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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이 만난 영화, 영화인|‘애인’ 성현아

“벗은 몸보다 연기를 봐주세요”

“벗은 몸보다 연기를 봐주세요”

“벗은 몸보다 연기를 봐주세요”

결혼을 앞둔 여자의 하룻밤 사랑을 그린 영화 ‘애인’은 성현아가 본격적으로 주인공을 맡은 첫 영화다.

성현아라는 이름은 한때 영화배우로서가 아니라 다른 의미로 사람들 사이에 기억되었다. 그녀는 마약 사건의 주인공이었고 그 이후에는 누드집을 찍었다. 아름다운 육체와 미모를 소유했지만 잘못된 길을 가다가 대중에게 잊혀져버린 몇몇 배우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성현아도 그런 길을 밟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성현아를 배우로 부활시킨 것은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였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 영화를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영화 데뷔작으로 생각한다.

물론 지금부터 10년 전에 그녀는 신승수 감독의 ‘할렐루야’(1995년)로 스크린 데뷔를 했다. 그러나 주로 TV 드라마를 찍다가 스캔들이 터졌다. 그 이후에는 ‘보스 상륙작전’ ‘주글래 살래’ 등에 출연하며 재기를 꿈꾸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대중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스캔들의 주인공이었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도 그 이미지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첫 영화로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꼽는 것이다. 한 사람의 배우로서 자의식을 갖고 연기에 몰입하며 찍었다는 의미다.

한석규, 이은주와 공연했던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주홍글씨’에서는 조연이었지만, 올여름 개봉된 공포영화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에서는 단독 주연을 맡았다. 그리고 이번에 개봉하는 ‘애인’에서도 그녀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상대 배우인 조동혁이 있지만 그는 모델 출신 신인배우다. 두 사람이 처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하룻밤 동안 연애를 하는 것이 영화의 전부다. 그리고 성현아는 현재 성지루, 명계남 등과 함께 ‘손님은 왕이다’를 찍고 있다.

‘애인’은 미술을 전공한 신인 김태은 감독의 데뷔작이다. 화면은 매우 아름답다. 특히 예술마을 헤이리 일대에서 촬영된 장면들은 처음 만나자마자 불꽃처럼 부딪치는 두 남녀의 적나라한 만남을 추하지 않게 감싸고 있다.

“노출 여부가 좋은 영화 기준은 아니죠”



서울에 공식적으로 첫눈이 내린 날, 기자 시사회가 끝난 뒤 만난 그녀는 차분하지만 자신 있는 어조로 ‘애인’에 대해 설명했다. ‘애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적나라한 섹스신이다. 특히 미술관에서의 섹스 장면에서는 여자(성현아 분)의 배 위에 분출된 남자(조동혁 분)의 정액이 화면에 노출된다. 테크노 클럽에서도 충격적인 정사 장면이 나오고 일부 장면에서는 성현아의 측면 헤어 누드도 보인다.

“배우는 좋은 영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영화의 기준이 노출의 여부는 아니다. 노출 때문에 출연을 망설이거나 노출에 대해서 부담스럽게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올 누드라고 해도 영화의 흐름 속에서 잘 어우러지면, 보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증폭시킨다. 노출이 많지만 ‘애인’은 좋은 영화다. 즐겁게 찍었다. 여배우의 노출이 얼마나 많은지, 섹스신을 찍다가 얼마나 탈진했는지, 그런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베드신 한 장면을 찍으면서도 감독과 배우는 많은 고민 끝에 결정을 하고 촬영을 한다. 그것을 흥미 위주로 보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벗은 몸보다 연기를 봐주세요”

‘애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주홍글씨’ ‘첼로’(시계방향)

‘애인’은 도시 남녀의 하루 동안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다. 김태은 감독은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음 만난 남녀가 어떻게 그렇게 충동적으로 하룻밤을 격렬하게 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충분히 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여자 역을 맡은 성현아는, 매듭 공예가로서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남자를 만나고 순간 일탈을 꿈꾼다. 그 남자는 건축업을 하다가 사업을 정리하고 내일 아프리카로 떠날 예정이다.

그들은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여자와 결혼할 남자는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결국 여자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에 재미있게 놀라고까지 말한다. 결혼한 지 7년이 지나면 결국 모든 남녀 관계는 똑같아진다는 극중 대사처럼.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부인 혹은 남편 이외의 또 다른 애인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사랑의 본질이 변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기분 나쁠 수 있다. 결국 모든 사랑이 똑같아진다는 것보다는, 일반적인 사랑의 변화들을 꼬집고 비꼬려는 감독의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애인’은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주연의 ‘비포 선라이즈’의 섹스 버전처럼 보인다.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두 남녀가 비엔나에서 다음 날 해 뜰 때까지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인 ‘비포 선라이즈’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지적이고 위트 있는 대사 위주로 전개되는 ‘비포 선라이즈’와는 달리, ‘애인’은 격정적인 섹스 위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쿨한 척하는 정서는 비슷하다. ‘비포 선라이즈’는 진짜 쿨하고, ‘애인’은 쿨한 척한다.

‘애인’은 몇몇 미장센의 화려한 지원사격에도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의 두 사람만의 결혼식 등 비슷한 멜로에서 이미 수없이 반복 사용된 낡은 공식을 되풀이하고 있고, 지적 즐거움을 조금도 제공하지 못하는 범속한 대사들 때문에 새로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연출은 육체 자체의 포말적인 현상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낯선 남자와 일탈의 하룻밤 ‘열연’

그러나 성현아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배우로서 자신의 선택에 조금도 후회가 없는 것처럼 당당했으며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관객들이 ‘애인’을 통해 찾는 것은 적나라한 정사 신, 그리고 노출된 성현아의 육체뿐이다.

“예쁜 장면을 잡아준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성현아가 말할 정도로 김태은 감독은 성적 본능과 일탈의 욕망을 추하지 않게 그리기 위해, 인물과 배경의 미학적 배치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통속적 전개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애인’에서의 남자 캐릭터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남성상과는 반대다. 돈도 없고 여자에게 내세울 것도 없다. 그러나 여자가 모든 것이 완벽한 남자와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실수투성이지만 귀엽고, 돈도 없지만 내가 감싸줄 수 있는 부분이 많은 남자를, 여자는 사랑할 수 있다.”

7년이나 만난 약혼자가 있는데 낯선 남자와 격정적인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을까? 만약 그녀 자신이 영화 속과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친구의 남자 친구를 보며 굉장히 멋있다는 느낌을 받은 여자분들이 많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그런 경험은 있다. 그러나 멋있는 남자가 있어도 ‘아, 멋있구나’라고 지나가지만, 만약 그 매력적인 남자가 하루 동안 나와의 데이트를 청한다면 난, 남자 친구가 없다는 가정 아래서 응할 것이다.”

그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낯선 남자를 만나, 설렘을 느낀 경험이 있을까?

“나는 몰랐다. 엘리베이터에 남자와 여자, 두 사람만이 탔을 때 밀폐된 공간에 가득 찬 어떤 공기를. 엘리베이터에서의 두 남녀의 첫 대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현실성도 있어야 하고 느낌도 새로워야 하고, 그런 것들을 고민했다.”

성현아는 요즘 “매일이 즐겁고 설렌다”고 했다. 성현아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남자 친구인 사진작가 강영호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일상이 행복한 이유를 내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끔 행복해 보였다.



주간동아 2005.12.13 514호 (p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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