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5

2016.11.30

스타트업이 바꾸는 세상 ④

앱으로 진단하고 게임하며 재활치료

건강·의료 아우르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출발부터 글로벌 시장 진출이 목표

  •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 klee@startupall.kr

    입력2016-11-29 14: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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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중심에는 13세기에 지은 호프부르크 궁이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으로 유명하며,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을 거쳐 지금은 오스트리아 대통령궁으로 사용된다. 귀퉁이 돌 하나에도 사연이 있음직한 이 고성에서는 매년 유럽 최대 스타트업 잔치인 ‘파이오니어 페스티벌’이 열린다.

    5월 대연회장에 모인 청중을 긴장케 했던 강연 가운데 ‘사이보그 되기’라는 제목으로 직접 사람 몸에 NFC 집적회로(IC)칩을 삽입하는 ‘바이오해커(Biohacker)’ 기술 시연이 있었다. 사실 사람 몸에 칩을 심겠다고 작정한다면 그 응용 분야는 무한하다. 평생 자동차 열쇠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신용카드 대신 손등을 카드단말기에 대면 결제도 가능하다. 의료 분야에 적용하면 피를 뽑지 않고도 자신의 혈당지수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이어진 강연에서 벤 황 ‘ProfUSA’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팔에 삽입한 칩이 조직 내 산소(O2) 지수를 측정해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병원 서버에 전달되는 화면을 보여줬다. 병원에서 그 데이터를 인정하기까지 임상시험 허가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몸속에 스텐트나 심박동기뿐 아니라 다양한 센서를 심는 미래가 곧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딥러닝으로 진단 오류 크게 줄여

    우리나라에도 헬스케어 분야에서 세계적 실력을 갖춘 스타트업이 여럿 있다. 먼저 진단 관련 스타트업의 선두주자는 스마트 혈액진단기를 만든 ‘BBB’다. 비록 사기극으로 끝났지만, 피 한 방울로 모든 질병을 진단한다던 미국 ‘테라노스’가 10조 원을 투자받았을 만큼 거대한 시장과 고도의 분석 시술이 필요한 분야다. 피검사는 만성질환이나 성인병 등으로 병원을 찾는 거의 모든 성인이 받을 정도로 활용 빈도가 높다. 그러나 막상 결과가 나오면 흘깃 한 번 보고 버리는 데이터가 피검사 자료다. ‘BBB’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자신의 혈액검사 결과가 스마트폰 앱에 차곡차곡 쌓이고 필요하다면 테스트 결과를 바로 전문가에게 보내줄 수 있는 앱과 플랫폼으로 성장 중이다.



    목에 건 청진기가 의료인의 상징인 시대가 빠르게 저물고 있다. 휴대용 초음파 진단기가 청진기를 대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지도 제법 오래됐다. 이 예측된 미래를 구현하는 스타트업이 우리나라에 있다. 창업자가 의사인 ‘힐세리온’이라는 회사는 전기면도기처럼 생긴 ‘SO

    NON’ 시리즈를 내놓았다. 전용단말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스마트폰이나 일반 태블릿PC와 연동되도록 만든 초음파 진단기로는 세계 최초의 시도다.

    로봇의 등장으로 육체노동자가 직장을 잃었다면 머신러닝은 전문가의 설 자리를 위협할 것이다. 쉽게 말해 인공지능 알파고가 의료 영역으로 확장된다면 인간 의사보다 훨씬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삼성종합기술원 출신이 창업한 ‘뷰노’는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CT(컴퓨터 단층촬영)와 진단 데이터를 분석한 뒤 폐암 여부를 진단하는 오진 방지 솔루션을 내놓았다. 현재 폐암 진단은 97% 정확성을 갖췄다고 하는데, 이는 어느 인간 의사보다 높은 정확성이다.

    ‘루닛’도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이미지 인식 진단 기술 분야의 스타트업이다. 10월 중순 그리스에서 열린 의료영상 관련 국제 콘퍼런스의 유방암 병리진단 자동화 대회에서 스웨덴, 독일, 미국, 영국 등 선진국 기업을 제치고 3개 경쟁 분야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흉부엑스레이를 통한 폐질환 검출의 경우 94% 정확성을 기록했으며, 좀 더 복잡하고 판독이 어려운 유방 촬영술도 80%대 정확성을 보여줬다.



    유전자 맞춤형 다이어트 인기몰이

    심혈관계 질환은 성인 사망률 원인 통계에서 수위를 차지하며, 발병 시 지속적인 재활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환자와 가족 모두의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대표 심혈관계 질환인 뇌졸중의 경우 환자가 지속적으로 치료받지 못한다는 점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왔다. 마비된 팔다리의 회복 여부가 재활치료에 달렸음에도 더딘 회복 속도를 견딜 인내심의 결여와 장기 치료에 따른 재정적 부담으로 환자 대부분이 중도에 포기한다.

    ‘네오펙트’는 뇌졸중 환자와 발달장애 어린이의 지난한 재활치료를 한 단계 개선한 스타트업이다. 재활훈련 게임이 가능한 스마트 글러브는 외신에도 여러 번 소개됐으며 임상시험 결과도 고무적이다. ‘네오펙트’는 그 기술력을 인정받아 스타트업으로는 드물게 CES 2017 혁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우리 사회에서 비만문제는 중년이 더 심각한데, 실제로 과민하다 싶을 정도로 비만에 신경 쓰는 그룹은 젊은 여성이다. 이들의 마음을 파고든 ‘제노플랜’의 유전자 맞춤형 다이어트가 인기다. 유전자 분석 비용 14만9000원을 내면 의뢰자의 타액을 분석해 혈당이나 카페인 대사 같은 헬스 관련 항목과 탈모나 피부 탄력 같은 뷰티 관련 항목을 종합 분석해 맞춤형 체중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의료 분야나 친자감정 등에만 쓰인다고 생각했던 유전자 검사를 다이어트와 연결 지으면서 새로운 시장이 생겨났다. 창업자에 따르면 서비스가 출시된 뒤 한동안 잠잠했는데, 이 서비스를 이용해본 소비자의 반응이 뜨겁자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로 시리즈 A에 투자금이 50억 원이나 들어왔다고 한다.    

    다이어트를 결심했다면 한 번은 들여다봤을 앱이 이제는 글로벌 스타트업이 된 ‘눔’이다. 아예 본사를 미국 뉴욕으로 옮겼고, 이제는 전 세계 4000만 명이 함께 쓰는 ‘눔’이 이 분야 최고 앱이지만, 그렇다고 후발 주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친절하고 꼼꼼한 다이어트 코치를 원하는 이에게는 스타트업 ‘마이다노’가 만든 ‘다노’라는 코칭 프로그램이 있다. 이 앱은 다이어트 성공을 위해 초기 4주간 습관 형성에 집중하며, 의식적으로 반복 학습을 시킨다. 설명만 들으면 상당히 지루할 것 같지만, ‘다노’ 앱에서 지시하는 작은 과제를 매일 수행하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평이 많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일단 9만9000원을 내고 시작하는데, 입에 뭔가 넣기 전 반드시 사진을 찍어서 앱에 기록한다. 운동 또한 앱에서 시키는 대로 수행하며 계속 기록한다. 이렇게 기록한 것을 바탕으로 코치와 빈번하고 지속적으로 일대일 컨설팅을 해나간다. 비록 스마트폰 앱을 통한 원격 격려지만, 사이버 소통에 익숙한 세대라 그런지 코치에게 의존증이 생길 정도로 신뢰가 형성된다고 후기에 적혀 있다. 기술력보다 좋은 콘텐츠로 승부를 보는 ‘마이다노’는 창업투자회사로부터 22억 원을 투자받았고, 지난해 손익분기점도 넘겼다고 한다.

    고혈압과 함께 대표적인 성인병으로 꼽히는 당뇨병은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1명꼴이라는 높은 유병률을 보인다. 대부분 유전이 원인이지만, 생활습관으로 발병 시점이 앞당겨지는 경우가 많다. 일단 발병하면 복약뿐 아니라 세심한 식이요법이 요구돼 일상적인 사회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 더 나아가 먹는 즐거움이 사라지면서 삶의 질이 낮아졌다고 호소하는 환자도 많다.



    보행 자세, 거북목 교정해주는 기기

    ‘닥터키친’은 맛있는 당뇨식을 제공하고자 창업한 당뇨 식단 스타트업이다. 전문 의료진의 조언에 따라 특급호텔 셰프들이 한식, 중식, 일식, 양식을 망라하는 당뇨식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제 당뇨병 환자도 기능성 위주의 맛없는 당뇨식만 먹지 말고 가끔 호사를 누려볼 일이다. 하루 한 끼를 2주간 주문하면 끼니당 8500원 정도에 가능하며, 더 자주 시키면 7000원대로 내려간다.  

    건강과 관련된 스타트업을 이야기하자면 재미교포 제임스 박이 공동창업자로 설립한 ‘핏빗’도 빼놓을 수 없다. 아저씨가 허리에 차고 다니던 만보계가 스마트폰과 연동된 스마트밴드로 전환되는 데 핏빗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핏빗 같은 웨어러블 기기는 걸음 수, 총열량 소모량 등 기본 데이터에서 출발해 심박수, 전화나 문자메시지 확인 등이 가능한 스마트워치 쪽으로 그 기능이 확장됐다.

    우리나라에도 스타트업이 만든 흥미로운 건강 관련 기기가 많다. ‘직토’의 스마트밴드는 보행 자세 교정을 통해 우리 몸을 바르게 잡아준다. 양팔을 앞뒤로 적당히 흔들며 보행하는지를 측정하는 센서가 유려하게 디자인된 케이스 안에 들어 있다. ‘나무’라는 스타트업에서 만든 ‘알렉스’는 거북목  교정기다. 알렉스를 양쪽 귀에 건 상태에서 안 좋은 자세를 오래 취하면, 목 부분에 걸쳐 있는 본체가 진동으로 가르쳐준다. ‘와이브레인’은 머리에 부착해 우울증, 경도인지장애 등을 치료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또한 여성 생리컵에 센서를 부착해 교체 시기를 스마트폰으로 가르쳐주는 ‘룬컵’도 80년 생리컵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제품이다.

    건강과 의료를 아우르는 헬스케어 관련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해외 진출이 목표인 경우가 많다. 기술을 기반으로 삼다 보니 특정 국가나 제도에 종속되지 않아도 되고, 밖으로 나가면 다국적 기업과 제휴나 합병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유학파와 대기업 연구소 출신의 정예 인력이 포진한 우리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일으킬 변화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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