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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대한민국 통계 실종 사건

믿지 못할 숫자놀음 이 바보 같은 통계야!

정부부처 각종 지표 정확성·객관성 낙제점 세종문화회관이나 시골 마을회관을 똑같은 문화공간 한 곳 평가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믿지 못할 숫자놀음 이 바보 같은 통계야!

믿지 못할 숫자놀음 이 바보 같은 통계야!

일러스트레이션 · 임혜경

솔직히 신뢰할 만한 게 못 됩니다.” 참여정부 임기가 끝나가던 올해 1월 말, 정부 관계부처의 한 공무원이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J비서관을 찾아와 지역총생산(GRDP) 자료를 내밀며 불쑥 꺼낸 말이다. J비서관은 무척 황당했다. 지역별 경제 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통계가 믿을 수 없다니.

이 공무원이 J비서관을 찾아온 이유는 J비서관의 요청 때문이었다. 당시 J비서관은 참여정부 마지막 보고서인 ‘참여정부 정책보고서’를 손질하던 중이었는데, 문득 지난 5년 동안 지역 간 불균형이 얼마나 해소됐는지 궁금해졌다. 국가균형발전 정책이야말로 참여정부의 핵심정책이 아니었던가. 나름 성과가 있었으리란 기대도 했다.

시군구별 경제 수준 비교할 만한 통계조차 없어

J비서관은 곧바로 행정안전부(옛 행정자치부), 기획재정부(옛 재정경제부), 통계청에 전화를 걸어 지난 5년간의 전국 시군구별 소득이나 지출을 비교할 수 있는 자료를 요청했다. 그런데 관계부처는 아무런 통계자료도 내놓지 못했다.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GRDP가 그나마 내놓은 유일한 통계였던 것. 이도 전국 시군구별 통계가 아닌, 광역시도별 통계에 불과했다.

J비서관은 “시군구별 경제 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통계자료가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하고 요청했는데, 하나도 없다고 하니 답답했다. 그나마 있는 GRDP도 믿을 게 못 된다는 공무원의 말은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세웠던 것일까. 참여정부 임기 내내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주도한 곳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이하 균발위)다. 균발위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균발위는 지난해 7월에야 지역별 경제 수준을 분류할 수 있는 통계지표를 개발했다. 인구, 산업·경제, 재정, 복지, 인프라 등 5개 부문별 14개 지표를 선정한 것. 균발위는 이 지표에 순위를 매기고 그 결과에 가중치를 둬 종합점수를 계산하는 식으로 계량화해 낙후지역, 정체지역, 성장지역, 발전지역 등 4개 지역으로 분류했다.

균발위는 지난해 9월 자신들이 개발한 통계지표의 타당성을 검증받기 위한 공청회에서 자료를 통해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했다. 즉, 통계지표 개발의 취지를 “지역여건을 감안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시행하는 데 있어 그 토대가 아직 미흡하다. 지역여건에 따라 차등화된 지원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종합적 차원의 지역 분류가 필요하다”고 설명한 것.

뒤늦게나마 균발위가 개발한 이 통계지표에도 오류 가능성이 산재한다. 예를 들어 인프라 부문 지표로 선정된 도로율의 경우, 도로 길이를 인구수로 나눠 환산하는 만큼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이나 수도권보다 인구밀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가 오히려 쾌적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상하수도 보급률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참여정부가 임기 내내 강력히 추진했던 국가균형발전 정책조차도 제대로 시행할 수 없을 만큼 취약한 것이 대한민국 통계의 현주소다.

취약한 통계 때문에 교수, 연구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종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김현호 수석연구원은 행정안전부의 의뢰를 받아 지난 한 해 동안 ‘지역생활여건 실태분석 및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김 연구원은 먼저 500개에 가까운 국내 사회지표 가운데 연구와 관련된 325개에 달하는 지표를 검토했다. 교육, 보건, 주거교통, 정보통신, 환경, 복지, 문화여가, 안전 등 지역별 삶의 질을 비교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믿지 못할 숫자놀음 이 바보 같은 통계야!

4월 한 전문 조사원이 시민을 상대로 통계 조사를 하고 있다.

국감이나 감사원 감사 때마다 통계 부실 항상 지적

김 연구원은 이 과정에서 국내 통계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절감했다. 지역별 비교가 가능한 마땅한 지표가 없을뿐더러 어렵사리 고른 지표도 정확성이나 객관성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확성이나 객관성은 통계 신뢰도 측면에서 결정적 요소다.

문화 부문 평가지표로 선택한 문화공간 수의 경우, 생활수준이 가장 좋은 서울의 세종문화회관과 가장 열악한 전남 신안군의 마을회관이 똑같이 1개의 문화공간으로 평가됐다. 이는 객관성이 결여된 것. 주택 부문의 주택보급률은 지방보다 오히려 서울이 더 열악한 것으로 나타나 실제 생활수준과 반대로 나타났다. 교육 부문의 학급당 학생 수도 지방이 서울보다 적어 지역별 비교의 의미가 현저히 떨어졌다.

환경 부문은 더 열악하다. 대기오염도, 수질오염도, 오존오염도 등 환경의 질을 비교할 수 있는 지표는 있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지역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통계였다. 시군구별로 조사돼 있지 않을뿐더러 같은 광역지자체 내에서도 일정한 기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조사된 자료에 불과했던 것. 김 연구원은 결국 하수도 보급률과 대기오염물질 배출시설 수 등을 환경 부문 측정지표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김 연구원은 분통을 터뜨렸다. “기초통계라고 해서 들여다보면 흉내만 냈지 기본조차도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정말 통계후진국이다. 사용 자체가 불가능한 이런 걸 가지고 어떻게 정책을 세우는지 이해할 수 없다. 통계가 문제면 정책 분석이 문제고, 결국 정책 방향 자체도 문제가 된다.”

사실 국내 통계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회 국정감사나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각 부문별로 수없이 지적돼온 사안이다. 주무기관인 통계청은 물론 정부 각 부처 통계업무 관계자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참여정부가 2005년 기획재정부의 외청인 통계청을 차관급으로 격상시킨 것도 통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취지에서다. 통계청이 2006년 2월 당시 501종이던 국가승인통계를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동안 ‘품질진단’한다는 3개년 계획을 발표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첫해에는 보완이 시급한 107종, 2007년과 2008년에는 170여 종씩 품질진단을 실시하기로 했다. 품질진단은 각 분야별 전문가들에게 맡겼다.

2006년 말 통계청은 12개 분야로 나눠 실시한 통계 품질진단 결과를 공청회 형식을 빌려 발표했다. 그 결과를 보면 금융과 에너지 부문 통계는 비교적 무난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금융 부문은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시장이 세계시장에 급격히 개방되면서 통계의 중요성이 관계부처에 깊이 각인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에너지 부문은 정부 산하 공공기관과 일부 대기업들에 의해 독과점 체제로 운영돼온 덕에 통계 관리가 수월할 수 있었다.

반면 보건복지, 농림어업, 노동, 인력, 근로실태 등 상대적으로 관리가 취약할 수밖에 없는 부문에서는 여러 치명적 오류들이 발견됐다. 그러나 통계청은 어떤 통계에서 어떤 오류들이 발견됐는지에 대해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우리도 공개하고 싶지만 정부부처를 어렵사리 설득해서 품질진단을 하고 있는데, 그 결과를 공개하면 다시는 안 하려 들 것 아니냐”는 게 통계청 한 관계자의 군색한 해명이다.

통계청은 2007년 실시한 품질진단 결과에 대해선 아예 대외비에 부쳤다. 통계청은 어떤 통계가 어떤 전문가들에 의해 품질진단을 받았는지도 함구하고 있다. 국민의 혈세로 도대체 누구를 위해 품질진단을 한 것인지 의문이다.

2006년부터 통계 품질진단 … 결과는 ‘쉬쉬’

최종후 고려대 교수(정보통계학)는 “막대한 국가예산을 들여 품질진단을 했으면 그 정보를 공유해 똑같은 오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매번 다른 팀이 다른 방법으로 진단하고 있다”면서 “반쪽짜리 진단사업”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통계청이 품질진단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것에 대해 “피진단기관의 프라이버시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지만, 사실은 자신들이 승인한 국가승인통계에 문제점이 드러나면 여러모로 부담스럽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품질진단에 참여한 한 교수는 품질진단 사업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나타냈다. “현재 진행되는 품질진단 사업은 제도의 미흡한 부분만 따질 뿐, 통계의 근본적인 문제점 해소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이어 “통계청이 아직 국가통계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데도 판을 너무 크게 벌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6년 품질진단에서 지적됐던 오류 가운데 아직까지 개선되지 않은 것들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일례로 농림어업 부문 조사대상 가운데 산림피해단속상황보고, 산림형질변경 허가와 복구상황보고 통계는 지금도 행방불명 상태다. 국가승인통계는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돼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통계청 품질진단 담당부서조차 이 같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2006년부터 국가승인통계에 대해 품질진단을 실시한 지 올해로 3년째. 당초 500종이 조금 넘었던 국가승인통계는 그 사이 1060건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통계청은 이 때문에 품질진단 사업을 2년 연장하기로 했다. 5년간 ‘수술대’ 위에 있을 국가통계, 과연 제대로 수술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OECD 국가와 비교한 대한민국 통계의 현주소

인구 100만명당 통계인력 한국 9명뿐 네덜란드 17분의 1 수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의무적으로 OECD에서 요구하는 통계기준에 맞춰 각종 통계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래야 회원국 간 의미 있는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회원국은 30개국. 우리나라는 1996년 OECD에 가입했다. 우리나라도 그때부터 OECD에 각종 통계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가 OECD에 제공하는 통계실적이 크게 저조하다는 지적이 많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OECD 제공 통계 현황 및 제공실적’을 보면 OECD가 요청한 통계항목 수는 44종(관세청 제외)에 걸쳐 4만6500여 건이나 된다. 그중에서 우리나라의 제공건수는 3만4600여 건으로 75% 정도의 제공률을 나타냈다.

분야별 차이도 컸다. 금융, 교육, 국제 도로사고 통계 분야의 제공건수는 90% 이상 높은 제공률을 기록한 반면 보건복지, 노동, 환경, 산업 통계 분야에서는 50~60%대의 저조한 제공률을 나타냈다.

소비자물가지수, 노동력통계, 주요 경제지표 등 통계청에서 직접 조사하고 제공하는 통계건수 제공률도 60%에 그쳤다. 이는 그만큼 OECD에서 요구하는 통계가 없거나 기준이 달라 제공할 수 없는 통계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계청은 지난해 OECD 요구 통계항목 수가 49종으로 더 늘었다고 밝혔지만, 세부 항목 수의 증감 현황이나 제공건수에 대해서는 공개를 거부했다.

안정임 통계청 국제협력담당 서기관은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크게 뒤처지지 않는 중상 정도 수준”이라면서 “보건복지와 사회 분야 통계가 가장 열악한 만큼 연구를 통한 신규통계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종후 고려대 교수는 “무엇보다 기존 통계를 국제기준에 맞춰나가면서 정확하고 새로운 통계를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통계예산과 인력 확충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일례로 서울과 일본 도쿄의 통계인력을 비교했다. 현재 도쿄도에는 통계부가 별도로 운영되고 있으며, 도쿄도 내 통계인력은 160명에 육박한다. 도쿄도의 부는 서울시의 국 수준. 반면 서울시의 통계인력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OECD 국가별 인구 100만명당 통계인력을 보면 우리나라는 9명으로 네덜란드 159명, 캐나다 139명, 호주 83명, 미국 51명, 일본 49명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주간동아 2008.05.13 635호 (p38~41)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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