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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무늬뿐인 친환경농산물 판친다?

지자체 실적주의와 허술한 관리 맞물려 함량 미달 인증품 양산 … 취소 건수 3년 새 3배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무늬뿐인 친환경농산물 판친다?

무늬뿐인 친환경농산물 판친다?

서울시내 한 대형 할인매장의 친환경농산물 코너에서 소비자가 물건을 고르고 있다.

경기도 한 지역에서 유기농채소를 출하하던 고상추(가명) 씨는 3개월 전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취소당했다. 친환경농산물 가운데 인증받기가 가장 까다롭다는 ‘유기농산물 인증마크’가 찍힌 상자에 채소를 포장할 때였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 지부 조사반원이 실시한 잔류농약 검사에서 미량의 농약이 검출됐던 것.

고씨는 농약을 뿌린 적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지만, 토양에 남아 있던 농약성분을 숨길 수 없었다.

전남지역에서 저농약쌀을 재배하던 이모작(가명) 씨도 비슷한 시기에 농관원 조사반원에게 인증 기준 위반 사실을 적발당했다. 저농약 인증필지에 사용해서는 안 되는 제초제를 뿌렸다가 걸린 것. 이씨는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잡초를 뽑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순순히 시인했지만, 역시 인증을 취소당했다.

최근 친환경인증농산물이 인증 기준을 위반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그 탓에 그나마 믿고 먹었던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신뢰마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농관원의 2003~2006년 ‘친환경인증농산물 사후관리 및 행정처분 실적’에 따르면, 인증 기준을 위반해 행정처분을 받은 사례가 2003년 153건에서 2006년 553건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이 가운데 인증 기준 위반 정도가 심각해 친환경인증이 취소된 경우는 107건에서 352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비인증품 혼합 판매하거나 인증필지 허위 작성했다 적발

적발된 사례를 보면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친환경 인증농가가 인증 취소와 함께 검찰에 고발당한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인증품 판매물량이 부족해 비인증품을 혼합해 판매하거나, 인증필지 자체를 허위로 작성해 인증받은 경우다.

친환경농산물 인증농가와 상관없이 친환경농산물을 유통하는 업체가 거래처에서 원하는 친환경농산물을 구하지 못해 비인증품을 인증품으로 둔갑시켜 판매한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유통업체가 검찰에 고발조치 당했다.

무늬뿐인 친환경농산물 판친다?

친환경농법으로 호박 등 채소를 재배하고 있는 비닐하우스(왼쪽)와 무농약쌀 수확을 앞두고 있는 논.

인증농가가 기준에 위반하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뿌린 사실이 적발됐을 때는 검찰 고발 없이 인증 취소만 당한다. 예를 들면 유기농산물 인증농가가 화학비료를 사용하거나, 무농약농산물 인증농가가 병해충을 없애기 위해 화학농약을 살포한 경우다. 또 저농약농산물 인증농가가 기준을 초과해 농약을 사용하거나 허가받지 않은 농약을 살포했을 때도 인증이 취소된다.

현재 친환경인증농산물은 유기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산물’과 유기합성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화학비료를 권장 시비량의 3분의 1 이내만 사용하는 ‘무농약농산물’, 그리고 화학비료는 권장 시비량의 2분의 1, 농약은 안전기준의 2분의 1 이하로 살포하는 ‘저농약농산물’로 나뉜다.

인증 기준 위반이 경미한 경우에는 1개월에서 최장 6개월까지 인증 정지가 내려진다. 인근 논이나 밭에서 뿌린 농약이 바람에 날려 오염되는 등 친환경 인증농가의 고의나 과실이 아닌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최근 친환경농산물 인증 기준 위반 적발사례가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인증 농가수가 크게 늘어난 것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2003년 친환경농산물 인증 농가수는 2만3297가구였다. 저농약 인증가구가 1만3127가구로 가장 많았고 무농약 7426가구, 유기농 2744가구 등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6년에는 인증 농가수가 7만9635가구로 8만 가구에 육박했다. 3년 사이 전체 인증 농가수가 3배 이상 늘어난 것. 역시 저농약 인증 농가가 5만812가구로 가장 많았고 무농약 2만1656가구, 유기농 7167가구 등이었다.

농관원 한 관계자는 “농가수가 늘어난 만큼 인증 기준을 위반해 적발된 건수도 그만큼 늘어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 정책과 친환경농산물 인증제 운영 전반에 걸쳐 있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친환경농법으로 3년째 벼농사를 짓고 있는 김필지(가명) 씨는 아직도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친환경 인증을 받았는지 잘 모른다. 그냥 자신이 속한 친환경농업지구(작목반)를 대표하는 회장(작목반장)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김씨는 친환경농법이 뭔지 몰랐다. 지방자체단체(이하 지자체)인 도와 시에서 친환경농사 비용을 지원해준다는 회장 말만 믿고 친환경농법 동의서에 서명을 했던 것.

그리고 얼마 뒤 농관원 지부 관계자들이 그를 찾아와 한 차례 정도 논의 흙과 물을 떠가더니, 그 다음부터는 작목반장을 통해 ‘흙을 떠와라’ ‘벼를 가져오라’는 연락이 왔다. 이때 작목반장이 다른 논의 흙이나 벼를 가져다줘도 모를 일이었다. 김씨는 그렇게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았다.

“작목반장이 다 알아서 (흙, 물, 벼 등을) 떠가고 그랬죠. 저 같은 농민들이 복잡한 인증절차를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아마도 농민들 처지를 봐서 처음에는 인증을 별로 까다롭지 않게 내줬던 것 같아요.”

이런 일은 김씨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김씨 같은 작목반에 속한 농민 대다수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 2~3년 전부터 친환경농업을 시작한 인근 작목반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은 물론 사후관리까지 이처럼 허술했던 것은 지자체 간의 경쟁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앞두고 농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농촌지원정책을 마련한 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친환경농업정책도 그 가운데 하나다.

각 지자체는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앞다퉈 친환경농법 개발계획을 수립했다. 우렁농법, 오리농법, 미생물농법 등 각종 친환경농법이 그것이다. 친환경농법을 도입할 경우 국고와 지방비에서 예산의 80%가 지원되고, 농민은 20%만 부담하면 된다.

하지만 친환경농법 지원사업은 개별적으로 허가되지 않았다. 즉, 일정 규모 이상의 면적이 되거나 농가가 모여야 허가를 내준 것.

예를 들어, 10억원이 지원되는 대규모지구는 참여농가가 50호 이상이고 해당 지역 농가의 절반 이상이 참여해야 허가를 내줬다. 2ha 이하 농가 10호가 모이면 소규모지구인 단지로 인정받아 단지당 2억5000만원이 지원됐다. 마을 단위로 50ha씩은 친환경농업 시범 마을로 지정됐으며, 지원금은 마을당 3500만원씩이었다.

일부 지자체는 지역 내 학교급식에 친환경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하는 조례까지 마련해 판로를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각 마을이나 지구별 대표가 기준에 맞는 면적과 가구수를 채우기 위해 친환경농업 동의서를 일방적으로 받아 지자체에 제출하고, 이를 기준으로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사업인 만큼 농관원 측에서도 엄격한 인증 기준을 들이대지 않았던 것.

본인도 자세히 모른 채 작목반에 끼여 인증받기도

최근 친환경농산물 인증 농가수가 급증한 이유가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해당 지역 농민들의 말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의반 타의반 친환경농산물 인증 기준을 위반할 수밖에 없는 농가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

예를 들어, 친환경농사를 짓겠다고 동의서를 써줬지만 실제로는 친환경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도 있고, 친환경농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 잡초가 우거진 논두렁에 제초제를 살포했다가 적발돼 인증을 취소당한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국고 지원비 횡령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사람이 국고와 지방비 지원은 물론, 친환경농산물 인증까지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또 당초 계획과 달리 친환경농사를 짓는 논밭과 그렇지 않는 곳이 혼재되면서 농민들 사이에 감정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일반 농사를 짓는 농가에서 뿌린 농약이 바람에 날려 친환경농가의 논과 밭을 오염시키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농민 스스로가 친환경농법에 대한 의지를 갖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지자체의 강권과 특정 몇 사람이 주도하면서 생긴 병폐다.

입원 중인 환자가 친환경농산물 인증받고 국고 지원받은 사례도

농관원의 체계적이지 못한 관리시스템도 문제다. 농관원은 최근 친환경인증농산물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적지 않은 예산과 시간을 들여 관리시스템을 대폭 개편했다. 누구나 친환경농산물의 인증 여부를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친환경농산물확인’ 시스템을 구축해놓은 것.

하지만 몇 군데 샘플을 뽑아 현장을 확인해본 결과, 가장 기본적인 친환경농산물 인증필지 정보조차 틀린 곳이 발견됐다.

일례로 유기농인증을 받아 친환경 딸기 당근 토마토 근대 등을 재배하는 것으로 등록된 경기 하남시 해당 필지에는 그런 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근 지역 한 농민은 “주변에서 친환경 딸기나 토마토를 재배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해당 농민은 이에 대해 “친환경농산물 인증 신청을 하면서 필지 주소를 잘못 기재해 생긴 오류”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후관리를 해야 할 농관원에서는 잘못된 필지 주소로 어떻게 현장관리를 해왔는지 의문이다.

농관원 측은 “인증필지가 틀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최근 개편한 시스템이 불안정해서 일부 오류가 있었지만 모두 수정해 이제는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후 해당 필지를 재차 확인해본 결과 여전히 잘못 등재돼 있었다.

값싼 외국 농산물이 물밀듯 들어오면서 친환경농법은 우리 농민이 살아남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안 가운데 하나다. 친환경농산물은 소출이 줄어들지만, 일반 농산물과 차별화가 가능하고 가격도 비싸 그만큼 이점이 있다.

지난해 12월 소비자안전센터가 서울 부산 등 5대 도시의 대형마트, 백화점, 도매시장 등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친환경농산물의 소비자 가격은 일반 농산물에 비해 크게는 4배 이상 비쌌다. 일반 농법으로 생산한 깻잎 100g 평균가격이 496원이었던 반면, 친환경농법으로 생산한 깻잎 100g은 2383원이나 했던 것. 소비자들이 이처럼 비싼 가격에도 친환경농산물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지역 농관원과 민간 인증기관에서 친환경농산물의 인증 기준 위반 여부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고, 친환경농산물 인증 기준을 매우 까다롭게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들린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인증·생산·유통 단계까지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체계적인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뿐 아니라, 친환경인증농산물 전반에 걸친 정부 차원의 조사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 친환경인증농산물 행정처분 현황 (단위 : 건)
구분 사후

관리실적
고발 행정처분 내용 주의·시정 등

행정지도
취소 정지6월 정지3월 정지2월 정지1월
2003 12,443 12 153 107 3 17 1 25 48
2004 15,982 32 259 143 4 61   51 55
2005 18,609 18 322 202 3 68   51 34
2006 23,619 15 553 352 1 134 - 66 53
출처 :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주간동아 606호 (p32~34)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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