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6

2017.02.22

트럼프 시대 개막

군사력은 더 갖게 하고 통상 이익은 챙긴다

트럼프 정부의 새로운 對日 정책

  •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joyhis@mofa.go.kr

    입력2017-02-17 16: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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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과 일본 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정부와 미·일 동맹 강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을 양대 축으로 밀월기를 구가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선거(대선) 기간에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고립주의’ 입장에서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비판해왔다. 그는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제시하고, 오바마 정부 때 도입된 국방 시퀘스터(sequester·연방정부 예산의 자동삭감 조치) 폐지와 육·해·공군 및 해병대 전력의 대폭적인 강화를 주장했다. 트럼프의 비개입주의(non-interventionism)가 전통적인 고립주의와 달리 선택적 관여로 대응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고립주의(neo-isolationism)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 시기 미·일 관계는 2월 10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윤곽을 일부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이 자리에서 △확고한 일본 방어 △아시아·태평양(아태)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강화 △미·일 양자 무역협정 논의 등을 골자로 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또한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미·일 안보조약 적용 대상임을 확인했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일 대 중국’이라는 전략적 경쟁구도가 선명해진 것. 앞으로도 미국은 아태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제고를 토대로 이른바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 전략을 유지할 개연성이 크다. 이 경우 미국은 한국, 일본 등과의 동맹관계를 중시할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동맹국들이 트럼프 정부의 아태지역 정책에 불안해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과 발언에 경제적 접근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동맹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하고,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정부가 일본에 동맹의 분담금 증액을 압박할 경우 일본은 ‘아태지역 안보의 초석’인 미·일 동맹을 유지하고자 일정 정도 수용할 개연성이 크다. 다만, 중국의 해양 진출에 대한 미국의 실효적 대응, 북핵 확장억지의 실효성 등과 관련해 일본이 느끼는 안보 불안감을 미국이 불식해주지 못할 경우 미·일 동맹의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다.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미·일 갈등이 예상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미국의 TPP 탈퇴에 따른 미·일 양자 간 협력 △무역투자에 관한 높은 기준 설정 △시장장벽 감소 △경제 및 고용성장 기회 확대 등 총론적 성격의 합의만 명시했다. 하지만 무역자유화 전략과 다자주의를 중시한 오바마 정부와 비교할 때 트럼프 정부는 안보보다 경제를 중시하고 미국 중심의 일방적인 접근이 두드러진다. 트럼프 정부는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동맹 여부를 막론하고 양자적 접근을 통해 환율 및 무역역조 시정, 시장 개방 등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대일 무역적자의 시정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향후 레이건 정부 때의 ‘슈퍼 301조’ 같은 무역보복 조치를 동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의 무역자유화 정책 역시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내각은 TPP를 미·일 동맹의 상징이자 일본 경제의 부활을 위한 구조개혁의 핵심 동력원으로 간주해 지난해 11월 의회가 TPP 비준을 통과시켰다. 트럼프 정부가 TPP 탈퇴를 선언한 상황에서 일본은 △미국 없이 새로운 TPP 체결을 추진하고 추후 미국의 참가를 유도하는 방안 △유럽연합(EU) 및 동남아, 남미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가속화하는 방안 △주요 무역상대국과 양자 FTA를 우선 추진하는 방안 등을 놓고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미·일 통상 마찰 불붙을 조짐

    한편 트럼프 정부 하에서 역사 문제는 미·일 관계의 주요 현안에서 제외될 공산이 크다. 오바마 정부는 미·일 동맹을 확대 발전시키면서도 일본의 퇴행적 역사 인식에 대해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미·일 간 역사 갈등의 가장 상징적 장소인 히로시마와 하와이 진주만을 아베 총리와 함께 방문해 양국 간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일본 내 과도한 역사 수정주의를 견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오바마 정부는 미국의 아태 안보전략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한일 간 역사 마찰을 중재해왔다. 그렇지만 이념보다 실리 위주의 트럼프 정부는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를 견제하거나, 한일 간 과거사 마찰을 중재하는 등의 노력에 소극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정부 출범을 계기로 일본이 독자적인 방위력 정비와 미·일 동맹 강화를 가속화하고 지역 및 글로벌 차원에서 안보 역할을 확대하는 ‘지역 강국화’ 전략을 쓸 경우 동북아 안보질서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역할 분담 차원에서 일본이 국제적으로 안보 역할을 확대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일본이 중국·북한 위협론을 내세워 미국의 안보 파트너로서 자리 잡을수록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일본의 군사적 보통 국가화 및 미·일 동맹 강화는 대북 억지력과 유사 시 대응 능력 강화, 중국의 연착륙 유도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반면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한 우려가 불식되지 않는다면 일본과 전략적 협력을 둘러싼 국민정서의 악화로 우리의 대일 외교에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 및 자유무역체제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한일 양국은 전통적으로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국제정세의 불투명성이 증가할 때 상호 협력을 강화해왔다. 국제경제의 불안정 요소, 미국 신정부의 아태지역 전략의 불투명성, 북한 위협의 증가, 한중관계의 이완 등을 감안할 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한일 간 전략적 협력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해라고 하겠다. 한국 정부는 미국 신정부의 아태지역 전략에 한국의 이해관계가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트럼프 정부의 핵심 인사 및 미 의회 주요 인사,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공공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반면 탄핵정국 하의 리더십 부재에 따른 대외관계의 장악력 약화 및 국내 정치와 대외관계 연동에 따른 대일 정책의 유동화 가능성은 한일관계의 이완 요소다. 한일 간 위안부 합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등의 재검토 요구가 정치 쟁점으로 부상할 경우 한일관계의 긴장 수위는 높아질 수 있다. 유동성이 강한 ‘정치의 해’를 맞은 한국 상황에서 대외관계와 국내 정치의 과도한 연계는 대외정책의 연속성을 훼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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