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6

2007.10.16

망측한 해학美 속살 드러낸 조선의 性

1840년작 엽기적 사랑 다룬 희곡 ‘북상기’ … 당시 제도·풍속·인정세태 묘사도 뛰어나

  •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입력2007-10-10 1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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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측한 해학美 속살 드러낸 조선의 性

    단원 김홍도 화풍의 19세기 춘화.

    ‘북상기(北廂記)’는 1840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현재까지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희곡이다. 배경은 강원도 홍천이며, 제목에 등장하는 ‘북상’은 처녀의 처소를 일컫는 표현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 순옥이 거처하는 방이다.

    61세 선비와 18세 기생의 엽기적인 사랑을 극화한 이 희곡은 동고어초(東皐漁樵)라는 사대부에 의해 백화문(白話文)으로 창작됐다. 서양식 희곡이 등장하기 이전 조선시대에 창작된 희곡으로는 1791년 작 이옥(李鈺)의 ‘동상기(東廂記)’가 유일했지만, 이 작품이 발굴됨으로써 조선시대에도 희곡이 널리 읽혔고, 독자의 관심을 끌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특히 이 희곡은 남녀간 섹스를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희곡이 발달한 중국에서도 이처럼 노골적으로 성애 장면을 묘사한 희곡은 없었다. 18세기 이후 ‘금병매’를 비롯한 도색소설의 독자층이 형성됐는데, 이 희곡은 그런 소설만큼이나 도색적 성격이 짙다.

    당시 제도, 풍속, 인정세태를 잘 보여주는 이 작품은 음란성까지 갖추고 있어 19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 가운데 하나로 부각되리라 확신한다. 새롭게 발굴된 이 작품의 줄거리와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강원도 홍천의 사표로서 여색에 무관심한 김낙안 선생의 61세 환갑잔치에서 본관사또가 기생들에게 춤을 추게 한다. 기생 순옥의 춤을 본 낙안 선생은 순옥에게 정시(情詩)를 보내지만, 노치(老痴)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는다. 그러나 낙안 선생은 순옥의 어미인 봉래선을 불러 “말로 안 되면 완력을 쓴다”며 협박한다. 봉래선의 권유로 순옥은 낙안 선생에게 맹서의 글을 쓰게 한 다음 비로소 몸을 허락한다. 낙안 선생이 순옥의 북상(北廂)에 이르러 맹서의 글을 짓게 한 다음 날인 6월6일 합방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 감영에서 파발이 도착해 (순옥에게) 상의원(尙衣院) 침선비(針線婢)로 뽑혔으니, 다음 날 아침 원주 감영에 대령하라 재촉한다. 순옥은 속신(贖身)하는 비용 150냥을 주고 나머지 150냥은 낙안 선생에게 부탁해보라 당부하고 떠난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낙안 선생이 150냥을 내준다. 김약허(金若虛)와 오유(烏有)가 서울로 가서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한다. 순옥은 원주에 들러 명령을 받고 떠난다. 그때 색계상(色界上) 아귀(餓鬼)들이 득실대는 서울에 들어가지 말라는 오유의 말에 따라 양평 두물머리 여관에서 기다린다.

    드디어 순옥은 속신의 문권을 받고 7월6일 황혼녘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7월 칠석에 낙안 선생과의 약속(합방)을 이행한다. 합방에 앞서 봉래선은 딸 순옥에게 잠자리 비방을 가르쳐준다. 다음 날 순옥은 합방 결과 음부에 통증이 심하다는 핑계로 앓아눕고, 낙안 선생이 음경에 약을 발라 음부를 치료한다는 핑계로 외설적 정사를 벌인다.

    장면이 바뀌어 홍천의 유배객 이 부사(李府使)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봉래선을 부른다. 그 뒤 낙안 선생과 이부사가 담배 500근 내기 바둑을 두는데, 낙안 선생이 지고 만다. 마침 담배가 품귀현상을 빚던 때라 진안 청양 등의 산지에서도 담배를 구하지 못하자 낙안 선생과 순옥은 고민에 빠진다. 그때 낙안 선생의 친구 이화양(李華陽)이 담배 대신 순옥을 노비로 보내라고 한다. 순옥과 낙안, 이 부사 모두 이 제안에 동의한다. 봉래선이 순옥을 구할 계략을 짜고 최춘옥설(催春玉屑) 같은 음약(淫藥)을 써서 이 부사를 유혹해 몸을 섞는다. 그 뒤 순옥이 자기 딸임을 밝히고 내기를 무효화한다.

    1_ ‘환갑 축하 잔치’에서

    망측한 해학美 속살 드러낸 조선의 性

    조선시대 희곡 ‘북상기’를 발굴, 소개한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

    순옥을 처음 만난 뒤 순옥에게 빠진 낙안 선생의 독백 장면.

    (낙안 선생 등장한다.)

    이상하단 말이야! 이상해! 내 이제 60평생을 살아오면서 많고 많은 기생 것과 노는 년을 두루두루 거의 다 겪었지. 제일 증오하는 것이 ‘골수를 녹이는 호색(好色)’(溜骨髓)이란 글자요, 정부자(程夫子)의 마음속에는 기생이 없다는 말씀을 제일 사모했던 터지. 향(香)이니 옥(玉)이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학을 삶고 거문고를 불태우는 몰취미한 짓을 할 의향이 없지 않았지. 어라! 순옥을 한번 만나 얼굴을 보고 노래를 들은 뒤로는 눈앞이 어른어른하고 마음이 뒤숭숭하네. 귀를 기울이면 꾀꼬리 소리요, 눈을 감으면 여전히 제비 모습이야. 생각하지 않아도 절로 생각이 나고, 잊으려 해도 잊기가 어렵구나. 시경(詩經)의 ‘얼굴은 무궁화 꽃이요, 옥 같구나 그 사람이여(顔如舜華 玉如其人)’ 두 구절을 가져다 눈에 뜨이는 곳에 붙여놓고 좌우명으로 삼아도 보나, 그림의 떡을 보고 배부르길 바라는 꼴이요, 매실을 바라보며 갈증을 없앤다는 격일세. 이런 때에는 어쩌면 좋단 말이냐?

    (혼잣말을 하며 노래한다.)

    2_ ‘병을 핑계대고(粧病)’에서

    순옥과 낙안 선생이 약을 바른다는 핑계로 정사를 하는 장면이다.

    (순옥 밀치는 듯 밀치지 않는다.)

    선생은 약관을 들고 바짝 다가서서 다독인다.

    (순옥 눈을 감고 베개에 기댄다.)

    선생은 그녀의 금련(金蓮)을 당겨 홑치마를 열어젖힌 뒤, 손으로 옥경(玉莖)을 잡고 그 약기름을 옥지(玉池)의 양 가장자리에 바른다. 한점 한점 바르자 어언간 귀두가 기세가 등등해 옥지 속에 반쯤 빠진다. 가야 할 길만 있고, 물러날 길이 없다.

    순옥 : 병든 곳은 밖에 있는데 어째서 안에 발라요?

    선생 : 외치(外治)가 내치(內治)보다 못한 법이다.

    순옥은 몽롱한 눈빛이 갈수록 동그래지며, 창백한 뺨이 점차 복사빛으로 붉어진다.

    순옥 : 이런 때를, 이런 때를 견딜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 견디리!

    선생 : 어쩌면 좋으냐!

    순옥 : 어쩌면 좋아요!

    (순옥 뚫어지게 바라본다.)

    선생 : 화살이 시위에 걸렸으니 쏘지 않을 수 없겠구나.

    순옥 : 몰염치하기는! 백보 길에 벌써 구십 보를 지나고 나한테 물으면, 십 리도 안 되는 그 길을 내가 그친다고 그치나요? 이 몹쓸 홑치마는 여기 둬서 뭐 할 거나!

    (순옥 옷을 벗는다.)

    3_ ‘춘정을 못 이기다(弄春)’에서

    순옥이 낙안 선생이 오는 것을 예상하고 그를 유혹하는 고혹적인 자태를 연출하는 장면이다.

    순옥 : 그 사람이 오고 어머니가 가면, 오늘밤 일이 어찌 될는지 십중팔구 알 수 없어요.

    봉래선 : 설마, 설마. 이 에미가 밤 깊기 전에 오마. 나, 간다.

    (봉래선 문을 나선다.)

    봉래선 : 선생님! 문 닫아거세요!

    선생 : 알았소!

    (순옥 속으로 생각한다.)

    순옥 : 그가 오는 게 차라리 좋아. 그가 오면, 내가 그의 혼백을 송두리째 뺏어버려야지!

    (밤 전투를 미리 준비한다.)

    (중략)

    (선생이 북상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창 밖에 우두커니 서 있다.)

    창 너머로 보니 유리처럼 환한데 촛대에는 촛불이 밝게 빛나서 방 안은 한낮 같다.

    (창틈을 엿본다.)

    순옥 : 창 밖에서 발소리가 살며시 들려오니 선생이 도착한 것이 분명해.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수놓은 베갯머리에서 쪽진 머리를 흐트러뜨린 채 다듬지도 않았다. 눈처럼 빛나는 살결의 몸을 비단이불 위에 눕히고 녹색 홑이불만 허리에 걸친 채 하체를 모두 드러냈다. 부용(芙蓉)을 살짝 보이면서 계속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독백을 한다.)

    순옥 : 병이 이렇게 힘든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런 때 정인이 곁에서 함께 있어 준다면 병석의 쓸쓸함을 면할 수 있으련만. 공교롭게도 말하기 곤란한 데 병이 있고, 또 치료법이 저렇게 가증스럽구나. 어젯밤 고생한 뒤로부터 외부 통증이 터럭만큼도 덜하지 않아. 도리어 다른 증세가 더해져 내부 통증이 돌멩이가 낀 것 같아. 내가 직접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물건으로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니. 정인이 한 명 있어야 살펴보고 치료할 수 있건만. 그는 또 선량치가 못해. 마치 방아 돌리는 나귀가 제자리 맴돌 듯이 핵심을 찌르지 않아. 이런 걱정을 어디다 쏟아놓겠어.

    4_ ‘춘정을 못 이기다(弄春)’에서

    망측한 해학美 속살 드러낸 조선의 性

    영화 ‘음란서생’.

    음부의 통증을 핑계로 동침을 허락하지 않고 선생의 욕정만을 돋우다가 내보내는 장면이다. 내용이 도발적이다.

    관객 여러분! 들어보세요. 이 여자의 계산은 사람을 홀리는 데 있는지라, 미리 올가미를 만들어놓고 물건을 집어넣으면 거부해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지요. 이번에는 깊이 집어넣으니 여자의 정로(精露)가 벌써 새어나와 옥지가 진진합니다. 이 방울이 연달아 들쑤셔놓아 화심(花心)에서는 아직 쏟지 않았으나, 봉릉(縫稜)은 찢어질 듯했지요.

    (순옥이 이불을 당겨 몸을 덮는다.)

    순옥 : 저는 좋은 의사의 신령한 손힘을 빌려 약물을 깊은 데까지 넣었더니 아픈 통증이 가라앉은 듯해요. 정말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밤이 벌써 자정을 넘겼군요. 어머니가 돌아오실 테니 선생님은 사랑채로 돌아가셔서 조금 기다리세요.

    (선생은 가슴에 불이 난 듯이 주체 못하고 쓸어내린다.)

    순옥은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앉는다. 눈같이 흰 살결이 거의 드러나고 부용이 살짝 나타난다.

    (미소를 머금고 품에 안긴다.)

    순옥 : 선생님! 몹시 피곤하시죠. 제 병이 조금 차도가 있으면 깊이 넣어드려 수고에 보답할게요.

    (선생을 재촉해 나가게 한다.)

    선생 : 순옥아!

    (말도 못하고 물끄러미 쳐다본다.)

    순옥이 섬섬옥수로 허리를 끌어안고 혀로는 선생의 입속을 빨면서 손으로는 옥경의 뿌리를 애무했다.

    (더욱 크게 발기한다.)

    순옥 : 선생님! 제 병이 오늘밤에 조금 차도가 있어요. 이 은혜는 내일 밤 보답하지요.

    (그러고는 치마끈을 맨다.)

    (선생이 옷깃을 쥐고 장탄식한다.)

    선생 : 박정하구나!

    5_ ‘귀양살이’에서

    이화양이 순옥에게 빠진 낙안 선생을 훈계하고 낙안 선생은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화양(李華陽) 등장한다.)

    이화양 : 소제(小弟)가 노형과 더불어 어릴 적부터 사이가 좋아 형제처럼 친합니다. 형이 잘못이 있는데 아우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결코 신의를 지키는 도리가 아니지요. 아우가 할 말이 하나 있으니 노형께선 들어보시오.

    (선생 등장한다.)

    선생 : 현제(賢弟)가 무슨 말을 해도 괜찮소.

    이화양 : 순옥이 침선비로 갈 때 노형이 사람을 보내 빼내왔다고 하던데 그런 일이 있지요?

    선생 : 그런 일 없소. 거짓말이오.

    이화양 : 노형! 한번 생각해보시오. 순옥이란 것은 관동땅의 우물(尤物)입니다. 노형은 이 고을의 사표일 뿐더러, 나이도 예순입니다. 헌데 이런 우물에 빠져서 나오지 못합니다. 생명도 재촉하고 명예도 실추되지요. (하략)

    (선생 생각한다.)

    선생 : 그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 듣지 않을 수 없겠어. 허나 순옥은 기방 기생으로서 오랫동안 처녀성을 지켰으니 그것 자체가 얻기 힘들지. 나와 알게 된 이후로는 맹세코 함께 늙자고 했어. 새로 만난 정이 아직 깊지 않으니 정말 갑작스레 취사를 결정할 일은 아니야. 차라리 저가 나를 저버리게 할지언정, 내가 저를 버리기는 차마 못할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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