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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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秘法 개정 추진 국정원 할 말 있다

합법적 감청도 못하는 게 현실 … “현대 범죄 수사 꼭 필요” 직접 팔 걷어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08-10-20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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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通秘法 개정 추진  국정원 할 말 있다
    한달여 전 몇몇 언론이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추진하는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 개정에 반대하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해 논란이 일었다. 자신의 휴대전화가 감청되는 것을 반기는 사람은 없을 터다. 기자도 습관적으로 휴대전화의 감청 가능성에 대해 신경 쓰면서 생활한다. 이런 상황에 국정원이 휴대전화 감청을 위해 통비법을 개정하겠다고 했으니 반대 여론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정원이 통비법 개정을 추진한 이유를 설명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므로 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통비법은 제3조 등에서 통신감청은 통비법, 형사소송법, 군사법원법이 정한 규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규정해놓고 있다. 그렇다면 적법하게 감청할 수 있는데 국정원은 무슨 이유로 통비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국정원은 적법하게 개발된 감청장비를 SKT, KTF, LGT 같은 통신업체들이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국정원은 왜 감청장비 구축을 강제하려 하는가. 그들의 설명이다.

    감청장비 개발·설치 강제 조항 필요

    “적법하게 감청하려면 시설이나 장비를 갖춰야 하는데 통비법은 적법한 감청은 허가했으면서도 감청 장비나 시설을 갖추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규정해놓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휴대전화는 무선 주파수가 랜덤(random·무작위)하게 뛰는 부호분할 다중접속(CDMA) 방식인데, 이러한 휴대전화의 무선 주파수를 잡는 감청장비 개발에는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나온 것이 각각의 휴대전화를 연결하는 교환기를 토대로 한 감청이다. 교환기를 이용하는 감청장비 개발에는 돈이 적게 들어간다. 우리가 바라는 점은 교환기를 이용한 감청장비를 개발하고 이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통비법은 적법한 감청장비 개발과 설치를 강제하고 있지 않아 누구도 이를 개발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수사를 진행하는 국정원, 검찰, 경찰, 기무사는 무선 주파수를 잡는 감청기를 개발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무선 주파수 감청장비 개발과 교환기를 토대로 하는 감청장비 개발 가운데 어느 것이 국민 세금을 절약하는 길인가?”



    2005년 터진 삼성그룹을 대상으로 한 X파일 사건은 통신을 감청한 것이 아니라 식당 등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녹음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불법 통신감청 문제로 비화됐다.

    그러자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은 2002년 3월 이후에는 국정원이 불법으로 통신감청을 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그 전에는 불법 통신감청을 했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인정돼 검찰이 ‘인지수사’를 벌였다.

    이 수사에서 검찰은 국정원이 사용한 불법 감청장비로 휴대전화의 무선 주파수를 잡는 ‘카스(CAS)’를 찾아냈고, 카스를 사용하던 시절의 국정원장 임동원 씨와 신건 씨를 통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2002년에 카스를 갖고 있었다면 지금 국정원은 휴대전화의 무선 주파수를 훨씬 더 잘 잡는 성능 좋은 감청장비를 개발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통신업체의 교환기를 토대로 한 감청을 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일까.

    “카스 같은 감청장비를 갖고 있으면 국정원은 또다시 불법 감청 유혹에 빠지거나 불법 감청을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2002년 3월 카스 장비를 전량 폐기했다. 게다가 그 장비는 값도 비싸기 때문에 통신업체의 교환기를 토대로 한 합법 감청만 하겠다는 것이 통비법 개정을 추진한 근본 이유다. 이렇게 하려면 교환기를 이용하는 감청장비가 제작돼야 하는데 지금의 통비법은 교환기를 이용한 감청장비 개발을 규율하고 있지 않아 장비 개발 및 생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현재 휴대전화 감청은 영장이 있어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려면 교환기를 이용한 감청장비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과 통신업자는 수사기관이 법률에 따라 감청을 요청할 경우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을 통비법에 넣어야 한다.”

    국제 범죄·산업기밀 보호에 주력

    현행 통비법은 정보·수사기관이 감청한 경우 이를 의무적으로 대상자에게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정원은 감청 사실 통보 제도는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정보·수사기관이 어떤 통화를 들었는지에 대한 명세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감청 임무에 협조한 통신업자가 대상자에게 정확히 통보하도록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유선전화는 붙박이지만 휴대전화는 마구 이동한다. 더욱이 다른 사람의 것을 빌려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휴대전화는 범죄자들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 산업기밀 유출이나 국제 범죄에도 휴대전화가 사용되고 있다. 국정원뿐 아니라 검찰, 경찰, 기무사 관계자들도 휴대전화 통화를 추적하지 않으면 현대 범죄를 수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17대 국회에서는 10여 명이 넘는 국회의원이 통비법 개정안을 제출해 하나로 통합됐고,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통과했다. 그러나 본회의가 열리지 않고 17대 국회가 종료됨에 따라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국정원 측은 “통비법 개정은 법무부가 추진해야 하는 일임에도 그들이 하지 않아 간첩사건, 국제 범죄, 산업기밀 보호에 주력하는 국정원이 어쩔 수 없이 나섰다”며 국정원이 하기 때문에 무조건 비난하는 현상에 대해 억울해했다.

    김승규 전 원장의 고백과 후폭풍

    불법 감청 드러난 후 국정원 뒤덮은 죽음의 그림자


    通秘法 개정 추진  국정원 할 말 있다

    불법 감청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자 자살한 이모 전 국정원 차장의 빈소.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추진과 관련해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X파일 사건 이후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이 2002년 3월 이전까지 국정원은 카스 장비를 이용해 불법 감청을 했다고 고백함으로써 터진 국정원 초토화 사건이다. 당시 김 원장의 고백으로 2002년 3월 이전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 임동원 두 전직 국정원장이 불법 감청을 지휘한 혐의로 구속됐다.

    불법 감청은 국정원 국내 파트에서 했다. 따라서 검찰은 국내 담당 차장을 지낸 사람들도 조사했다. 그로 인해 이모 전 차장이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그는 이 일로 큰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했다. 이 전 차장에 앞서 국내 담당 차장을 지낸 김모 씨는 사위를 보려던 시점에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됐다. 그러자 결혼을 앞두고 있던 그의 딸이 충격을 받아 자살했다.

    정보기관장이 불법 감청을 했다고 고백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 후 국정원에 몰아친 죽음의 그림자도 국정원 직원들에게는 충격이었다. 해외공작이나 대북공작을 위해서라면 몰라도 사찰을 위한 불법 감청은 할 수 없다는 게 통비법 개정을 설명하는 국정원 측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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