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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2007 남북정상회담

핵폐기→북미수교→경제개발 이뤄질까

탈북 본보 기자의 ‘김정일 머릿속 탐험’… 체제유지 급선무, 수년 내 획기적 변화 예고

  • 주성하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핵폐기→북미수교→경제개발 이뤄질까

핵폐기→북미수교→경제개발 이뤄질까

최근 노동신문에 실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함경북도 인민병원 현지지도 모습.

앞으로 수년 안에 북한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북한에서 그 체제를 직접 체험하고 다시 밖에서 6년 넘게 김정일 체제를 지켜본 기자의 판단으로는 그러하다. 앞으로 미국과 한국의 대북정책 기조에 돌발 변수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북한은 핵을 폐기하고 본격적인 경제개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 발표를 지켜보면서 기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머릿속의 큰 그림을 착착 실행하기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사실 김 위원장 처지에서는 이제 더 허비할 시간도 없다.

김일성 주석 사후 13년간 북한은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 침체된 경제상황은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오히려 최근에는 10여 년 전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그 최악의 상황으로 돌아갈 조짐마저 보인다.

올해 홍수는 치명타였다. 식량생산이 30%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북한 내 주민들과 통화해보면 이런 예측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3년간 제자리걸음 한 경제, 올 홍수로 치명타



가을임에도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재는 척도인 쌀값이 6월보다 2배 가까이 치솟았다. 1995년 홍수 때 유사한 쌀값 폭등이 있었고, 이후 몇 년간 대기근에 시달렸다. 1995년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12년간 짧은 기간에 쌀값이 이처럼 급등한 전례가 없다. 2002년에 쌀값이 급등했지만 그것은 임금을 수십 배로 한꺼번에 올리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이번 홍수로 인한 식량부족은 내년에 대기근을 불러올 수 있다. 이제 주민들이 다시 굶어죽게 되면 북한 체제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물론 사상 선동이 계속되겠지만 주민들은 이미 예전의 인민이 아니다. 국가 공급이 끊어진 지난 10년간 장사로 연명하며 돈의 중요성을 피부로 깨달은 사람들이다. 이제 또 아사자들이 발생하면 주민 여론은 1990년대 중반에 비할 바 없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체제유지다. 그는 사후에도 나라를 발전시킨 위대한 지도자라는 평판을 받기 원할 것이다. 독재자일수록 역사의 평가에 집착하는 법이다. 그러자면 자기 대에 경제발전의 토대를 닦고 후계자에게 권력을 안정적으로 물려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 북한은 끝 모를 하락의 미궁에 빠져 있다. 지금 상황으로는 후계자 선정은커녕 몇 년 앞을 장담하기도 어렵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어나야 한다. 그러나 반전을 선택할 카드는 마땅치 않다. 섣불리 개혁개방을 하면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가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범의 꼬리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을까.

김 위원장에게는 중국이나 베트남식 개방을 자체 실정에 맞게 변화시켜 경제를 살리는 길이 곧 체제도 살리는 길이다. 여기에 세계 13위 경제대국 남한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이를 이용해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반전의 토대까지는 김 위원장이 후계자에게 만들어줘야 할 몫이다.

북한이 개혁할 움직임을 보이면 남한은 ‘구호’ 위주였던 지금까지의 대북지원 정책을 수정해 전폭적인 ‘투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김 위원장이 2002년 7월1일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한 것도 분명 이런 점을 의식해서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계산은 빗나갔다.

북한은 우호적인 노무현 정권이 집권한 지난 5년간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시간만 허비했다. 앞으로 개성공단과 유사한 규모의 공단이 몇 개 더 만들어진다고 해도 효과가 나오기까지는 시일이 걸린다.

이런 시간 낭비는 북미관계로 인해 생긴 결과다. 부시 행정부는 핵문제를 끊임없이 걸고 들며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북한의 일관된 대화 요구도 무시해버렸다. 미국의 이런 태도 앞에 한국 정부도 대북정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핵실험을 통해 핵 보유국임을 선포했다. 결단을 내린 것이다. 기자는 당시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이 모두 “핵실험은 김정일의 오판”이라고 보도할 때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김 위원장의 현 처지에서는 핵실험이 결코 오판이 아니며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국에 발목 잡혀 지난 5년 시간만 허비

핵폐기→북미수교→경제개발 이뤄질까

평양 근교의 한 보육원에서 어린이들이 옥수수죽을 먹고 있다.

1년이 흐른 지금, 핵실험을 오판이라고 해석하는 언론은 없다. 핵실험을 하지 않았으면 미국이 회담장에 나왔을 것인가? 지금의 6자회담이 있었을 것인가? 북한은 지난 1년간 핵시설 불능화라는 카드로 미국의 압박정책을 유화정책으로 바꿨다. 핵무기 포기라는 카드도 손에 쥐고 있다.

지금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로 볼 때, 이르면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북한이 핵무기를 전격 포기하고 철저한 국제사찰을 받으며,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북한과 수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정도면 핵무기로 충분히 본전을 뽑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그는 핵을 포기할 시점을 이미 구상해놓았을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를 포기하고 철저한 검증을 받는다면 이는 평화협정과 북미수교로 이어진다. 설사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이루지 못한다 해도 미국의 다음 정부가 이런 절차를 거부할 까닭이 없다.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고 북미수교를 맺는 단계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경제개발 정책을 펼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한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하다.

남북관계는 앞서 설명했듯 북미간 핵게임 진척과 밀접히 연계돼 있다. 김 위원장의 의중에서 우선순위는 북미관계다. 핵 포기 절차가 진전되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는 점을 그는 지난 5년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머릿속에 핵 포기 결심과 시점이 그려져 있다면, 그는 앞으로도 자신감을 내비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10년 안에 국민소득 3000달러가 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차기 정권과도 우호 협력 추진 메시지

주목할 점은 10·4 공동선언 하루 전 베이징에서 2·13합의 2단계 이행 합의문이 발표된 것이다. 물론 범위와 시한이 모호하게 설정된 합의여서 앞으로 북미간에 밀고 당기는 기싸움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한의 문제일 뿐 2단계 합의도 결국은 지켜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 뒤에 남게 되는 것은 북한이 과거 진행했던 우라늄과 플루토늄 농축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핵무기를 폐기하는 절차다. 무엇을 주고 얼마를 받느냐는 문제를 놓고 지루한 회담이 이어질 것이지만, 북한과 미국이 추구하는 방향이 같기 때문에 종국엔 핵무기 폐기와 수교는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과 남북관계를 통해 김 위원장은 머릿속에 그린 큰 그림에서 두 쪽의 큰 퍼즐을 맞춰가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김 위원장은 왜 노 대통령의 임기 말에야 그와 마주 앉은 것일까. 지금까지는 만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는 정상회담을 해봤자 소득도 없이 체면만 구길 수 있다. 그러다 북핵 2·13합의가 채택되고 1단계 조치가 이행되는 등 북미간 화해무드가 조성되자 정상회담을 할 타이밍을 잡은 것이다.

한 가지 명백한 것은 김 위원장의 구상이 북한 주민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안전한 후계구도를 가져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북미수교 없이도 안전하다면, 남한의 경제지원 없이도 살 수 있다면, 주민들이 굶어죽어도 그는 꿈쩍하지 않는다.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남한의 차기 정부에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 않았을까.

“보아라. 우리는 몇 달 남지 않은 노 대통령과도 마주 앉는다. 다음 정권도 우호적이기만 하면 얼마든지 환대하고 마주 앉을 수 있다.”

- 주성하 기자는 북한에서 나고 자랐다.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했고, 2001년 탈북해 2003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주간동아 606호 (p46~48)

주성하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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