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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혈사태 미얀마 … 국제사회 왜 방관만?

유엔 결의안 통한 경제제재 실효성 의문 … 중국·인도의 은밀한 군부 후원도 무시 못해

  •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상임활동가 redleon@naver.com

유혈사태 미얀마 … 국제사회 왜 방관만?

유혈사태 미얀마 … 국제사회 왜 방관만?

9월26일 군인들이 미얀마 민주화의 성지인 ‘쉐다곤 파고다’ 앞에 집결한 시민들을 향해 최루탄을 쏘며 유혈 진압하고 있다.

1988년 8월8일 미얀마(버마)의 옛 수도 양곤에서 10만여 명의 시민이 집결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미얀마 군사정권은 ‘8888항쟁’이라 불리는 이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양곤에서만 200명이 죽고 전국적으로 3000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졌지만, 현지에서는 최대 2만명의 희생자가 났다는 증언이 나올 정도로 공공연한 학살이 자행됐다.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군사정권은 “1990년 총선을 통해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약속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이 82%의 압도적 지지로 선거에서 승리하자 군사정부의 태도는 돌변했다. 정권이양을 거부하고 철권통치를 시작한 것이다. 8888항쟁 19년을 맞이한 올해 다시 미얀마에서 그때에 버금가는 민주화 유혈시위가 진행 중이다. 미얀마에는 왜 지금까지도 대규모 민주화 시위와 유혈사태가 반복되는 것일까.

1962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에 성공한 미얀마 군부는 45년간 미얀마를 통치하면서 미얀마에서 유일하고 절대적인 권력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8888항쟁 이후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수감되거나 해외로 도피해 국내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기란 불가능해졌다. 전화와 e메일 감청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곳곳에 사복경찰이 배치돼 국민의 사생활을 간섭하고 있다.

정부군의 소수민족 탄압 ‘상상 초월’

미얀마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는 요인은 동남아 국가들의 공통적 고민인 소수민족 문제다. 미얀마는 버마인 약 68%, 샨(Shan)인 9%, 카렌(Karen)인 7%, 아라칸(Arakan)인 4% 등으로 구성돼 있다.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후 주류인 버마족 정부는 소수민족에게 자치권을 약속했으나 이는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특히 8888항쟁 이후 군사정권이 버마족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소수민족과의 분쟁을 역이용하면서 사태는 더 악화됐다.



미얀마 정부군의 소수민족 탄압은 상상을 초월한다. 2006년 10월 인도에서 만난 한 탈영병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소수민족과의 교전 때 받은 명령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남자가 보이면 쏴 죽여라, 집이 보이면 불태워라, 여자가 보이면 강간하라.”

현재 소수민족과 미얀마 민주화운동 세력은 군부정권 타도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연대하고 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는 민주화 이후 연방제(Federation)를 통해 소수민족에게 광범위한 자치권 부여를 약속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같은 민주화 세력과 소수민족의 연대는 군부에게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 소수민족과의 교전을 핑계로 군부는 무기 구입과 중국 등 외세의 후원을 통해 막강한 무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군부를 무장투쟁과 같은 방법으로 전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국제사회는 이 같은 인권의 무법천지를 왜 방관만 하는 것일까. 미얀마는 과거 동유럽과 달리 유엔 결의를 통한 경제제재가 실효성을 거두기 힘들기 때문이다. 동남아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과 인도가 미얀마의 자원과 지정학적, 전략적 가치에 주목해 군부를 은밀히 후원하는 것도 무시 못할 대목이다.

소수민족과의 내전이 지속되면서 군사정부는 소년병을 징집하고 국민을 강제노동에 동원하고 있다. 현재 미얀마의 경제상황은 아시아 최악 수준으로 ‘아시아 최악의 AIDS 발생국가’로 기록된 것은 물론, 미얀마에서 생산되는 마약 또한 전 세계의 골칫거리로 부각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얀마 군부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세력으로 손꼽히는 게 바로 불교계다. 미얀마는 전국에 산재한 불교 유적으로 유명한 나라이고, 국민의 신앙심과 승려에 대한 존경심도 대단하다. 8월15일 군사정권의 기름값 인상 반대시위로 시작된 이번 민주화 요구 시위는 9월5일 미얀마 승려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하면서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다. 9월25일 양곤에서만 시민 10만명이 집결할 수 있었던 것도 불교계의 영향력 덕분이었다.

유일한 희망 불교 세력마저 총칼 앞에 쓰러져

그러나 군부는 승려들에게 발포했고, 심지어 불교 사원에 난입해 1000명 가까운 승려를 체포하기까지 했다. 일부 군인이 승려들에게 발포하는 것에 거부감을 표시했다는 소식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마지막 희망인 불교계마저 군부 정권의 총칼 앞에 무릎을 꿇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로써 군부는 민심을 잃어버린 셈이 됐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군부 최고지도자인 탄 슈웨는 가족을 외국으로 도피시켰다고 한다. 군부정권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현재 미얀마 군부는 민주화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색출을 강화하며 강경진압의 고삐를 옥죄고 있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들은 브뤼셀 EU 집행위 본부에서 모임을 갖고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제재를 더 강화키로 했다. 미얀마는 지금 독재가 계속될지, 아니면 민주화로 대선회할지 기로에 서 있다.

미얀마에 침묵하는 한국

무기설비 불법 수출 등으로 도덕적 책임


한국의 일부 기업이 미얀마 군부와 부적절한 거래를 해왔다는 사실은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00년 대우인터내셔널이 미얀마 정부로부터 천연가스 개발권을 따낸 뒤, 한국가스공사와 대우인터내셔널은 대규모 가스개발 사업을 아라칸족이 살고 있는 앞바다에서 진행했다.

국제비정부기구(NGO)와 아라칸족, 미얀마 민주화 활동가들이 미얀마 군부와의 결탁과 환경파괴,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이 사업에 반대하거나 국제기준에 맞춰 사업을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와 대우인터내셔널은 이런 요구에 지금까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그러는 사이 대우인터내셔널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약 6000억원어치의 포탄 제조설비를 미얀마에 불법 수출했다는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1990년대 중반 모든 기업을 철수하고 미얀마 군사정권에 대한 본격적인 제재조치에 나선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만일 한국 기업이 판매한 무기가 이번 민주화 시위 진압에 사용됐거나 소수민족을 살해하는 데 쓰였다면 한국은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주간동아 606호 (p26~27)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상임활동가 redl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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