동차를 고를 때는 색상 선택에 보수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현대자동차의 ‘2008년 승용 차종별 외장컬러 분석’ 자료에 따르면 에쿠스 등 최고급 차량을 제외한 거의 모든 차종에서 순은색, 그레이티타늄, 슬릭실버 등의 이름을 단 은색 계열의 차량이 가장 잘 팔린 것으로 조사됐다. 아반떼의 ‘컨티넨털실버색’은 이 차종 전체 판매량의 56.9%, 베르나의 ‘순은색’은 64.3%를 기록했다. 한편 쏘나타 ‘슬릭실버’ 색의 판매비율은 올 상반기 46.6%, 10월 47.6% 선이었으나 11월 들어 50.9%로 뛰어올랐다.

    수입자동차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경기 침체가 본격화한 10월 첫선을 보인 푸조의 ‘308SW HDi’ 모델은 현재 전체 판매 차량의 50%가 은색이다. 차량코팅 업체 PPG인더스트리가 2007년 전 세계적으로 판매된 자동차들의 인기 색상 비중을 조사한 결과 은색(회색)의 평균 판매량이 31.5%이었던 데 비춰볼 때 높은 수치다. 푸조의 공식 수입원인 한불모터스 김주영 팀장은 “불경기에는 작은 스크래치가 나거나 때가 타도 크게 티나지 않아 관리비가 적게 든다는 이유로 은색 또는 회색의 선호도가 뚜렷해진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 서초지점의 한남구 차장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은색은 중고 시장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아 급히 파는 경우 유동성 확보에 용이하다”고 덧붙였다.

    경기와 색깔의 함수관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패션 관련 업종일 터. 2008년 겨울부터 2009년 봄여름을 관통하는 ‘메가 트렌드’ 컬러는 역시 블랙이다. 봄여름까지 블랙의 인기가 이어진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 패션 트렌드 정보사 PFIN의 이소정 선임연구원은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불경기에는 계절에 맞는 옷을 각기 따로 구입하기보다 계절에 상관없이 어떤 옷과도 매치하기 쉬운 시즌리스(season-less)한 아이템을 선호하기 때문에 블랙 또는 회색 섞인 파스텔톤 등이 인기를 끈다”고 설명했다.

    채윤진 PFIN 마케팅팀 대리는 “칙칙한 메인 컬러 대신 포인트 색으로 노란색과 핑크 등이 널리 쓰이면서 불황 속에서 우울함을 떨쳐내는 활력소 기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인트 색과 관련된 트렌드는 넥타이, 스카프, 패션시계 및 주얼리 등 액세서리류에 정직하게 반영되고 있다. 페라가모 코리아의 남성용 넥타이와 여성용 스카프의 색상별 판매 비중을 조사한 결과 화려한 빨간색, 오렌지색 등 붉은색 계열(38%)과 화사한 핑크(39%)가 현재 가장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오롱패션 ‘지오투’ 디자인실의 우주영 디자이너는 “불황 속에서 소박하게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를 상징하듯 화사함을 강조한 보라색과 큐빅(작은 보석 장식) 넥타이가 가장 큰 인기”라고 전했다. 남성복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된 상황에서도 이번 시즌, 화려한 색의 넥타이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지수 포실코리아 홍보마케팅부 대리는 “중저가 패션 주얼리, 시계 부문에서는 비용 대비 자기표현 효과가 큰 과감한 색상의 아이템이 잘 팔린다”고 전했다. 골드 컬러, 뱀피 무늬 등 크고 눈에 띄는 제품들이 많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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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체기 빨간 립스틱 법칙 올해도 통해

    반면 고가 명품 주얼리 브랜드들의 베스트셀러는 화려한 색상의 유색 보석류가 아닌 심플한 투명 다이아몬드류. 이는 소형 가전은 알록달록한 색이, 자동차는 가장 무난한 은색이 인기를 얻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쇼메코리아 관계자는 “다이아몬드는 투자 상품으로 생각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유색 보석은 남의 눈에 많이 띄고 사치스럽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요즘 같은 때는 꺼리는 편”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1캐럿 이상의 다이아몬드 가격은 매년 상승하고 있고 상속세, 증여세 부과 대상이 아닌 데다 유석 보석에 비해 ‘중고가’의 평가절하 정도가 적어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불황은 염색 컬러의 인기도 바꿔놓고 있다. 이주은 정샘물 인스피레이션 홍보이사는 “자주 염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에서 블랙, 초코브라운 등이 인기를 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도 같은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

    경기침체기에 ‘반드시’ 뜬다는 빨간 립스틱의 인기는 올해도 유효할까. 12월 현재 지난해 대비 14.2% 매출이 성장한 태평양화장품 ‘라네즈’ 립스틱 부문의 경우 유독 빨간색 립스틱의 매출이 77.2%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수입 브랜드 ‘로라 메르시에’도 경제위기가 본격화하면서 기존 립스틱 컬러 판매량 1, 2위를 차지했던 누드톤 립스틱이 레드, 와인색 립스틱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채윤진 PFIN 대리는 “10년 전 외환위기 때도 ‘정장족’ ‘캐주얼족’ 모두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며 “빨간 립스틱은 가장 저렴하게 가장 큰 심리적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평가했다. PFIN 측은 “불황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붉은색 립스틱을 바르는 여성 심리의 기저에는 여성미를 최대한 강조함으로써 어려운 현실을 도피할 ‘취집(취직과 시집)’에 유리해지겠다는 욕구가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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