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5

2008.10.07

서둘러 하늘길 오른 셰르파 ‘바부 치리’

  • 트래블게릴라 멤버 www.parkspark.com

    입력2008-10-01 11:2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서둘러 하늘길 오른 셰르파 ‘바부 치리’

    바부 치리가 묻힌 네팔 에베레스트.

    산행 일주일 만에 남체(Namche)에 도착하는 날이다. 3000m급 산을 하루에도 몇 개씩 넘는 일은 고행과 같았다. 아침 7시면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오후 서너 시면 산행을 마쳤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히말라야는 오후 5시만 되면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날이 지날수록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고, 세상에 혼자 버려진 느낌이었다. 산을 넘으면서 가장 허무한 순간은 하산하는 길이었다. 무릎이 깨지는 통증을 감수하며 올랐던 산이 아니던가. 가쁜 숨을 헉헉 몰아쉬며 12kg 무게의 배낭을 짊어지고 올랐던 산이었다. 트레킹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길은 오르고 또 오르고, 점점 오르는 길만 있는 줄 알았다.

    해발 약 3500m의 남체에 도착하는 순간 무척 당황스러웠다. 에베레스트로 향하는 산악마을의 구심적 구실을 하는 남체는 생각보다 훨씬 큰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현지인과 상인들, 등반객과 셰르파들로 골목은 매우 분주했고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외톨이처럼 세상과 단절됐던 나는 그 모든 것이 낯설었고,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골목을 서성여야 했다.

    에베레스트 11번 등정 지상 최고의 명성

    남체에서는 이틀을 머물렀다. 고도 적응을 위해서였다. 이후부터는 하루에 500m 이상 고도를 높이지 않았다. 3500m가 넘으면 고산병의 위험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길은 느려졌고 다시 세상과 단절되기 시작한 것이다. 첫날은 3867m의 텡보체(Tengboche)에서 머물렀다. 이튿날 3958m 팡보체(Pangboche)의 허름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식당이었고, 부식이 귀하기 때문에 음식 또한 열악했다. 주문한 야채볶음밥은 맨밥에 깻잎 같은 채소 몇 장을 넣은 것이 고작이었다. 사실 그 채소도 나는 채소로 보지 않았다. 척박한 언덕에서 아무렇게나 피어나는 잡초로 여겨질 뿐이었다.

    식당 유리창에는 히말라야의 여느 식당처럼 세계 각지 산악팀들의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스티커 중에 유독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바부 치리(Babu Chiri)라는 셰르파의 자기 홍보 스티커였다. 그는 에베레스트와 관련해 두 개의 기록을 갖고 있었다. 1995년 2주 사이에 정상을 두 번이나 정복했고, 1999년에는 산소 없이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무려 21시간 동안이나 머물렀다. 한마디로 그는 세계 최고의 셰르파였다. 아마도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려는 수많은 산악인이 그를 찾을 것이고 그는 최고의 셰르파답게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날 저녁 해발 4240m의 페리체(Pheriche)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내가 도착한 마을은 어이없게도 전혀 다른 방향의 딩보체(Dingboche)였다. 물론 딩보체도 에베레스트를 향하는 길목이라 볼 수 있고 약간만 수정하면 페리체의 길과 다시 합쳐지기는 하지만, 어느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고 말았던 것이다.

    서둘러 하늘길 오른 셰르파 ‘바부 치리’

    세계 최고의 셰르파였던 바부 치리 영정 사진.

    다음 날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을 잘못 들어선 탓에 고도는 더 높아졌고 아득히 언덕 아래 내가 묵으려 했던 페리체를 보며 길을 걸었다. 다행히 언덕은 완만했고 모처럼 편한 길을 걸었다. 점심 무렵 도착한 두글라(Duglha)에서는 인부 몇 명이 공사를 하고 있었다. 허술하기는 했지만 시멘트와 돌을 이용해 탑을 쌓고 있었고, 완성도 되지 않은 탑에는 누군가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추모비인 모양이었다. 하긴 이 길목은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로 향했던 도전자들이 지나갔던 길이 아니던가. 그도 이 길을 갔던 사람임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영정 밑에 적힌 그의 이름을 보면서 나는 무릎이 꺾이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전날 내가 스티커에서 보았던 바부 치리였다. 부와 명예를 누리는 세계 최고의 셰르파일 것으로 여겼던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직 붙이지 않은 금속판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1965년생이고 13세 때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해 에베레스트 정상을 11번이나 올랐으며, 마지막 등정에 성공한 후 하산하는 길에 크레바스에 추락해 3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기록도 하나가 추가돼 있었다. 2000년 5월20일 에베레스트 정상을 무산소로 16시간56분 만에 올라 이전 기록을 4시간가량 단축한 것이다.

    36세 짧은 생 … 초라한 추모비에 휑한 바람

    65년생. 그는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날에는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아 있던 사람이 오늘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간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가 나와 같은 세대라는 사실이 더욱 아렸다. 그는 그 깊은 크레바스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11번이나 올랐던 에베레스트에서의 죽음은 행복한 것이었을까, 불행한 것이었을까. 그가 이룬 업적에 비하면 바람의 길목에 세워진 그의 추모비는 너무도 초라했다.

    서둘러 하늘길 오른 셰르파 ‘바부 치리’
    결국 삶이란 것은 그렇게 허무함을 향해 달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베이스캠프를 향해 산을 올랐고, 바람은 나를 거부하듯 내 발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를 못난 사람이라고 탓하고 있었다. 바보 같은 사람아. 뭐가 그리도 급했을까. 그 많은 미련 어디에 다 묻었을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