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5

2007.12.18

고춧가루 뺀 환상 국물 쫄깃한 낙지 죽이네!

  • 허시명 여행작가 twojobs@empal.com

    입력2007-12-12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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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춧가루 뺀 환상 국물 쫄깃한 낙지 죽이네!
    속없는 얘기인지 모르지만, 요즘 사람들은 참 잘 먹고 산다. 조선시대 임금들이 먹었던 궁중음식보다도 화려하고 맛깔스럽게 음식을 즐긴다. 교통발달과 물질의 풍요가 가져다준 선물이다. 하지만 검박하게 먹는 것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일이 있었다.

    서울 동숭동 흥사단 건물 4층에 ‘한국요리와문화연구소’가 생겼다. 화요일 오전 연구소를 찾아갔더니 ‘전통 반가 음식반’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남자 둘에 여자 넷, 강의는 연구소 소장인 윤옥희 씨가 맡았다. 윤 소장은 서울 쌍문동에서 20년째 요리학원을 운영하다 이번에 전통요리 전문연구소(www.cfnc.co.kr 02-741-5287)를 차렸다. 이날 음식은 낙지전골, 토란병, 숙주채였다.

    낙지전골은 음식점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지만 윤 소장이 만드는 낙지전골은 좀 달랐다. 우선 매운 낙지요리가 아니었다. 윤 소장은 “매운맛이 강해지면서 우리 음식 맛이 단조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덜 매우면 맛을 더 낼 수 있다는 얘기다.

    튀지 않는 부재료 … 각각의 맛 절묘한 조화

    먼저 낙지 4마리를 소금으로 문질러 씻은 뒤 미지근한 물에 담가 껍질을 벗긴다. 낙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는 역시 쇠고기다. 쇠고기는 150g을 채썰어 양념한다. 낙지전골을 만드는데 신선로처럼 다양한 재료가 들어갔다. 해삼은 국물에 풀어지지 않게 말린 것을 불려 사용한다. 해삼 100g, 조개관자 100g, 중새우 5마리는 껍질을 벗겨 잘 씻은 뒤 물기를 제거한다. 그 밖에 양파 300g, 미나리 200g, 다홍고추 10g이 들어간다. 남은 쇠고기는 곱게 다져 양념하고, 두부 30g을 꼭 짜서 으깨 소금, 후춧가루, 참기름으로 양념한 뒤 구슬만하게 완자를 빚어 밀가루와 달걀을 씌워 지진다. 이쯤 되면 낙지전골의 재료가 다 준비된 셈이다.



    이제부터는 가장 중요한 국물 내는 절차만 남았다. 국물을 내는 데는 쇠고기 양지가 최고다. 양지를 국간장, 소금, 후춧가루를 넣고 1시간 넘게 끓여 국물을 낸다.

    우리 음식의 특징이 잘 살아 있는 것이 전골과 찌개다. 전골이나 찌개나 한통속인데, 전골은 고급스럽고 덜 매운 느낌이 든다면 찌개는 좀 매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비빔밥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의 하나가 된 것처럼, 전골이나 찌개도 한국의 대표음식이다. 여러 가지 재료의 고유한 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생선과 토마토를 넣고 국물 맛을 낸 지중해의 부야베이스에 견줄 일이 아니다.

    윤 소장의 낙지전골은 어느 한 재료 맛이 튀지 않게, 낙지를 제외하고는 한 번씩 익혀낸 상태로 전골냄비에 들어간다. 조개관자는 기름 두르지 않은 번철에 살짝 볶고, 새우는 끓는 소금물에 데치고, 미나리도 소금물에 데쳐낸 뒤 색색이, 켜켜이 전골냄비에 넣는다. 완자와 지단을 올린 뒤 양지국물을 붓고 조심스럽게 끓여내면 낙지전골이 완성된다.

    국물을 맛보니 그 은근하고 깊은 맛에 숟가락이 입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감탄사가 나온다. 요즘 음식점 요리는 맵고 짜고 달고, 맛이 강해야 맛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윤 소장이 만든 반가(班家)의 음식은 맛이 강하진 않지만 재료의 맛을 찾아내고, 그 맛들이 잘 어울리도록 배치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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