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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캠프는 요즘 ‘쩐(錢)의 전쟁’ 중

자원봉사자 유치 경쟁…비공식 선거자금 사용 각 후보에겐 ‘천군만마’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대선 캠프는 요즘 ‘쩐(錢)의 전쟁’ 중

대선 캠프는 요즘 ‘쩐(錢)의 전쟁’ 중

2월1일 경북 김천시에서 열린 한나라당 당원협의회 주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초청강연회장에서 이 전 시장이 청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 캠프의 조직국에서 일하는 신모 씨의 뒷주머니에는 요즘 현금이 두둑하다. 돈이 떨어질 때마다 현금 100만원 정도를 은행에서 찾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7월 중순부터 시작된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합동연설회를 따라 전국을 돌기 위한 경비다. 신용카드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

7월30일 오후 4시경, 인천합동연설회가 끝나자마자 서울 여의도로 달려온 신씨는 캠프 사무실에 잠시 들러 저녁을 먹은 뒤 다른 캠프 관계자와 함께 곧바로 춘천으로 떠났다. 8월1일 춘천에서 있을 강원지역 합동연설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강원지역 조직원들을 만나 지역 동향을 파악하고 조직표를 점검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교통비, 숙박비, 식비 등 그가 쓰는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는 ‘자원봉사자’다. 본부장을 포함해 이 전 시장 캠프의 중앙 조직국에서 일하는 7명이 모두 마찬가지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성 간사 한 명만 캠프에서 급여를 받는다.

“한 달에 300만~400만원 지출”

요즘 정치권에선 새로운 차원의 ‘쩐(錢)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자원봉사자’ 유치경쟁이다. 말이 자원봉사자이지, 엄밀히 따지면 이들은 모든 경비를 스스로 알아서 부담하는 ‘자비(自費)봉사자’다. 자원봉사자가 많을수록 선거 캠프는 그만큼 경제적 여유가 생기는 셈이다. 현행 선거법상 선거자금을 쉽게 모을 수도,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전에 없던 ‘변종(變種)’이 생긴 것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캠프의 외곽조직에서 뛰고 있는 언론인 출신 한 특보는 올해 초 캠프에 합류했다. 그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취합하고, 언론과 여론의 동향을 분석하는 것이다. 조직을 담당하는 사람에 비해 들어가는 경비가 적다.

그럼에도 그는 한 달에 300만~400만원, 지금까지 2000만원 정도를 썼다. 물론 모두 자비다. 이 특보는 “술을 못 마시니까 이 정도지, 술까지 마셨다면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범여권 후보 진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대선 캠프마다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은 선거자금의 부족과 무관치 않다.

박 전 대표 캠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 박 전 대표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음식점에 가까운 일가친척들을 불러모았다.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앞서 경제적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돈을 가장 많이 낸 사람이 5000만원, 적게는 몇 만원을 후원했다고 한다. 당시 모금액을 다 합쳐도 1억원이 채 안 됐다는 것이 박 전 대표 측 관계자의 전언이다.

대선 캠프는 요즘 ‘쩐(錢)의 전쟁’ 중

6월28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토론회를 마치고 나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캠프 상황실장을 맡고 있는 최경환 의원에 따르면,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박 전 대표 측이 후원회를 통해 모금한 돈은 지금까지 10억원이 채 안 된다. 경선 기간 중 모금할 수 있는 법정한도액 23억원에 크게 모자란 액수다. 이 전 시장 측은 이보다 훨씬 많이 거둔 것으로 알려졌지만 모금 액수 자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국 투어를 돌며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는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 처지에서는 현재 모금한 공식적인 선거자금으로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란 역부족이다. 그나마 당내 경선을 치르는 덕에 범여권 후보들에 비해 나은 편이다.

유력한 범여권 후보로 꼽히는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선거법상 아예 선거자금을 한 푼도 모을 수 없는 형편이다. 현역 의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정 정당에 소속돼 당내 경선에 뛰어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동영 전 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갖가지 흥미로운 현상들이 발견된다. 먼저, 마치 당선 가능성이 높은 대선후보에게 자금 쏠림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자원봉사자 조직도 캠프별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대선 이후 정치활동 일종의 보험

현재 이 전 시장을 미는 자발적인 조직은 전국에 60개 가까이 결성돼 활동 중이다. 명박사랑, MB연대, 한국의 힘, 희망21 등이 대표적인 조직이다. 박 전 대표를 지원하는 조직도 박사모, 한강포럼, 희망두레박 등 전국적으로 40~50개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손 전 경기도지사는 ‘손과 벗’, 정 전 장관은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등 여권 대선후보들의 자발적인 지지모임은 2~3개에 불과하다.

자원봉사자들의 출신과 성향도 캠프별로 크게 다르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등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지난해 5·31선거 때 지방자치단체장, 기초의회, 광역의회 등에 출마했거나 앞으로 출마를 준비 중인 사람들이 많다. 이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한나라당은 5·31선거 때 전통적인 강세 지역인 영남은 물론, 서울 수도권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이 전 시장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번 대선을 통해 인맥을 넓히고 정치도 배워 나중에 기초자치단체 기초의원이라도 출마해볼 생각이다. 나뿐만 아니라 상당수 자원봉사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에서 공천받는 것을 목적으로 캠프에 뛰어든 자원봉사자도 적지 않다. 한 예로 경북 안동의 경우, 현역 의원이 있음에도 3명의 경선 출마 예상자들이 특정 캠프를 위해 경쟁적으로 조직활동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각 캠프에 뛰어든 현역 의원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들도 대부분 자비를 지불하며 일종의 보험을 들고 있는 셈이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자원봉사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이 전 시장 측은 ‘보험성 투자가치’에, 박 전 대표 측은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보은 차원’에 무게가 좀더 실려 있다는 정도다.

반면 손 전 지사 캠프의 자원봉사자들은 가까운 동문이나 과거 경기도지사와 국회의원 시절 보좌하던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 그를 이념적으로 지지하는 정치 전문가들이 가세하고 있다. 최근에는 386세대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손 전 지사 캠프로 몰려들고 있다.

대선 캠프는 요즘 ‘쩐(錢)의 전쟁’ 중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7월29일 충북 청주시 라마다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가칭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 충북도당 창당식에 참석해 맞잡은 손을 들어올려 인사하고 있다.

이들은 한나라당 자원봉사자들에 비해 경제적 여유가 없는 편이다. 사업가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자원봉사자 몇 명이 ‘총대’를 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손 전 지사 캠프를 운영하는 실질적 좌장은 손 전 지사의 경기고 동창인 주진윤 전략기획단장. 벤처회사 회장으로 알려진 주 단장은 “일주일에 한두 번 사무실에 나와 조금씩 돕고 있을 뿐 큰 도움은 못 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매일 출근해 캠프의 살림을 도맡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 단장은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캠프 운영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나머지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생활고를 겪고 있다. 얼마 전까지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다 합류한 캠프 관계자는 “맞벌이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힘들 것”이라면서 “캠프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8개월째 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까지 3000만원 정도 빚을 졌다”면서 “벤처회사에 투자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쓰고도 안 쓴 선거자금 추산 불가능

이처럼 각 캠프마다 자원봉사자가 크게 늘면서 선거자금으로 얼마를 사용하는지 추산이 불가능해졌다. 박 전 대표 캠프를 예로 들면 경상비용으로 사무실 임대료, 전화요금, 전기세 등 각종 부대비용과 상근 여직원 몇 명에게 지급되는 급여를 합하면 월 4000만~5000만원이 고정적으로 나간다. 하지만 캠프가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현역 의원들과 이들이 일부 파견한 보좌관 및 전문 분야별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인건비는 거의 들지 않는다.

선거운동에서 가장 큰돈이 들어가는 곳은 조직관리와 대외협력 활동이다. 쉽게 말해 모여서 먹고 마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나다. 그런데 이 비용은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현역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부담하거나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해결하고 있다. 여기에 자원봉사자들의 도움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 전 시장 캠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디까지가 선거자금에 해당하는지 모호해졌다.

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한 관계자는 “현행 선거법상 자원봉사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후보 측과 관계없이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선 기간이든 선거 기간이든 선거비용과 무관하다. 다만 현역 의원의 찬조금은 경선 기간에는 상관없지만 경선이 끝난 뒤부터는 선거비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전국 순회 합동연설회를 치르고, 범여권은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가칭) 출범을 위해 광역시도별 전당대회를 열면서 정치권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자금과 관련한 잡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지역 책임자가 친분 있는 일부 지방기업들에 자금을 지원받아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거나, 이따금 “상대방은 자금이 지원되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느냐”는 항의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의 선거풍토와 크게 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이 전 시장 캠프의 신씨는 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1990년 초부터 정치권에 몸담았던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안국포럼이 만들어질 때부터 이 전 시장을 위해 뛰고 있다. 춘천으로 떠나기 직전 신씨는 이렇게 말했다.

“2002년 대선 때는 캠프에서 감투를 쓰면 직위에 따라 100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분담금을 내라고 했다. 돈을 쓰다가 모자라면 또 걷기도 하고, 위에서 내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이런 관행이 완전히 사라졌다. 경비는 각자 알아서 부담한다. 나 같은 경우는 8월20일 당 경선이 끝날 때까지 쓸 자금을 지난해 이미 다 마련해놨다.”



주간동아 2007.08.14 598호 (p18~20)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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