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5

2008.05.13

인도 네루家 잔혹사 언제까지?

인디라 간디와 두 아들 테러·사고로 비명횡사 테러범 사면론 일자 잊혀진 재앙 다시 관심사

  • 델리=이지은 통신원 jieunlee333@hotmail.com

    입력2008-05-07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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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네루家 잔혹사 언제까지?

    라훌 간디가 3월 인도 오리사 지방을 찾아 국민회의당 지원 유세를 펼치고 있다.

    인도,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나라들에는 유난히 대를 이은 정치 지도자들이 많다. 지난해 말 암살된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그랬고 방글라데시의 셰이크 하시나, 칼레다 지아 전 총리도 아버지나 남편의 대를 이은 경우다. 인도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런 정치가 집안이 많다. 직업 세습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 카스트 제도가 아직도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명 정치인의 아들이 아버지가 속한 정당의 청년지부를 맡는 일은 매우 흔한 현상이다. 이들은 결국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당내에서 입지를 굳히고 일찍부터 고위직에 진출하곤 한다. 창당한 지 123년이 되는 인도 국민회의당은 당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대를 이은 거물들이 많다. 현재 국민회의당 당수는 소니아 간디로, 인도 독립의 주역이며 초대 총리를 지낸 자와하랄 네루의 외손자 며느리다. 이 네루 가문이야말로 인도의 정치 1번가(家)로서 네루 총리 사망 이후 외동딸인 인디라 간디, 그 아들인 라지브 간디가 줄줄이 국민회의당 당수, 인도 총리를 지냈다. 인도가 독립한 이래 60년의 역사 동안 절반 이상이 네루 가문 사람들에 의해 다스려진 셈이다. 아마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미망인인 소니아 간디도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치명적 결함(?)만 없었더라면 지금쯤 총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문의 후손들이 물려받은 것은 권력과 영예뿐이 아니다. 피로 얼룩진 선대들의 끔찍한 최후까지 짊어지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이들의 운명이다. 남아시아 국가의 정치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테러 공격에 노출돼 있지만, 네루 가문의 역사는 특히 잔혹하다. 인디라 간디 전 총리와 두 아들이 모두 비명횡사했기 때문이다.

    인디라 간디 전 총리는 시크교도 분리주의자들을 과잉 진압한 것이 화근이 돼 1984년 67세에 자신의 경호원인 시크교도들에게 암살당했다. 인디라 간디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의 둘도 없는 정치적 조력자였던 산제이 간디는 어머니보다 4년 앞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인디라 간디의 뒤를 이어 국민회의당을 이끌며 총리가 된 라지브 간디는 1981년 총선 유세 중 남인도 타밀나두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숨졌다. 폭발 순간의 화면에 따르면 바로 발밑에서 터진 폭탄의 위력으로 시신이 산산조각나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테러범 사면은 라훌 간디의 안전 보장용?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암살 원인은 싱할라인과 타밀인 사이의 분쟁으로 혼란에 빠져 있던 스리랑카에 인도가 평화유지군을 파견했기 때문이다. 이 폭탄테러는 인도 평화유지군의 파견에 불만을 갖고 있던 타밀 분리독립주의 무장단체 ‘타밀 타이거’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다누’라는 가명으로 알려진 한 여성이 유세 중인 라지브 간디에게 접근, 그의 발을 만지는 행동으로 경의를 표하는 체하며 자신의 허리에 장착하고 있던 폭발물을 터뜨린 것이다. 인도 중앙정보부는 다누 외에도 많은 이들이 사건에 연루됐다고 보고했으나,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재판이 진행될 때쯤에는 이미 여러 명이 죽은 뒤였다. 결국 재판에 회부된 26명 중에서 사형이 최종 확정된 이는 4명. 이들은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현재 벨로르 감옥에서 17년째 복역 중이다.

    세간의 뇌리에서 잊혀가던 이 암살범들은 17년 만에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됐다. 3월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딸인 프리양카가 4명 중 유일한 여성인 날리니를 만났기 때문이다. 날리니의 감옥에서 한 시간가량 계속된 만남에 대해 국민회의당 측은 ‘순수한 개인적 만남’이었다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그러나 날리니가 이미 라지브 간디의 미망인인 소니아와도 편지를 교류했고, 사면을 청원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프리양카의 방문은 날리니의 사면을 허락하는 조짐이 아니겠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미 국민회의당은 라지브 간디 암살에 연루된 다른 용의자에게 면죄부를 준 바 있다. 1997년 암살사건의 조사를 맡았던 ‘자인(Jain) 위원회’의 중간 보고서에 따르면, 타밀나두의 지역 정당인 DMK가 폭탄테러에 연루됐다고 한다. 그러자 국민회의당은 당시 중앙정부를 구성하고 있던 연립전선에서 DMK를 제외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당시 구즈랄 총리는 이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고, 결국 국민회의당이 연정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자 연립내각은 무너졌다. 이는 1998년 총선으로 이어졌고, 이후 국민회의당은 2004년 총선 때까지 야당의 설움을 겪어야 했다.

    야당 생활이 고됐던 탓일까. 2004년 선거에서 국민회의당은 명분을 버리고 DMK와 공조체제를 구축해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정치권에서는 이 일을 DMK가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인식했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잊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날리니를 사면하면 어떤 정치적 이득이 있을까. 스리랑카 무장단체 ‘타밀 타이거’의 일원인 날리니를 풀어준다고 해도 국민회의당이 가시적인 이득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평론가들은 이 이벤트가 만들어내는 평화적 이미지가 프리양카의 오빠이며 차기 총리 1순위인 라훌 간디의 안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40세가 된 라훌 역시 가문의 전통에 따라 2004년 정계에 투신했다. 지난해 인도 중앙정보부는 ‘보안상의 이유’로 라훌에게 지나친 대중 노출을 삼가라고 권고한 바 있다. 또 타밀 타이거는 스리랑카 조직이지만, 남인도에 사는 타밀인들에게 상당한 정서적 지지를 얻고 있다. 때문에 네루 가문과 타밀 타이거의 화해는 이 지역에서 국민회의당에 대한 여론을 긍정적으로 이끄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프리양카의 주변 인사들은 이번 이벤트를 ‘정치성이 고려되지 않은 평화적 제스처’라고 말한다. 프리양카 자신도 ‘내가 겪었던 폭력과 결핍에서 벗어나 평화로 가는 나름의 방식’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공인(公人)으로서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는 네루 가문의 딸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미 호사가들은 ‘비폭력 정치를 향한 대의적 결단’부터 ‘자기가 무슨 마더 테레사라고…’ 하는 빈정거림까지 구구한 주석을 달고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마음의 평화’뿐이었을까? 오빠를 안전하게 지키고 가문의 영광을 재현할 기회를 잡고 싶었던 것 아닐까? 정치 1번가 네루 집안 사람이 과연 어디까지 탈(脫)정치적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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