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2

2008.11.25

사각 쿠션 70만원의 교훈

‘내 인생의 황당과 감동 사이’

  • 박현정 홍보대행사 엔자임 과장

    입력2008-11-20 14:2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점심시간 다 됐는데… 같이 식사하실래요?” 면접이 끝난 후 사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들은 다리가 후들거리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면접인데, 나는 망설임 없이 “네, 좋아요!”라고 답한 뒤 베트남 쌀국수 한 그릇을 대접(?)받고 나왔다.

    이미 타사의 입사 합격 통보를 받은 뒤였지만, 나는 이 회사에 더 욕심이 났고 고민 없이 방향을 틀었다. 헬스케어 전문 홍보대행사인 만큼 업무는 생소하고 어려웠다. 그런데도 회사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입사 직후부터 굵직한 행사를 맡아 야근을 계속하는데도 신나기만 했다.

    그러나 이벤트가 내 체질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내 인생에도 ‘이벤트’가 생기고 말았다. 때는 한 제약회사의 기자간담회를 하루 앞둔 날. 참석자 기념품용으로 주문한 알약 모양의 사각 쿠션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새끈’하고 ‘모던’하게 생긴 것이었는데 막상 도착한 제품은 사각형이 되기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듯 삐뚤어진 모양새에 옆구리 터진 김밥처럼 군데군데 솜까지 나와 있었다. 싸구려 특유의 파란 형광색에 까칠한 재질의 천은 때밀이 수건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결국 70개의 쿠션은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창고로 직행했다.

    사각 쿠션 70만원의 교훈
    제작비 70만원도 내 한숨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갔다. 급히 다른 선물로 대체하긴 했지만 사장님의 실망스러운 표정,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심지어 내가 70만원을 물어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겹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행히 행사는 잘 마무리됐고, 70개의 쿠션은 공짜로 줘도 안 가져간다는 동료 직원들의 외면 속에 곧바로 폐기처분됐다. 그러나 70만원의 효과는 컸다. 이후 나는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잘못 배달돼 온 청바지 하나 교환 못하던 사람이 업체들에 ‘따지기쟁이’로 소문나기도 했다. 가끔 매너리즘에 빠질 때면 나는 ‘70만원의 교훈’을 떠올린다. 70만원은 내게 초심(初心)과도 같은 의미이기에.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