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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티무어 베크맘베토프 감독의 ‘원티드’

터뜨리고 부수고 쏘고 액션 히어로들의 세계

  • 심영섭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 교수

터뜨리고 부수고 쏘고 액션 히어로들의 세계

터뜨리고 부수고 쏘고 액션 히어로들의 세계

‘원티드’의 두 주인공으로 상반된 이미지를 능란하게 그려낸 제임스 맥어보이(왼쪽)와 안젤리나 졸리.

영화의 마지막은 물어본다. ‘당신은 가장 최근에 무슨 일을 했는가’라고. 사실 난 ‘원티드’란 영화를 본 것 외에, 이번 주 내내 별다른 일을 한 게 없다. 주인공 역시 아주 시니컬하게 고백한다. 퇴근 시간이 행복한 이유는 내일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니다. 그 다음부터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속도전과 스타일 넘치는 액션, 올림푸스 신전에 사는 것 같은 여신과 남신의 총질을 영접하는 일 말이다. 나는 이 영화가 마음에 든다.

‘원티드’는 속도를 원하는(원티드) 영화다. ‘원티드’는 비상식을 원하는(원티드) 영화다. 무엇보다 ‘원티드’는 논리와 이성을 원하지 않는(언원티드) 영화다. 이 영화는 보이지 않는 총알의 궤적을 손에 잡힐 듯 시각화하고, 동시에 안젤리나 졸리의 머리카락 끝을 스치며 폐곡선을 그리는 총알의 윤무도 보여준다. 아, 이거 어디서 써먹은 거다. 바로 ‘매트릭스’! 그럼에도 영화는 100% 모사품이라고 하기엔 창의적인 구석이, 독자적인 스타일의 미학이 있다. ‘매트릭스’나 ‘이퀼리브리엄’에서 시작된 플로모(Flow-mo·플로모션) 기법을 티무어 베크맘베토프 감독은 만화 수준으로까지 밀어붙인다(사실 이 영화의 원작은 DC 코믹스의 만화가 마크 밀러가 그린 만화다).

청년 웨슬리는 지긋지긋한 직장생활의 와중에서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아버지가 유명 결사단의 킬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무일푼의 신세에서 아버지 유산까지 물려받았다. 기세 좋게 여자친구와 놀아나는 직장 동료를 자판기로 두들겨 패고(거기에는 ‘fuck you’란 글자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킬러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다.

청년의 변화는 그가 외치는 “아임 소리(I’m sorry)”에 그대로 드러난다. 처음에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갈 듯한 미안함의 극치였지만, 결국 그건 피살자의 가슴에 던지는 회심의 비수가 된다. 사실 이 영화 ‘원티드’는 한 청년의 성장담으로도 충분히 읽힌다.

그 후부터 이 세계는 판타지의 스펙터클로 공중회전을 시작한다. 총알은 폐곡선을 그리며 표적에 날아와 박히고, 상처투성이의 육체도 촛농 목욕 한 방이면 완치된다.



어디서 본 듯한 발레하는 총알 … ‘매트릭스’ 짝퉁은 아니다

정확히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암살자들의 총알은 윌리엄 텔의 화살과 주몽의 화살처럼 공중 충돌해 암살자들의 대결을 무승부로 만들며, 숙련된 킬러들은 공중에서 돌진해 상대방 가슴패기에 총질을 하고, 기차 위에서 몸을 던져 허리꺾기를 해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 지경이다. 심지어 자동차들조차 공중돌기를 하며 달리는 기차 옆구리에 박히는 데야.

청년은 늘 꿈에서 깨어나듯 욕조에서 갑작스레 눈을 뜬다. 이것이 현실인가? 감독은 끝까지 이 모든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하게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그러곤 물리학자들이 통탄해 마지않을 이 비과학적인 액션을 다음의 한마디로 일축한다. 이 모든 것은 예정된 운명이었고,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그래서인가. ‘원티드’는 직물기라는 메타포를 반복하며 장대한 시각적 이미지를 축조한다. 하긴 그리스 신화에서 운명의 여신 중 하나가 운명의 씨줄과 날줄을 직조하는 클로토 아닌가. 웨슬리와 결사단의 운명은 거대한 직물기의 형상으로 시각화되면서 반전을 거듭한다(솔직히 ‘원티드’에서 가장 아쉬운 점도 이 운명의 반전 부분이다. 감독은 디즈니에 가서 스토리텔링 기법을 배울 것!).

결국 주인공 웨슬리와 여전사 폭스 역시 운명의 덫에 걸려버리자, 교차하던 씨줄과 날줄은 거미줄 모양의 덫으로 변형돼 시각화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점이 좋은 것이다. 주제를 적극적으로 스타일화하고, 대사나 액션이나 시각적 이미지의 강도가 영화 내내 변용되는 리듬 감각과 속도감.

여전사 안젤리나 졸리 카리스마 발산

‘원티드’가 부수고 터뜨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쥐꼬리만큼 다르다고 느끼는 이유는 티무어 베크맘베토프 감독 때문이다. 카자흐스탄 출신으로 러시아의 타란티노라 불리는 그는 2004년 저예산 영화 ‘나이트 워치’로 러시아에서 ‘반지의 제왕’ ‘킹콩’ 같은 미국 영화를 물리치는 대박을 터뜨렸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물 좋은 할리우드에서 원없이 한판 잘 논 것 같다.

물론 여제 안젤리나 졸리의 쿨함과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얼굴 스펙터클을 영접하는 기쁨도 빼놓을 수 없다. 맥어보이의 경우 영국 배우라는 인상을 지우고 드디어 할리우드에 안착한 제2의 데뷔를 해냈다. 부디 그의 눈빛과 모성을 자극하는 얼굴을 더 자주 볼 수 있길. 그러나 이 영화가 한 청년의 성장담으로 읽힌다 해도, 제임스 맥어보이가 영화의 80% 이상 등장하는 실질적 주인공이라 해도 ‘원티드’의 진정한 주인공은 안젤리나 졸리다. 맥어보이를 그윽이 쳐다보며 기차에서 터널을 통과하는 장면이나 영화의 마지막 그의 선택(비밀임!) 역시 그답다고 할밖에. 몸에 문신이 있든, 과거에 마약을 했든 졸리의 카리스마는 그가 왜 현대의 여전사인지를 언어를 뛰어넘어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그러므로 ‘원티드’ 관객들은 더 정비된 스토리와 더 창의적인 반전을 원하겠지만, 이 극단적인 속도의 잔인한 영화를 ‘매트릭스’와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관객들이 영화를 소비하는 데 별다른 문제를 안겨줄 것 같지는 않다. ‘고질라’ 같은 누더기 스펙터클도, ‘인디펜던스 데이’ 같은 멍청한 블록버스터도 전 세계 관객을 끌어모았는데 ‘원티드’가 관객을 모은다고 해서 배 아파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주간동아 2008.07.15 644호 (p74~76)

심영섭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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