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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 LIFE|박문순 화백

고려 청자운반선 재현 나선 박문순 화백

“배 만들기 30년…미친놈 소리 많이 들었지요”

  • 조헌주 동아일보 지식경영팀장 hanscho@donga.com

고려 청자운반선 재현 나선 박문순 화백

고려 청자운반선 재현 나선  박문순 화백

박문순 화백

고려 왕조 500여 년간 최고급 청자를 싣고 강진에서 개성까지 바닷길을 누비던 청자 보물선이 복원된다.

전남 강진군(군수 황주홍)은 최근 ‘고려시대 청자 운송뱃길 재현사업’을 위해 12명의 자문위원단을 선정하고 청자 운반선 복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단순히 운반선 복원에 그치지 않고 고려시대에 청자운반선이 향했던 개성(당시의 고려 수도 개경)까지 배를 띄울 계획을 추진 중이다. 강진군은 청자 보물선 이름을 공모를 통해 ‘어기어차 온누비호’로 정한 바 있으며, 복원을 서둘러 내년 8월 청자축제 기간에 청자를 싣고 개성까지 운송할 계획이다.

뱃길재현사업 추진 주무부서인 강진군 경제발전팀 김종열 팀장은 “1100여 년 전 고려시대 뱃길을 재현하면 역사, 문화적으로는 물론 남북간 교류 협력증진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청자 운반선 재현을 위한 자문위원 가운데는 전통 범선에 매료돼 동양화가의 길을 접다시피 하고 몇 년째 범선 제작에 매달려온 어당 박문순(於堂 朴汶順·60) 화백이 있어 이채롭다.

바닷가 고향 덕에 그의 그림엔 항상 범선 등장



그와 전화통화를 한 뒤 찾아간 곳은 경기 화성시의 공장지대에 자리한 커다란 창고. 문을 열고 들어서니 천장에 닿을 듯 높이 돛을 달고 금세라도 바다 물결을 가르고 나아갈 것 같은 범선들로 가득하다.

“어서 오세요. 내 이거, 무슨 팔자인지. 그림 하다가 배 만드는 일에 푹 빠졌으니, 하하하.”

텁수룩한 구레나룻에 푹 눌러쓴 베레모, 아무렇게나 걸친 옷매무새에서부터 자기만의 세계를 쌓아온 예술가의 풍모가 느껴진다.

‘한국 범선화의 최고봉’. 그에게 이런 별칭이 붙게 된 이유는 그의 그림 속에 태양과 달, 바다 그리고 항상 빠짐없이 범선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고많은 사물 중 범선을 즐겨 등장시키게 된 데는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다.

“제가 태어난 곳이 바닷가였지요. 바다와 섬과 배가 하나 된 풍경은 한시도 기억에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전남 해남군에 있는 한반도 최남단, 땅끝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송지면 어란리가 그의 고향이다. 대대로 어부 생활을 하며 배를 만들어온 집안의 역사가 그의 유전자에 이어진 것이다. 자연히 그의 그림에 자주 돛단배가 등장하게 됐고, 어느새 그는 전통 범선화의 독보적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아마 저보다 한국의 전통 돛단배를 많이 스케치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돛단배를 연구하다 이렇게 직접 배를 만들게 된 거지요.”

한국 전통범선 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 화백은 배에 관해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범선 제작의 실무에서는 수준급이라고 할 수 있다. 작업장인 창고 안을 둘러보자고 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설명을 이어갔다.

고려 청자운반선 재현 나선  박문순 화백

경기 화성시 공장지대에 자리한 박문순 화백의 작업실은 그가 만든 범선들로 가득하다.

“이 배는 뱃놀이할 때 쓰는 것이고, 저건 장길산이 해적질할 때 썼던 배지요. 갑판의 생김새나 뱃머리 형태가 모두 다릅니다.”

솔직히 전통 범선에 과문한 필자로서는 다 그게 그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목수를 직접 지휘하며 한 척 한 척 만들어오면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그인지라 배마다 사연이 깃들어 있어 이야기는 그칠 기미가 없다. 말머리를 돌려야 했다.

“돛에는 원래 그림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돛마다 특이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이유는 뭡니까?”

“그렇지요. 전통 돛단배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배들은 지금이라도 바다 위에 띄워놓으면 훌훌 날아갈 겁니다. 하지만 전통 배는 어차피 실용성이 없는 것 아닙니까. 전통 보전, 전시와 교육 목적이 크기 때문에 기왕이면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거지요. 또 내 전공이 그림 아닙니까, 하하하.”

심청이가 그려진 돛을 올려다보니 댕기 머리 대신 귀여운 단발머리를 하고 있다. 사물의 고정된 이미지를 살짝 비틀어놓음으로써 빙그레 웃음 짓게 만든다.

“청자 운반선의 설계도가 남아 있을 리도 없고, 전통 배 만드는 기술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닌데 과연 청자 운반선 복원이 가능할까요?”

그림 팔아 푼돈 생기면 배 제작에 몽땅 털어넣어

지극히 아마추어답게 묻자 박 화백은 단호하게 말한다.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옹기 운반선을 자주 보았는데, 청자 운반선이라고 해도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또 지난해 태안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확인된 청자 보물선이 인양되면 선박구조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가 나올 것입니다.”

박 화백은 다만 강진을 출발해 울돌목을 지나 서해안 따라 북상, 개성에 이르는 험한 바닷길을 무사히 항해할 수 있으려면 그가 만들어온 돛단배보다는 큰 규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현재까지 만든 돛단배는 트레일러로 운송이 가능하게 길이 12m, 너비 4m 정도로 돼 있다. 그동안 배 만드느라 돈도 꽤 많이 들었을 것 같다.

“그림 팔아 푼돈 생기면 배 만드는 데 몽땅 털어넣었으니 미친놈 소리를 들어도 싸지요.”

간단해 보이는 돛단배라 해도 제작에 꼭 필요한 목재를 구하고 다듬고 재단해서 만드는 비용이 1억원을 훌쩍 넘고, 2억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창고에만 이미 9척이 완성돼 있으니 1남2녀의 가장으로 자식 농사나 제대로 지었을지 걱정스럽다. 두 딸은 모두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고 하니 피는 못 속이는가 보다.

“전통 범선 박물관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사람들이 제작비를 일부 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작업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답답해합니다. 전통문화 보전에 뜻이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서면 좋을 텐데….’

박 화백은 꿈에 그리는 전통 범선 박물관이 한국의 어느 바닷가에 들어서는 날, 배 만드는 작업장을 떠나 화폭 앞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08.05.13 635호 (p64~65)

조헌주 동아일보 지식경영팀장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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