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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왕실, 방송사 상술에 휘둘리고 “아뿔싸”

다이애나 다큐 방송 막으려고 헛심만 … 결과적으로 홍보 효과만 높여준 셈

  • 코벤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英 왕실, 방송사 상술에 휘둘리고 “아뿔싸”

英 왕실, 방송사 상술에 휘둘리고 “아뿔싸”

생전의 다이애나 왕세자비.

‘다이애나 사진 공개를 막아라.’ 최근 영국 왕실의 윌리엄과 해리 왕자는 10년 전 교통사고로 숨진 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마지막 사진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작사 채널4를 상대로 힘겨운 공방전을 벌였다. 그러나 채널4에 대한 왕실의 호소는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문제는 다이애나 사망 10주년을 맞아 채널4가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던 1997년 8월31일 밤 상황을 취재한 ‘다이애나 : 터널 속의 목격자들’이라는 다큐멘터리 방영을 예고하면서 불거졌다. 다큐멘터리는 사고 당일 다이애나와 연인 도디 알 파예드가 타고 있던 메르세데스를 추적하던 파파라치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그날 밤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공개된 사진엔 다이애나 모습 제대로 안 보여

프로그램 성격상 그날 밤 다이애나의 차를 추적하며 찍었던 파파라치들의 미공개 사진 중 일부가 공개될 것이라는 예고가 나왔다. 게다가 ‘옵서버’ 등 언론이 사고 직후 다이애나의 참혹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개될 것이라는 보도를 내보내자 왕실 측은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윌리엄과 해리 왕자는 다큐멘터리 방영에 앞서 채널4에 방영 취소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채널4가 방영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자 대리인을 경쟁사 BBC 인터뷰에 내보내 채널4를 비난하는 등 방송사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런데 막상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개된 사진은 그다지 참혹하거나 충격적이지 않았다. 다이애나가 사고 직후 차 뒷좌석에서 응급치료를 받는 모습과 앰뷸런스에 후송되는 모습인데 응급치료 장면에서 다이애나의 얼굴은 가려진 채 보이지 않았고, 앰뷸런스 후송 사진에서도 그의 모습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다이애나를 내세운 채널4의 홍보 전략이 일종의 ‘티저 광고(전모를 밝히지 않고 상품과 관련한 단편적 정보만 보여줌으로써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 구실을 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채널4가 방영해온 선정적인 프로그램들을 보면 이런 추측이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니다. 영국의 TV 채널들이 심야 시간대에 보여주는 낯뜨거운 장면들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중에서도 채널4가 섹스를 주제로 선보인 프로그램들은 악명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섹스 검열관(The Sex Inspectors)’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성 트러블을 겪는 부부의 침실에 카메라를 들이대고는 끈과 채찍을 주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라”고 권유한 것도 다름 아닌 채널4였다. 또 ‘동정 학교(Virgins School)’라는 도발적 제목을 달고 26세 숫총각이 여자를 처음 경험하는 4주간의 ‘학습’ 과정을 생중계하듯 안방에 전달한 것도 채널4였다.

사실 상업주의로 치닫는 영국 언론들의 경쟁구도 아래서 왕실 측이 수모를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들의 가장 큰 먹잇감은 뭐니 뭐니 해도 한때 윌리엄 왕자와의 약혼설이 나돌았던 케이트 미들턴이다. 미들턴은 자신의 사진을 게재한 ‘데일리 미러’를 언론고충처리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공식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미들턴이 윌리엄 왕자와 결별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왕실 측의 대응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다큐 방송 후 관련 토론으로 관심 끌기

英 왕실, 방송사 상술에 휘둘리고 “아뿔싸”

영국 런던의 ‘채널4’ 본사. 이 방송국은 선정적 프로그램으로 악명이 높다.

다이애나를 기억하는 수많은 영국인들이 채널4의 사진 공개 결정에 분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여론이 무조건 왕실 편을 든 것만은 아니다. 다큐멘터리 방영 전날 BBC에 출연한 언론 전문가는 다이애나가 공인이라는 점을 내세워 충분히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더 타임스(The Times)’는 기명 칼럼을 통해 “옷 벗은 여자들이 1면을 차지한 대중지 ‘더 선(The Sun)’이 보기 싫으면 권위지 ‘더 타임스’를 보면 되는 것처럼, 이 프로그램이 싫으면 채널4 화면을 꺼버리면 된다”며 사실상 채널4의 손을 들어줬다.

버킹엄궁 측도 왕실의 권위를 내세워 상업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왕실과 관련한 문제를 타블로이드 신문이나 언론의 먹잇감으로 놔두기에는 영국인의 삶에서 왕실이라는 존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영국 사회를 지탱하는 ‘무형의 힘’ 버킹엄궁의 절대적 권위가 힘을 발휘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에 가슴 아파할 사람이 다이애나의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 왕자뿐만은 아닐 듯하다.



주간동아 2007.07.03 592호 (p60~61)

코벤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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