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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보카트 왜 본색 드러냈나

팀 컬러 완성 위한 시간 확보 ‘발등의 불’ … 구단 반발 위험 불구 정공법 선택

  • 최원창/ 축구전문기자 gerrard@jesnews.co.kr

아드보카트 왜 본색 드러냈나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지난해 유로 2004(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고 있던 딕 아드보카트(58) 감독을 ‘타협하지 않는 완고한 스타일’이라고 표현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작은 장군’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정공법을 좋아하며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유로2004가 벌어진 포르투갈에서 기자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매번 네덜란드 언론들과 설전을 벌이며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을 목격했다.

그러나 9월30일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아드보카트 감독은 예상과 달리 부드러웠다. 늘 웃음을 지었고 유머를 즐겼다. 세 차례 A매치에서 2승1무(6골2실) 성적을 거둔 그는 연착륙에 성공하며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 그가 11월21일 숙소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처음으로 불같은 성격을 뿜어냈다. 내년 1·2월 6주간의 전지훈련을 앞두고 대표팀 차출에 협조하지 않는 수원과 서울 등 2개 구단에 대해 “전지훈련에 오지 않는 선수들은 독일월드컵에 데려가지 않겠다”고 경고한 것이다.

그는 현재 K리그는 세계 수준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전지훈련을 통해 집중적으로 대표팀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월드컵은 국가적 대사인 만큼 구단들의 헌신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월드컵까지 9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태극호를 맡은 것은 대한축구협회가 구두로 전지훈련을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표팀과 클럽 갈등 전 세계 공통

이를 두고 프로축구 관계자들은 “K리그를 무시한 발언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그동안 희생만 해온 K리그 역사를 모르면서 함부로 얘기했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감독이 구단을 상대로 협박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사실 아드보카트의 발언은 한국 현실에서는 일종의 도발과도 같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감정적으로 발언한 게 아니다. 핌 베어벡 코치와 상의한 뒤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그는 왜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면서까지 위험한 도발을 택한 것일까?

아드보카트와 프로팀 중 누가 옳으냐 하는 문제는 일단 유보해두자. 지금은 그의 속내를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표팀과 클럽의 갈등은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유럽의 빅 클럽들로 구성된 G14는 현재도 늘어만 가는 A매치 수를 줄이기 위해 국제축구연맹(FIFA)에 대항하고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러한 현실을 경험해왔다. 그 때문에 그는 ‘정공법’을 통해 대표팀 강화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2002년 2월 한일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위기의 ‘오렌지 군단’을 다시 맡은 아드보카트 감독은 빅 클럽들로부터 심각한 압력을 받았다. 네덜란드 대표팀의 경우 전통적으로 아약스파와 PSV 에인트호벤이 대립각을 세우며 힘겨루기를 하는데, 두 팀의 경쟁의식이 치열하다 보니 대표팀 감독이 팀을 만드는 데 힘들 때가 많다.

에인트호벤 감독 출신인 그가 빅 클럽들의 목소리를 줄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정공법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에인트호벤 출신인 루드 반 니스텔루이에게 한때 팀 자체적으로 1경기 출전정지 처분을 내릴 만큼 강력한 징계를 내리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반 니스텔루이는 물병을 걷어차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드보카트 감독은 빅 클럽 출신 선수들을 장악했다.

또 아약스의 대표적인 킬러이지만 ‘계륵’으로 전락했던 파트리크 클루이베르트의 비중을 점차 줄이며 유로2004 때는 그를 단 1분도 기용하지 않았다. 아약스의 연고지인 암스테르담에 기반한 언론들은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밀어붙였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대립한 구단은 네덜란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2003년 8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와 아스날에서 뛰고 있던 네덜란드 선수들에게 “대표선수를 지속하고 싶다면 다른 팀으로 이적하라”는 깜짝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당시 하셀바잉크·멜키오트·젠덴(이상 첼시), 반 브롱크호스트(아스날) 등 4명은 자신들의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가 극히 제한돼 있었다. 그들을 향해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적하지 않으면 대표선수로 뛸 수 없다”는 경고를 던진 것이다.

한국을 맡은 아드보카트 감독은 2년 전 첼시와 아스날의 선수들에게 했던 방식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당시 그의 인터뷰 내용은 이렇다.

“첼시의 네덜란드 선수들이 경기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해 경기 적응력이 저하된다면 최고의 피해자는 바로 나다. 나는 각 클럽들의 주전들만으로 대표팀을 구성할 것이다. 그들은 주급을 덜 받더라도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클럽을 찾아야 대표로 뛸 수 있을 것이다.”

포백 완성 6주간 훈련은 필수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현실적인 네덜란드인의 발언답다. 만일 한국 대표선수들을 향해 “소속팀을 떠나라”고 요구한다면 어떨까? K리그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과감한 직설법을 그는 2년 전에도 스스럼없이 시도했던 사람이다.

위기의 한국 축구를 떠맡은 그의 처지에서는 구단의 반발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한국 축구가 그에게 기대하는 바는 대표팀과 K리그의 균형 발전이 아니라, 독일월드컵이라는 한시적인 대회에서 최상의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과 마찬가지로 아드보카트 감독은 ‘족집게 과외 선생’ 소임을 맡았다.

아드보카트 감독 본인도 자신이 ‘족집게 강사’라는 것을 직시하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훈련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게 되자 그동안 해온 방식으로 정면 승부한 것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태극호 강팀 만들기 과정은 한마디로 ‘시간과의 전쟁’이다. 그가 1·2월 전지훈련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이유도 이때가 유일하게 팀 컬러를 만들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11월12일 스웨덴전과 16일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전에서 유럽파에 대한 테스트를 마쳤다. 그는 이들을 활용할 방안을 벌써 그려놓았다.

앞으로 그가 해보고 싶은 것은 김남일, 송종국(이상 수원) 등 부상으로 빠져 있는 2002 한일월드컵 멤버들의 부활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것과 포백 수비라인의 안착이다. 또 정조국(서울), 이상헌(인천), 이강진(도쿄베르디) 등 진흙 속에 감춰진 구슬을 찾아내는 작업도 병행할 생각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11월24일 대한축구협회 정몽준 회장과 북한산에 오르며 “내년 초 해외 전지훈련 중에는 포백 수비에 대한 실험을 계속해보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국 선수들이 스리백에 잘 적응돼 있고 소속팀에서도 대부분 스리백을 구사한다”면서도 “포백은 상대 공격수 수에 상관없이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수비 형태”라며 포백이 갖는 장점을 강조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원톱 스트라이커를 선호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을 관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포백 수비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 만큼 강팀들과의 대결을 통한 6주간의 훈련은 필수적인 것이다.

11월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간 J리그를 점검하고 돌아온 아드보카트 감독은 당당했다. 다시 평정심을 되찾은 그는 북한산에 오른 후 “높은 산에 오른 것만큼 독일월드컵에서도 높이 올라갈 수 있겠느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라온 게 자랑스럽다. 기자들이 산에 올라온 것처럼 나도 할 수 있다”며 유머 섞인 자신감을 보였다.

그의 직설 화법은 계속될 것이다. 그때마다 한국 문화와 부딪치며 파열음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거액의 돈을 들여 영입한 그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주간동아 2005.12.06 513호 (p72~73)

최원창/ 축구전문기자 gerrard@je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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