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2

2008.07.01

행복에 이르는 다양한 길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8-06-25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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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에 이르는 다양한 길

    <b>털없는 원숭이의 행복론</b>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동광 옮김/ 까치 펴냄/ 211쪽/ 8500원

    세계 최장수 프랑스 여성 마담 장 칼망은 평생 동안 값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으며, 푸아그라와 프로방스 스튜를 먹었다고 한다. 117세가 되자 주위에서 술과 담배를 끊게 하려고 했지만, 그는 의사들을 좌절시키고 죽음을 맞이한 122세까지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계속해서 이것들을 즐겼다.

    만약 칼망이 술과 담배를 할 수 없었다면 과연 행복했을까? 동물행동학자인 데즈먼드 모리스는 ‘털없는 원숭이의 행복론’에서 이 사례를 제시하며 과도한 쾌락 추구도 아니고 지나친 금욕주의도 아닌 중용은 건강을 해치지 않으면서 인간에게 행복감을 안겨준다고 설명한다.

    나는 최근 출판시장의 흐름을 정리하면서 ‘개중’(개인+대중)은 이제 성공 추구라는 힘겨운 싸움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행복 찾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성향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푸른숲)이나 ‘행복한 이기주의자’(웨인 다이어, 21세기북스) 같은 행복을 아이콘으로 삼은 책들이 인기를 끈 2006년에 명확하게 드러났다. 지난해에는 이 흐름이 더욱 강화돼 일과 개인생활 모두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현명’함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오늘날 개인이 느끼는 행복의 유형이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모리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는 행복이란 “삶이 갑자기 더 좋아졌을 때 몰려드는 기쁨”이라고 정의한 뒤, 행복은 여러 형태로 오며 우리의 삶에서 극적인 개선이 이뤄졌을 때만 행복이 강렬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결국 판에 박힌 역할모델의 행복이란 애초 없는 셈이다. 따라서 행복에 대한 기준을 엄격히 정해놓고 그 기준에 도달하기 위한 매뉴얼을 좇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는 저자가 제시한 것처럼 우리가 처한 상황이 호기심, 야망, 경쟁심, 협동심, 사회성, 유희성, 상상력 등 인간 본성의 기본적인 특성과 부합할 때 행복이라는 순간을 얻을 가능성이 크게 늘어난다는 관점에서 행복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먼저 일상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모든 행복의 원천부터 조사해봐야 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행복의 유형은 목표(달성자), 경쟁(승자), 협동(조력자), 유전(친족), 육욕(쾌락주의자), 대뇌(지식인), 리듬(댄서), 고통(마조히스트), 위험(위험을 무릅쓰는 사람), 선택(일상사를 무시하는 사람), 정적(묵상자), 독실한 믿음(신자), 화학적 행복(약물 복용자), 공상(백일몽을 꾸는 몽상가), 희극(웃는 사람), 우연(행운아) 등 모두 16가지다. 분류가 다소 도식적이긴 하지만 이 하나하나를 파악한 다음, 다시 하나로 아우르면 행복에 대한 일반 원칙이 명확해진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목표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비결은 진지한 도전이 없고 사소한 행위가 반복되는 삶이 인간이라는 종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다. 물론 목표는 너무 높아도 너무 낮아도 안 되고 현실적이어야 하며 개인의 잠재력에 걸맞아야 한다. 경쟁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승리가 가장 큰 기쁨이지만, 심각한 경쟁은 행복을 짓누르는 유해한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따라서 이겼을 때는 무척 중요한 게임이었다고 확신하고, 졌을 때는 게임 결과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고 스스로 설득하는 ‘이중적 사고’를 할 줄 안다면 경쟁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원천이 증대될 수 있다.

    무리지어 사는 동물인 인간은 고립된 개인으로는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므로 늘 협동으로 경쟁을 완화해야 한다. 따라서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적지 않아서 조금만 노력하면 협동의 행복이 증가되는 사회적 맥락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부족 집단이 비대해지면서 경쟁은 심해지고 협력은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와 인간의 두 가지 기본 욕구 사이의 균형이 붕괴됐다.

    인간은 목숨을 내건 극한 스포츠에 빠지거나, 과도한 쾌락을 추구하거나, 정신적 피학증에 빠져들기도 한다. 고통받는 것을 즐기는 소수자들은 고통에서 즐거움을, 부정에서 행복을, 금욕에서 기쁨을 얻는다. 성공적으로 위험을 감수해내서 오는 보상을 즐기는 소수자들도 있는데, 이들은 고통에서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피해가는 데서 행복을 느낀다.

    미셀 포셰는 ‘행복의 역사’(열린터)에서 “행복은 우리의 필연적 운명이자 우리 역사의 궁극점이며, 위대한 내면의 인간인 고대인(Homo Althus)을 실현하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행복산업이 뜨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한 대학에선 행복학 전공이 박사과정에 개설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어떤 이는 양성평등 문화, 환경, 놀이, 공공디자인, 미래의 가족, 뇌, 탈민족 같은 문화 키워드들에 주목하는 현상이 행복산업이 뜨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도 편다.

    이런 백화제방의 논의는 개인이 추구하는 행복이 갈수록 다양화해짐을 확인해준다. 이럴 때 생물학에 대한 평생의 연구를 행복이라는 주제에 접목시켜 서술한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제각기 생각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사유해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로 책에는 160개에 이르는, 지성들의 행복에 대한 독창적인 정의도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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