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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특파원의 중국 차세대 지도자 열전|⑤ 리위안차오(李源潮)

성장보다 환경 우선…‘퇀파이(중국공산주의청년단) 핵심’

640만명 공산당 간부인사 좌지우지 … 장쑤성 서기로 활약 차기 상무위원 ‘0순위’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성장보다 환경 우선…‘퇀파이(중국공산주의청년단) 핵심’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 직후 중앙조직부장에 임명된 리위안차오(李源潮·57·사진) 전 장쑤(江蘇)성 당서기. 중앙조직부장은 7336만명인 중국 공산당원 가운데 640만명의 간부인사를 좌지우지하는 당내 핵심 요직이다. 제17차 당 대회 이전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의 측근인 허궈창(賀國强) 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이 자리를 맡고 있었다. 2002년 말 당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가 최근까지도 이 자리에 ‘자기 사람’을 앉히지 못했던 것이다.

리 부장은 후 주석의 신임을 받는 ‘퇀파이(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의 핵심 멤버다. 퇀파이는 후 주석을 필두로 한 중국 공산당 내 정치파벌 중 하나다. 현재 중국의 정치권력은 퇀파이와 장 전 주석을 영수로 한 상하이방(上海幇), 쩡 부주석을 핵심으로 한 태자당(太子黨)이 골고루 차지하고 있다.

골고루 잘사는 ‘조화사회 표준 지표’ 고안

리 부장은 후 주석이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를 하던 1983년 12월부터 약 2년간 후 주석과 함께 일했다. 후 주석은 82년 12월 서기처 서기로 선출돼 84년 12월 제1서기로 승진했는데, 그때 같이 일하던 사람들로는 리 부장을 비롯해 리커창(李克强) 상무위원, 류옌둥(劉延東) 정치국 위원이 있다. 이들 3인은 현재 퇀파이의 핵심 멤버이자 후 주석의 ‘측근 중 측근’이다. 리 부장은 당시만 해도 서기처 서열에서 후보위원에 불과하던 리커창보다 한참 앞서 있었다. 하지만 후 주석과의 인연으로 승승장구한 리 상무위원과 달리 리 부장은 서기처 서기를 마친 뒤 중앙대외선전소조 1국장, 중앙대외선전소조 부조장, 중앙대외선전판공실 부주임, 국무원 신문판공실 부주임, 문화부 부부장 등 약 10년간 한직을 떠돌아야 했다. 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공청단 일부 간부들이 학생시위를 지지한 데 책임을 지고 류옌둥과 인책됐던 것. 이로 인해 그는 리커창에 뒤졌고, 공청단의 5세대 1인자에서 2인자로 전락했다.

그의 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장쑤성 서기로 임명된 2002년부터. 경제성장 방식의 전환 필요성에 대해 일찍이 후 주석과 교감을 나눴던 그는 다른 동부지역 성 지도자들이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과학발전관’과 ‘조화사회론’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것과 달리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장쑤성 당서기로 취임하자마자 종전의 구호였던 ‘강성부민(强省富民)’을 ‘부민강성(富民强省)’으로 바꿨다. 앞뒤 글자만 바꿔놓은 것이지만, 전자는 물질을 우선시하고 후자는 인간을 본위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장쑤성의 발전계획도 국내총생산(GDP)의 성장만을 중시하는 방식에서 성내 전 지역이 잘사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장쑤성은 당초 경제가 발달한 창장(長江)강 유역의 쑤난(蘇南) 경제권과 쑤난보다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살 만한 쑤중(蘇中) 경제권, 역사적·지리적 원인으로 경제가 낙후한 쑤베이(蘇北)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의 성에 제1세계부터 제3세계가 동시에 존재했던 것.

그는 이런 불균형을 타개하기 위해 2005년 3월 ‘쑤베이 진흥을 위한 산업건설 전략’을 세우고 산업과 재정, 과학기술, 노동이 쑤난에서 쑤베이로 흐르도록 ‘4개 전이(轉移)’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고정자산 투자와 재정수입, 외자도입, 수출액 등 각종 경제지표에서 사상 처음 쑤베이가 쑤난의 성장속도를 추월하는 효과를 거뒀다.

그는 제17차 당 대회에서 당장(黨章)에 지도이념으로 올라간 ‘과학발전관’도 적극 추진했다. 2004년 4월 장쑤성의 민영 철강회사인 톄번(鐵本)이 불법적으로 서우두(首都)강철의 2배 크기로 확장하려 하자 그는 이를 과잉투자로 규정해 아예 톄번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1000여 개의 과잉투자 항목을 모두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이로 인해 장쑤성의 과잉투자 현상은 확실히 잡혔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이를 거시조정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았을 정도다.

5세대 4대 천왕 … 학력도 다채로워

올해 5월 중국의 3대 호수 중 하나인 우시(無錫)의 타이후(太湖)가 오염으로 녹조현상이 나타나 식수로 쓸 수 없게 되자 그는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그는 현장지도를 통해 “장쑤성의 GDP가 앞으로 15% 줄어도 좋다”며 “환경을 오염시키는 업체는 바로 퇴출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의 말은 엄포가 아니었다. 그는 사건 발생 두 달 뒤 화공 야금 인쇄 염색 제지 전기도금 등 폐수를 많이 배출하는 호수 주변 업체 2150개를 퇴출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GDP만 끌어올리면 ‘만사 오케이’로 여겨온 업체와 지방관리의 환경의식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이런 정책들이 잘 발전해나가던 장쑤성의 발목을 잡은 것도 아니다. 최근 3년간 장쑤성의 발전속도는 전국 3위를 기록했다. 실업률 역시 계속 내려가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가 최근 내세우는 ‘좋으면서도 빠른(又好又快)’ 발전을 먼저 실천한 셈이다. 후 주석은 이런 그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 “장쑤성이 전국에서 솔선수범해 경제발전 방식의 전환과 샤오캉(小康·1인당 GDP 3000달러 정도의 그런대로 잘사는 사회) 사회의 건설을 착실하게 관철하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리 부장은 시진핑 리커창 보시라이(薄熙來) 등과 함께 5세대 4대 천왕(天王)으로 불린다. 후 주석이 권력에서 물러난 뒤 다음 정권은 이들 4명이 핵심 권력을 휘두를 것이라는 얘기다. 시진핑 리커창과 달리 리 부장과 보시라이는 이번에 정치국 상무위원에 들지는 못했지만 다음 당 대회에서는 0순위로 선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가 중앙조직부장에 임명된 것은 후 주석이 집권 1기(2002년 말~2007년 말)와 달리 2기(2007년 말~2012년 말)엔 자신의 뜻대로 인사를 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실제 조만간 이뤄질 인사에서는 공청단 계열이 대거 요직을 차지할 것이라는 소문이 많다. 하지만 공청단 세력은 인력풀이 적은 데다 상하이방과 태자당의 견제가 여전히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리위안차오(李源潮)



·한족

·1950년 11월생

·장쑤(江蘇)성 롄수이(漣水) 출신

1968~1972년 장쑤성 다펑(大豊)현 상하이(上海)농장 농장원

1972~1974년 상하이사범대 수학과 수학

1974~1975년 상하이시 난창(南昌)중학 교사

1975~1978년 상하이시 루만(盧灣)구 야간(業余) 공업전문대(工專) 교수

1978~1982년 푸단(復旦)대 수학과 수학

수학과 공청단 총지부 부서기, 서기

1982~1983년 푸단대 관리과 교수, 대학 공청단 부서기

1983~1983년 공청단 상하이시위원회 부서기, 서기

1983~1990년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

1988~1990년 베이징대 경제관리학원 석사

1990~1993년 중앙대외선전소조 1국 국장

1991~1995년 중앙당교 연구생부 과학사회주의 전공 박사학위

1993~1996년 중앙대외선전소조 부조장,

중앙대외선전판공실 부주임,

국무원 신문판공실 부주임

1996~2000년 문화부 부부장, 당조(黨組) 부서기

2000~2001년 장쑤성 부서기

2001~2002년 장쑤성 부서기, 난징시 서기

2002~2003년 난징시 서기, 장쑤성 서기

2003~2007년 장쑤성 서기, 장쑤성 인대(人大) 상무위원회 주임

2007~현재 중앙정치국 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당 중앙조직부장

제16기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제17기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중앙정치국 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제7기 전국 정협 상무위원

제8, 9기 전국 정협 위원




주간동아 613호 (p40~41)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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