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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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BUL, 세계 미술계의 슈퍼스타가 된 휘황찬란한 몬스터

역사적 한계를 뛰어넘는 예술가의 의지로 유토피아를 짓다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7-04-25 16: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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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준 이후, 아니 나이를 생각하면 그보다 더 빨리 세계 미술계의 슈퍼스타가 된 작가 이불(43)이 3년 만에 한국에서 전시를 열었다. 그였기 때문일 것이다. 좀처럼 모이기 어려운 미술 담당 에디터들이 빠지지 않고 서울 소격동의 작은 갤러리 pkm을 찾은 이유도.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검은 뿔테 안경, 검은 슈트와 흰색 셔츠는 여전히 시크(chic)했다. 무심한 듯하다가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이내 숨기지 못하는 거의 본능적인 열정도 그대로였다.

    LEE BUL, 세계 미술계의 슈퍼스타가 된 휘황찬란한 몬스터

    ‘Untitled’ 2007. 알루미늄과 거울 등. 5editions. ‘Untitled’ 2007. 알루미늄, 거울, 스테인리스 스틸. 5editions.<br>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미술 100년전’에 전시된 이불의 ‘히드라-모뉴먼트’(1998).



    이불은 1997년 단숨에 세계 미술계의 중심으로 들어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젊은 아시안 여성 작가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인전을 연 사실 자체도 화제였지만, 실제 생선에 싸구려 반짝이 조각들을 입혀 전시한 것이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인조비늘로 아름답게 반짝이던 생선들이 곧 구역질 나는 악취를 풍기고 구더기를 만들며 부패했기 때문이다. 견디다 못한 미술관이 생선의 ‘철거’를 요구했고 이불이 5일 동안 ‘맞장’을 뜨면서 그의 개인전은 순식간에 세계로 전파됐다. 그는 다음 해인 9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휴보 보스상 최종 후보 작가전을 열었고, 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국제 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세계 미술계의 스타가 된 것은 센세이셔널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술제도와 기존의 가치관을 비판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잘 전달됐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그 과정에 놓인 수많은 덫과 함정들을 피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가라는 인정도 받았다.



    이 같은 평가가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로부터 10년 동안 그가 보여준 작품들과 활동, 세계 미술계의 평가가 증명한다. 미술평론가 박경미 씨는 “그는 작가로서 놀라운 지구력과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 10년 동안 자신의 작가적 이상을 무서울 정도로 완벽하게 지켜왔다”고 표현했다.

    그의 pkm갤러리 전시는 올해 11월 프랑스 파리 카르티에재단 미술관에서 열리는 초대형 개인전과 2009년부터 유럽-미국-일본-중국으로 이어지는 세계 순회전을 앞두고 일종의 중간 보고회로 기획된 것이다.

    가장 최근의 한국 전시를 통해 많이 알려졌던 ‘몬스터쇼’의 사이보그들은 이번 전시에서 ‘실패한 유토피아의 흔적들과 개인적 이야기를 결합한 새로운 서사’로 바뀌었다. 예를 들면 한국 근대사에서 고문을 상징하는 ‘낡은 욕조’와 백두산이 등장하고, 파시스트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바흐친의 벙커’가 나오는가 하면, 크리스털이 쏟아져 나오는 빙산의 갈라진 틈으로 박정희의 초상이 비치는 식이다. 그의 관심은 이제 서구에서 한국으로 옮겨진 것일까. 혹은 몸에서 서사의 건축적 조형물로 확대된 것일까. 이 전시의 제목은 ‘몽 그랑 레시’(Mon Grand R럄it·나의 거대한 서사)다.

    새로운 작업은 어떤 것인가.

    “더 이상 서사가 불가능한 시대라고 한다. 좌절한 유토피아의 꿈, 계획했으나 실현되지 않은 꿈을 보여주려 한다. 예를 들면 ‘라 돌체비타’에서 완벽한 근대인처럼 보이던 주인공이 자살한 아파트의 계단, 60년대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실현되지 않은 건축 디자인 등이 인용될 것이다.”

    이전의 ‘몬스터’들과 현재의 ‘서사’들은 어디서 연결점을 갖는가.

    “생선 작업이나 몬스터라 불린 사이보그들도 모두 테크놀로지와 유기체가 결합된 것이란 점에서 현재 작업과 같은 맥락이다. 건축, 공간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됐을 뿐이다. 실패한 유토피아는 ‘비전’이 아니라 ‘몬스터’라 불리며, 사람들은 그것을 회피한다. 그러나 난 그것들을 보여주고 싶다.”

    이전 작업에서 보여준 강력한 ‘여성적 파워’를 느끼기 어렵다.

    “이번 전시에 카르티에와 세계 순회전의 극히 일부가 아주 작은 규모로 공개되기 때문이다. 최소 한쪽 면이 6~7m가 넘는 실제 작품을 본다면 그런 아쉬움이 없을 것이다. 대규모의 반짝이는 크리스털과 비즈-이 소재가 주는 환상을 좋아한다-로 이뤄진 작업은 매우 휘황할 뿐 아니라 여성적이다.”

    한국에서 언제 그 작업을 볼 수 있는가.

    “순회전이 한국에는 2010년 혹은 2011년에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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