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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기획|조승희 쇼크

“이민 1.5세대는 시한폭탄이라 불린다”

언어·문화 장벽에 막혀 있다 비정상적 방식으로 표출 쉬워

  • 시드니=윤필립 통신원 phillipsyd@naver.com

“이민 1.5세대는 시한폭탄이라 불린다”

“이민 1.5세대는 시한폭탄이라 불린다”

시드니에 거주하는 이민 1.5세대와 유학생들의 모임 모습.

동양과 서양의 정서는 흔히 온정주의와 합리적 이성주의로 나뉜다. 유럽문화 배경을 가진 나라로 이민을 떠난 한국 이민자들이 맞닥뜨리는 첫 번째 장애물이 이 합리적 이성주의다. 거기에다 개인주의까지 가세하면 아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나이에 이민 온 세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블랙홀에 빠질 수 있다.

특히 언어와 문화, 정서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기층연령을 한국에서 보낸 어린이가 환경이 전혀 다른 외국으로 이민 가 받는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 마음의 상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영어로 할 줄 몰라 바지에 오줌을 지린 경험이 있는 이민자 자녀들의 예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치욕의 체험은 차츰 주류사회에 대한 거부감으로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이민사회에서는 1.5세대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할 때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라는 말을 쓴다. 다행히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나면 두 나라의 언어와 정서, 문화감각을 두루 겸비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시한폭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비근한 예가 4월16일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일어난 조승희 군의 총기난사 사건이 아닌가 싶다.

유럽문화 배경을 가진 영어권 국가들 중 호주는 미국과 캐나다 다음으로 한국인 이민자, 1.5세대, 유학생이 많은 나라다. 때문에 이번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박태환으로 높인 자긍심 조승희가 와르르



이번 총기난사 사건은 연일 호주의 톱뉴스로 다뤄지고 있다. 30년 이상 호주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지낸 이경재(72) 씨는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라는 단어가 호주 TV와 신문에 이처럼 많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회고했다. 불과 보름 전인 3월25일 박태환 선수가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고조된 호주 한인동포의 자긍심이 이번 사건으로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휴가를 얻어 직장을 쉬고 있는 한인동포까지 있다고 한다.

호주의 사회환경은 물론 미국과 다르지만, 언어와 문화의 차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이민 1.5세대의 처지는 엇비슷하다. 또한 같은 또래 한국인 유학생도 약 2만명에 이른다. ‘시한폭탄’의 수가 그만큼 많은 것이다. 뉴사우스웨일스(NSW)주 문교부에서 커뮤니티공보관을 맡고 있는 한인동포 안기화(54) 씨는 “이번 총기난사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호주에서도 일어날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다”면서 “호주의 1.5세대나 유학생들이 툭하면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도 무의식적 중압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씨는 1.5세대 문제의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호주 공립학교에는 이민자 자녀와 유학생을 위한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다”고 소개했다. 그 구체적인 예가 한국어 통역 서비스. 무료 통역뿐만 아니라 무료 전화통역 서비스(Telephone Interpreter Service·61-2-131-450)도 있다. 전화를 걸어 “코리안(Korean)”이라고만 말하면 한국인 통역가와 바로 연결된다. 이러한 무료 통역 서비스를 통해 한인 학부모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자녀의 성적, 생활태도, 진로상담, 복지 등 모든 것을 물어볼 수 있다. 전화통역 서비스는 모든 관공서와 경찰서, 병원 등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NSW주 교육부 홈페이지(www.det. nsw.edu.au)에는 호주 교육제도가 한국어로 상세히 소개돼 있다.

한국 학생들의 후배 체벌에 현지인 기절초풍

한국인은 어느 나라 국민보다 단일민족의 정체성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배타성이 강해 타민족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데 서툴다. 이러한 특성을 잘 아는 호주 정치인이 있다. 시드니 서북부의 한인밀집 거주지역인 이스트우드 인근에 지역구가 있는 존 왓킨스 NSW주 부총리다. 최근까지 경찰장관을 역임한 그는 한인동포 사회를 포함한 이민자 사회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그는 젊은 시절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많은 한국인 학생을 가르친 경험도 있다. 그는 한인 학생들에 대해 “문제학생 뒤에는 반드시 문제부모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많은 한국인 부모들은 호주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경제적 기반을 닦는 데 치중하면서 자녀들에게 과도한 성공 압박을 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지나칠 정도로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부모의 학습 강요와 과잉 기대가 아이들을 문제학생으로 만들었던 거지요.”

호주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인 크렌브룩 하이스쿨에서 30년 넘게 교편을 잡았던 이경재 씨는 지금도 한국인 학생을 위한 호주 문교부 교육위원을 맡고 있다. 주로 문제가 발생한 학교를 찾아가 해결을 돕는 일인데, 호주 교사들 앞에서 민망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는 “한국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킬라라 고등학교 교장에게서 한국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후배 학생을 무릎 꿇게 한 뒤 구타하는 모습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민을 ‘국토의 확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막상 이민 온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친지와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정체성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잃어버린 이가 바로 1.5세대다. 적절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간동아 2007.05.01 583호 (p15~16)

시드니=윤필립 통신원 phillipsy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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