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3

2008.04.29

수배 중 서의현 前 총무원장 자수 불교계 갈등의 불씨 되살아나나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 … 40년 제자 스님 등과 다시 충돌 조짐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8-04-21 1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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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배 중 서의현 前 총무원장 자수 불교계 갈등의 불씨 되살아나나

    서의현 전 조계종 총무원장.

    1994년 불교계는 물론 전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조계종 폭력사태의 핵심으로 지목돼 승적을 박탈당했던 ‘불교계 대부’ 서황룡(73·법명 의현) 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1986~94년 총무원장 재임 시절에도 서 전 원장은 재산 은닉, 장기 집권을 위한 청부폭력 동원 의혹 등 스캔들의 중심에 자주 섰다. 임기 중 불교계 내에서는 서 전 원장이 주먹과 돈의 힘을 빌려 종단을 파행적으로 운영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 여비서를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고발당하는 등 사생활 시비도 계속 이어졌다.

    서 전 원장은 서울 봉은사 대난투극이라 불렸던 조계종 분규를 사실상 주도한 것으로 드러난 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이후 대구-경북 지역에서 간간이 모습을 보이다 2005년 11월 국보급 문화재를 은닉하고 빼돌린 혐의로 검찰로부터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다시 잠적, 또 한 번 구설에 올랐다.

    무려 2년 6개월여간 묘연했던 행방. 앞으로 수년간은 더 수사망을 피해다닐 것으로 보였던 서 전 원장이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검찰에 자수한 것으로 밝혀져 그 배경과 그간의 행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구지검 특수부는 3월6일 서 전 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추사 김정희가 쓴 일로향각 현판 1점, 부처가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구품탱, 석가모니 탱화, 금강경 필사본, 대정신수대장경 등 국보급에 버금가는 불교 문화재 340여 점을 경북 상주 성불사와 자신의 비서 집 등으로 빼돌린 혐의다.

    그렇다면 조계종 사태 이후 10년 넘게 잠잠했던 서 전 원장이 다시 문화재 은닉 의혹으로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이는 놀랍게도 40년간 자신을 보필해온 제자의 제보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다.



    수배 중 서의현 前 총무원장 자수 불교계 갈등의 불씨 되살아나나

    1994년 조계종 분규당시 계파 간 승려들이 집단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40년간 보필한 상좌가 제보

    그 시작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지역 일부 주지급 스님들과 서 전 원장의 상좌(스승의 대를 이을 가장 높은 스님)로 검찰에 문화재 은닉 사실을 제보했던 현철 스님에 따르면, 그해 3월 서 전 원장이 제자인 현철 스님을 공금횡령과 특수절도 혐의로 민·형사상 고소하자 이에 현철 스님이 맞대응하면서 일이 커졌다.

    기자와 만난 현철 스님은 스승에 대한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내가 주지로 있던 정법사 어린이집과 관련해 나를 공금횡령으로 고소하더라. 또 한 번은 영천 은해사와 정법사 땅을 내 이름으로 등기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나중에 그 땅을 산 사람에게 ‘당신한테 땅을 기증하려 했는데 현철 스님이 팔아버렸다’고 말해 땅 주인들에게 고소당하기도 했다. 땅 판 돈은 서 전 원장에게 다 줬다. 이럴 수가 있나. 그러더니 내가 수십 년간 본 책 등을 사찰에서 갖고 나왔다고 특수절도로 고소하더라.”

    현철 스님은 이 때문에 2005년 5월경 경찰에 입건됐다고 한다. 당시 유치장에 있던 현철 스님은 서 전 원장이 찾아와 고소 취하조건으로 돈과 부동산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넘겼다고 전했다.

    “각서까지 쓰고 내 돈과 땅을 넘겼는데 또 공금횡령으로 민사소송이 들어왔다. 내 명의의 통장을 만들어 거기로 신도들의 돈을 받으라고 해서 받고, (서 전 원장이 돈을) 빼달라고 할 때마다 통장에서 돈을 찾아 내준 일밖에 없는데 내가 공금을 횡령했다는 거다. 돈도 없고 ‘백’도 없어 대응조차 못했다. 그러니까 돈을 물어주라는 판결이 나오더라. 1960년대부터 함께 살면서 죽으라면 죽고, 하라는 일은 다 했는데 이제 다 뺏기고 아무것도 없다. 신용불량자라는 오명만 얻었을 뿐이다. 그때서야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 서 전 원장의 변호인 전상훈 변호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철 스님의 주장을 반박했다. 전 변호사는 “원래 사찰 재산은 조계종으로 귀속시켜야 하는데 현철 스님이 개인적으로 갖고 있어 소송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전 변호사는 “민사소송 결과만 보더라도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현철 스님은 “서 전 원장은 총무원장 시절 주지들을 임명할 때 사표를 먼저 받아놓고 임명장을 줄 정도로 치밀했던 사람”이라며 “나는 시키는 대로 한 죄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수배 중 서의현 前 총무원장 자수 불교계 갈등의 불씨 되살아나나

    압수수색에서 나온 추사 일로 향각 현판(위)과 석가모니 탱화.

    서 전 원장 변호인 “단순히 사찰에 보관만 했다”

    스승과 제자 간 갈등이 본격화되고, 결국 현철 스님이 검찰에 서 전 원장이 국보급 문화재를 은닉하고 있다고 제보한 것은 그해 7월경. 이후 검찰은 4개월간 수사에 나섰고 서 전 원장의 거처인 상주성불사와 총무원장 시절 비서였던 이모 씨의 서울 평창동 집, 그리고 서 전 원장의 부인으로 알려진 최모 씨 소유의 서울 서초동 호텔과 ‘아기보살’로 알려진 무속인 박모 씨 소유 제주 밀감농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펼쳤다.

    이 네 곳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추사 작품, 구품탱, 석가모니 탱화, 대정 신수대장경, 고려시대 목판 8점 등 국보급에 견줄 만한 미지정 불교 문화재가 대거 발견됐고, 조선 광해군 때 인조반정을 주도한 이귀의 시집도 압수됐다. 전 비서 이씨의 집에서는 고서적, 서화, 글씨, 조사영정(달마대사와 원효대사 등을 그린 영정) 등이 압수됐다. 감정가는 수십억원을 넘어선다. 구품탱은 보물로 신청하지 않아서 그렇지 전국에 두 점밖에 없는, 종교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인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검찰이 그해 11월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하자 서 전 원장은 종적을 감췄고, 최근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후 3년 가까이 잠적하다 최근 자진해서 검찰에 나타난 서 전 원장은 문화재 은닉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탱화 등은 본인의 상좌 스님이 보관했던 것이고, 일부 서적도 과거 스님들이 해오던 방식으로 단순히 사찰에 보관만 한 것이라는 게 서 전 원장 측의 주장이다. 전 변호사는 “평창동과 제주에서 압수수색 당시 발견된 문화재들은 조계종 사태로 사찰(보성사)에서 쫓겨나면서 옮겨놓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 전 원장이 자진해서 모습을 드러내자 일각에서는 사법당국의 신병 확보 소홀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에 대해 검찰 한 관계자는 “불교계의 반발 때문에 무리하게 사찰들을 수색하는 대신 지인들이나 다른 루트로서 전 원장의 자수 의사를 타진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2005년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한 전례가 있음에도 수년째 잠적한 기소중지자를 불구속 기소 처리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검찰은 서 전 원장이 문화재를 처분한 것이 아니라 보관 중이었고, 건강 또한 좋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전 변호사도 “그동안 전립샘암 수술을 받았고, 최근 요실금 증세를 심하게 보이는 등 병원 진단상으로 수감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불구속 판단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법원에 공소장이 접수된 뒤 서 전 원장은 4월3일 처음으로 재판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첫 재판 이후 4월8일 검찰 압수품을 되돌려달라는 ‘압수물가환부 신청’이 재판부에 접수됐는데, 전 변호사는 “서 전 원장이 아닌 조계종 측에서 압수물을 되돌려달라고 신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수배 중 서의현 前 총무원장 자수 불교계 갈등의 불씨 되살아나나

    1991년 당시 대구 동화사 재무국장인 선봉스님이 양심선언자리를 통해 서의현 총무원장의 비리를 폭로하고 있다.

    前 성불사 주지와도 사찰 매매계약 다툼

    서 전 원장은 전 성불사 주지인 K 스님과도 마찰을 빚고 있다. K 스님에 따르면, 1999년 서 전 원장이 20억원을 주고 성불사를 주지인 K 스님에게 넘겨받기로 계약서를 쓴 뒤 실제로는 5억원만 전달하고 사찰을 ‘접수’했다는 것. K 스님은 2005년 사기와 폭력 등의 혐의로 영천경찰서에 서 전 원장을 고소했다. 그러나 서 전 원장이 비슷한 시기에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잠적해버리면서 공소시효가 지나 수사는 종결됐다. 그러자 K 스님은 서 전 의원을 상대로 건축물에 대한 허가명의 이전 등록 절차 이행 소송을 제기해, 두 사람은 법정에서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서 전 원장이 모습을 나타내면서 불교계 인사들과의 갈등이 다시 표면화되고 있다. 스승과 직계 제자, 또한 다른 지역 주지와의 공방이 어떠한 파문을 낳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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