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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정가 형제의 ‘기담’

아름답지만 섬뜩한 비극적 사랑의 공포

  • 심영섭 영화평론가 · 대구사이버대 교수

아름답지만 섬뜩한 비극적 사랑의 공포

아름답지만 섬뜩한 비극적 사랑의 공포

영화 ‘기담’의 한 장면.

지나친 애정은 늘 인간의 마음에 그림자의 함정을 판다. 아이는 부모를 살해하고 부모는 아이를 낙태시키며 귀신은 자신이 사람인 줄 안다. 모두 공포영화 속 이야기지만, 영화에 나타난 지나친 애정 문제는 현실의 우리 마음속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영화 ‘기담’은 바로 이런 사랑과 애증의 문제를 경성발 공포기차에 실어나른다.

영화는 한 외과의사가 일본 군인의 머리를 기묘한 방식으로 절개해 수술하는 장면부터 시작하여 40년대식 경성사극에 한껏 음영을 드리운다. 새로운 장소나 형태의 귀신을 등장시켜 당대를 해부하려는 무의식은 담겨 있지 않지만 근대와 현대, 모던과 복고가 뒤섞인 일제강점기 경성의 암울한 분위기를 충분히 살려 스타일리시한 호러영화의 길을 택했다. 고바야시 마시키의 1964년작 ‘괴담’을 떠오르게 하는 ‘기담’은 기묘한 ‘이야기’라기보다 기묘하게 ‘보이는’ 공포영화다.

1942년 서양식 병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엽기 스토리

1979년 서울, 초로의 의사가 학생들에게 1942년 수술 장면을 찍은 흑백영화를 보여준다. 이 의사는 바로 42년 당시 안생병원에서 실습생으로 근무했던 정남. 결혼 상대마다 1년 안에 죽고, 하나밖에 없는 딸을 키우며 사는 그는 어느 날 딸이 가져온 사진첩을 들여다보다 1942년도의 잊지 못할 밤을 회상하게 된다. 당시 안생병원에는 도쿄에서 유학한 엘리트 부부 인영과 동원이 의사로 부임했고, 자살한 여고생 시체와 교통사고로 일가족이 몰살한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10세 소녀가 실려왔다.

‘기담’ 속 안생병원은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킹덤’에서처럼 저주가 넘실거리는 장소도 아니고 ‘마의 계단’ ‘성형미인’ 같은 60, 70년대 한국 공포영화에서 봤던 장소도 아니다. 차라리 이곳은 (영화 ‘장화, 홍련’ 속) 꽃무늬 벽지로 둘러싸인 고딕식 집처럼 탐미적인 공포가 깃든 장소, 달팽이가 느리게 기어다니고 피 흘리는 나비가 인간 영혼의 수액을 빨아먹는 장소다. 영화 초반 인물들이 정면을 응시한 장면에서 가족사진처럼 잡힌 여고생 시체의 모습이나 얼음이 갈라지며 시체가 떠오르는 모습 등은 ‘친밀한 괴물’들의 사육제라 해도 좋을 만큼 회화적이다. ‘기담’의 화폭은 느린 소나타처럼 아름답고 섬뜩하다.



이 귀기어린 매혹의 핵심은 ‘기담’ 속 사랑이 비극적이라는 데 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현실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려 든다. 정남이 죽은 여고생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판타지는 사계절을 배경으로 찬연하게 펼쳐진다. 차 사고로 죽어가는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통해 육체의 욕망이 무엇인지 배운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공포와 신비한 사랑은 ‘기담’에서 비주얼을 통해 간극을 메우며 힘을 발휘한다.

창의성 부족 아쉬움 … 공포 수위는 한층 높아져

문제는 이러한 독창적인 비주얼이 표현하고 있는 이야기의 신선도일 것이다. 영화는 수미상관의 회상 형식을 취했지만, 이는 이야기를 열고 닫는 클리셰(Clich、e)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개연성 역시 관습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시체와 사랑에 빠진 실습생 정남은 매일 여고생 시체와 대화를 나눈다. 엘리트 의사 부부인 동원은 아내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일가족 교통사고의 유일한 생존자인 10대 소녀는 죽은 가족의 혼령을 본다. 네크로필리아(시체 애호증),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귀신을 보는 아이 이야기 등의 소재는 이제 더는 놀라움을 줄 수 없다.

게다가 이 이야기들을 옴니버스처럼 이어놓은 ‘기담’은 이야기를 합치는 능력과 창의력이 부족해 보인다. 한 예로 40년대 연쇄살인 사건은 ‘근대’라는 개념에 대한 어떤 함의도 없이 욕조 밖으로 쑥 내민 손과 피칠갑한 시체의 전시에서 아쉽게 끝난다. 날카롭게 명치끝으로 파고드는 솔깃함이 빠져 있다고나 할까.

‘기담’은 한국영화가 ‘링’의 저주, 즉 사다코 귀신의 산발한 소복 공포를 넘어섰다는 걸 증명한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준다. 그러나 이야기와 편집이라는 영화의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다르덴 형제, 워쇼스키 형제, 코엔 형제 등 영화 역사에서 형제 감독은 최고의 영화를 만든다는 속설이 있다. 그 때문인지 이 영화의 정식, 정범식 사촌형제 감독에 대한 기대는 유난히 크다. 일단 정가(家) 형제는 용감했다. ‘기담’은 연출을 맡은 정가 형제의 현재보다는 앞날을 더 기대하게 하는 데뷔작이다. 이제 이들이 난형난제의 저울질이 아닌, 형제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너지를 보여주길 바란다.



주간동아 2007.08.14 598호 (p76~78)

심영섭 영화평론가 · 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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