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8

2005.11.01

낚싯대로 들어올린 인간과 인생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5-10-31 09: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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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싯대로 들어올린 인간과 인생

    폴 퀸네트 지음/ 이순희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436쪽/ 1만3800원

    별이 쏟아지는 밤. 낚싯줄을 던진다. 강철 척추를 가진 마우스가 물 위로 풍덩 떨어진다. 십, 구, 팔, 칠… 일.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잡아챈다. 철썩!! 다갈색 물이 치솟아 오르면서 하얗게 물을 뿜어낸다. 마우스는 검은 소용돌이 속으로 가라앉는다. 플라이 줄을 잡아챈 커다란 배스가 수련잎을 뚫고 머리를 흔들어대는 순간, 손에 배스의 생생한 활력이 전해진다. 배스가 나를 끌어간 곳은 낯설고도 아름다운 곳이다.”

    ‘다윈은 어떻게 프로이트에게 낚시를 가르쳤는가?’는 낚시광인 저자 폴의 낚시 경험담을 통해 ‘낚시하는 인간’으로 진화해온 인류 발자취와 현대인을 괴롭히는 자살, 성, 사랑, 가정불화, 이혼, 공포증 등 펄떡이는 다양한 문제들을 건져 올린다.

    저자는 ‘지구상의 인간은 살아남은 위대한 다윈의 배스다’라고 말한다. ‘진화론’을 발표한 찰스 다윈은 못 말리는 낚시꾼이었다. 다윈은 호기심이 왕성했다. 많은 책을 쓰고 많은 연구를 했는데, 1859년에는 ‘종의 기원’을 발표했다. 진화론은 인류의 수많은 신화들을 흔들어댔다. 엎어진 떡밥 통에서 빠져나온 지렁이들처럼, 새로운 학문들이 꿈틀거리며 기어나왔다. “인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인간의 의무를 깨달으려면, 생명의 커다란 그물망 안에 있는 생명체들은 모두 똑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고? 지금은 우리가 낚시에 쓰려고 지렁이를 잡지만, 내일은 지렁이가 우리를 잡을지 누가 알겠는가.”

    수확의 계절 가을에는 체중 조절을 하기가 어렵다. 추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석기시대부터 “지방을 축척해야지! 곧 겨울이 온다고!”라고 무의식이 외쳐왔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는 “겨울에 늘어나는 병은 여름이면 낫고, 여름에 늘어나는 병은 겨울이면 낫는다”고 했다. 낚시꾼들은 겨울철에는 침울해져 짜증을 잘 내다가도 낚시철이 되면 쾌활하고 명랑해진다.

    폐소성 발열 증상은 겨울철에 불안감이 점점 악화되는 증세로 나타난다. 이것의 특효약은 출렁이는 물결이다. 물은 빛을 반사하고, 반사된 빛은 병을 낫게 해준다. 계절성 정서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처방이다.



    인간은 다양한 낚싯대를 만들며 진화했다. 낚싯줄을 던지던 단순한 기술이 달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행위로 발전해오는 동안 인간의 뇌는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정확한 캐스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엄지손가락은 진화의 자연스러운 소산물이다. 자세히 보면 낚싯대와 낚싯줄, 낚싯바늘 역시 인간의 길고 바싹 야윈 팔, 구부러진 손가락, 날카로운 손톱에 다름 아니다. 만일 우리가 더 좋은 낚시도구를 만들 때 쏟아붓는 것과 똑같은 지혜와 열정으로 다른 모든 문제들을 다룰 수 있다면, 인류의 미래는 훨씬 더 밝아질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마약치료센터 책임자로 알코올중독자 요양소에서 환자 컨설턴트로 일해온 저자는 인생과 삶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물론 낚시가 빠지지 않는다.

    “건강하게 장수하길 바란다면 희망도 버리지 말고 낚시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증, 자살 충동, 불행과 노년의 문제로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런데 한때 낚시를 했던 사람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낚시를 그만두고, 낚시 친구들과의 접촉을 끊었다. 끊는다는 것은 희망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없이 낚시를 던지고, 힘겨루기를 하고, 물고기의 크기를 높여가는 것을 권하고 싶다. 무거운 물고기를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씩 들어올려라.”

    젊은 낚시꾼은 대어를 향한 집념으로 배우자와 종종 마찰을 일으킨다. 그러나 진짜 대어를 잡는 시기는 정년퇴직할 나이다. 아이들은 떠나가고 평일에 낚시를 하기 시작할 때,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 죽음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씩 웃으면서 “예끼 이놈, 난 낚시를 열심히 한 사람이야”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저자는 지금도 ‘희망’이라는 씨알 좋은 놈을 인생에서 건져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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