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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에버랜드 와일드 사파리 호랑이와 사자의 대권 싸움

맹수의 제왕 전쟁 피도 눈물도 없다

5000평 작은 공간 인간사 축소판 … 한국인의 집단성 호랑이인가 사자인가

  • 사진·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 글·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맹수의 제왕 전쟁 피도 눈물도 없다

  • 정치판이 시끄러웠다. 어느 교수의 통념을 거스르는 주장에 나라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검찰의 독립이 중요한가, 학문의 자유가 소중한가. 사람들의 싸움은 이렇듯 가치관의 차이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한 싸움은 정치권을 거치면서 권력을 둘러싼 이전투구로 바뀌곤 한다. 사자와 호랑이의 권력투쟁을 들여다보았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다툼은 맹수의 그것과 얼마간 닮아 있었다. -편집자 주
맹수의 제왕 전쟁 피도 눈물도 없다

십육강(왼쪽)과 테크노가 맞장을 뜨고 있다. 싸움을 붙인 비너스(맨 오른쪽)는 테크노가 맞는 것을 보고 꽁무니를 뺐다. 십육강 같은 한국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는 덩치가 커 사자와의 일대일 싸움에서 유리하다. 일대일로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둘 중 힘 센 놈이 이긴다’는 게 정답이다. 사파리에서 사자들이 우위를 보이는 것은 집단의 사자와 뭉칠 줄 모르는 호랑이의 승부이기 때문이다.

초가을, 햇볕을 받아 바위는 포근했다. 오후는 무료했고, 흙은 자글거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암사자 비너스(8·암컷)가 호랑이의 구역으로 시선을 옮긴다. 호랑이 두 마리가 소란스럽게 다툼을 벌인 까닭이다. 비너스의 눈매가 날카로워진다. 버릇없이 소란을 피운다는 투다. 비너스를 따라 사자들이 떼로 호랑이들에게 달려든다.

비너스가 으르렁거리면, 사자들이 호랑이들을 윽박지른다. 수사자들의 갈기털이 곤두서자, 호랑이들은 몰려온 사자 무리에 고개를 숙인다.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헐레벌떡 도망가는 호랑이들의 모양새가 맹수의 자존심을 무색케 한다. 호랑이들은 얼어붙은 듯 오금을 펴지 못했고, 비너스는 성이 풀린 양 자글거리는 흙 냄새를 맡으면서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비너스는 할 일 없이 ‘초원’을 쏘다녔다.

권력 다툼과 사랑, 그리고 질투 벌어져

맹수의 제왕 전쟁 피도 눈물도 없다

옛 왕인 여비(오른쪽)가 투스와 하울의 애정 행각을 부러운 듯 지켜보고 있다. 하울은 발정기였는데, 왕인 아이디는 하울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사자와 호랑이는 가장 센 놈만이 식욕, 성욕, 권력욕을 제대로 채울 수 있다.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와일드사파리’는 호랑이와 사자가 동거하는 기묘한 공간이다. 1976년 사자 사파리로 출발한 뒤 87년 호랑이 사파리가 꾸려졌고, 92년엔 사자와 호랑이를 합사했다. 20마리의 사자와 29마리의 호랑이가 터를 잡았는데, 매일 각각 10마리 안팎의 사자와 호랑이가 방사된다. 5000평의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맹수들의 권력 다툼과 사랑, 질투는 다듬어지지 않았을 뿐, 진화의 어느 갈림길에서 엇갈린 사람의 그것과 얼마간 비슷해 보였다. 맹수들의 권력투쟁은 꼭대기에 올라섰기에 매서웠고, 힘을 가졌기에 더욱 거칠었다. 마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싸움처럼.

비너스는 와일드사파리의 여제(女帝)다. 비너스는 가장 힘이 센 수컷을 다스림으로써 ‘작은 초원’을 지배한다. 비너스의 마음을 얻은 자가 곧 ‘왕(王)’이다. 소슬바람에 햇살이 가벼워진 오후, 사자왕 아이디(5·수컷)는 오도카니 여제의 곁을 지킨다. 왕의 솟구치는 양기도 비너스의 교태 앞에선 속수무책인 듯싶다. 여제와 왕은 꼬리를 바스락거리며 입을 살포시 맞댔다. 수사자의 목덜미를 핥고 빠는 비너스의 혀는 능숙했다. 등을 흙에 깔고 대(大)자로 누워 속살을 보여주며 앙탈을 부릴 때 암컷은 앙칼졌다. 공동 정권의 주인인 아이디-테크노(5·수컷) 형제를 비롯해 사파리의 모든 수사자들은 비너스를 흠모한다. 사람의 눈으론 종잡을 수 없는 뭔가 특별한 매력을 가진 모양이다.



맹수의 제왕 전쟁 피도 눈물도 없다

풍호(왼쪽), 들호가 다정하게 앉아 있다. 호랑이들은 사파리에서도 제 영토를 갖고 단독 생활을 하는데 한 살 터울의 두 호랑이는 사이가 매우 좋다.

비너스는 ‘색공’을 무기로 왕 여럿을 대를 이어 거느려왔다. 그가 세상을 다스리는 법은 영특하지만 비겁하다. 비너스는 맘에 안 드는 사자나 호랑이가 있으면, 살며시 그 앞으로 다가선다. 그러면 비너스에게 매료된 수사자가 비너스가 눈길을 준 사자나 호랑이를 호되게 혼내준다. 옛 남편인 여비(6·수컷)를 왕좌에서 몰아낼 때도 같은 방식이었다. 비너스의 관능에 포박당한 어린 수사자들은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왕좌에 오른 어린 수사자가 어른이 되면 비너스에 매료된 또 다른 젊은 수사자가 반역을 일으키면서 ‘맹수 제국’의 왕위는 이어져나갔다.

비너스는 전설 속의 왕인 ‘천하’를 기억하는 유일한 암사자다. 천하는 호랑이의 시대를 종언시킨 포철과 엎치락뒤치락 왕위 싸움(1995~2000년)을 벌이면서 사파리를 태평성대로 이끈 초원의 절대자. 천하가 물러나자 순식(2001년 집권), 여비(2002~2004년 집권)가 비너스를 차지했고, 비너스에게 버림받았으며, 그에 의해 나락으로 추락했다. 살았으되, 권력 사슬의 밑바닥으로 추락한 여비의 오늘은 애처로웠다. 더 강한 수컷을 발견한 암컷들은 더 이상 옛 권력자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수사자들에게도 권력에서 밀려난 옛 왕은 천덕꾸러기일 뿐. 여비가 바로 그랬다. 사람의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맹수의 제왕 전쟁 피도 눈물도 없다

암호랑이 강호는 겁이 없다. 지프에도 제멋대로 오르고 사자들과의 눈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맹수의 권력욕은 영토와 암컷, 먹이에서 비롯한다. 실력자는 발정기의 암컷을 거의 독점하고, 제 영토인 초원을 할 일 없이 쏘다닐 수 있다. 사파리에선 하루 5kg가량의 닭고기가 주어지고, 가끔씩 토끼고기·돼지고기 등이 공급되는 터라 권력과 먹이의 상관관계는 비교적 적다. 그러나 권력을 가지면 영토와 암컷을 얻는 것은 야생과 매한가지다. 발정기 중에서도 수태가 가능한 ‘그날’엔 왕이 하루 종일 암사자를 데리고 다니며 수십 차례 교합한다. 한 차례의 ‘섹스’에 걸리는 시간은 20~60초. 하지만 맹수의 세계에도 관용은 있다. 실력자가 암컷을 독식하는 게 원칙이지만, 왕이 잠을 자거나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하위 수컷도 암컷들과 짝짓기를 할 수 있다. 다만 호랑이는 센 놈의 암컷 독점이 사자보다 엄격하다. 사람은 어떤가.

서열이 낮아 ‘성욕’을 풀기가 쉽지 않은 수사자는 호랑이 암컷을 사랑하기도 한다. 수사자 사룡과 암사자 명랑은 사파리에서 라이거를 낳았다. 정신이상이라거나, 독특한 성적 취향을 가졌다고 둘러대기엔 둘의 관계가 너무도 애틋했다. 마치 일부일처처럼 늘 붙어다녔고 질기게 사랑했다. 사룡은 다른 수사자와 호랑이들의 공격으로부터 명랑을 보호했다. 사룡과 명랑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맹수의 제왕 전쟁 피도 눈물도 없다

여비의 얼굴이 상처투성이다. 왕에서 밀려난 뒤 동네북이 되었기 때문이다. 권력에서 밀려나면 2인자가 아닌 바닥이다. 왕은 암컷을 독점하는 터라 성교를 다른 사자들보다 많이 하는데, 지나친 섹스는 체력을 소진시켜 왕위를 빼앗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룡과 명랑의 자식들은 ‘괴물’이었다. 덩치가 사자·호랑이보다 컸는데, 맞장을 뜨면 사자·호랑이는 적수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부모의 업보 탓인지 새끼를 가질 수 없다. 수호랑이와 암사자의 ‘러브’가 만들어내는 타이온은 동물원에서도 좀처럼 태어나지 않는다. 수사자와 달리 수호랑이는 암사자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물론 야생에서 사자와 호랑이가 조우해 라이거나 타이온을 낳는 일은 없다.

떼로 다니는 사자들, 사육사 눈 피해 호랑이 괴롭히기

어스름까지 사자들은 틈만 나면 사육사들의 눈을 피해 호랑이를 괴롭히려고 했다. 비너스가 주로 부추기는데, 싸움은 대부분 싱겁게 끝난다. 싸움이랄 것도 없다. 비너스는 다른 사자들과 함께 떼로 몰려가 호랑이들을 흠씬 패주었다. 호랑이들은 도무지 ‘뭉칠 줄 모른다’. 친동생이 허벅지에 사자의 송곳니를 받고 있어도 큰형이 모른 체하는 게 호랑이다.

와일드사파리는 1국(國)체제다. 아이디가 비너스를 떠받들며 다스리는 사자의 천하다. 다만 호랑이들도 후미진 곳에서 자치권은 누린다. ‘호랑이 자치구’의 대장은 호비(4·수컷). 호비는 앞선 대장인 호식이 떠난 뒤 무주공산에 입성했으나, 십육강(3·수컷)을 비롯한 경쟁자들로부터 견제받고 있다. 호식은 ‘호랑이의 시대’를 기억하는 마지막 호랑이다. 92년 호랑이와 사자가 합사된 뒤 한동안은 호랑이가 천하를 호령했다. 시쳇말로 ‘사자를 가지고 놀았다’. 지금 사자들이 그렇듯 떼로 몰려다니며 한 놈씩 사자들을 두들겨 팼다. 사자들은 후미진 곳에서 공포에 떨었고, 호랑이들은 제멋대로 쏘다녔다.

맹수의 제왕 전쟁 피도 눈물도 없다

하이에나는 사자나 호랑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이에나 방사장은 전기철선으로 사자-호랑이 거주지와 구분돼 있는데, 수사자가 3~4m 앞으로 다가와 포효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이에나는 지구력이 좋아 야생에서도 사자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

호랑이는 본래 독불장군(獨不將軍)인데, 92년부터 95년 사이는 떼로 몰려다녔던 것이다. 지금도 뭉치면 살 텐데 흩어져서 창피를 당하고 있다. 92년부터 집단 공격이라는 이상행동을 보이던 호랑이들은 95년께 본성을 되찾았는지 단독생활에 들어가면서 패배의 역사를 답습했다. 한국인들은 집단성에서 호랑이를 닮았는가, 아니면 사자에 가까운가.

야생 호랑이들은 두 살이 지나면 유아독존(唯我獨存)이다. 형제나 부모도 경쟁자일 뿐. 권력에서 밀려나면 굴종하는 수밖에 없다. 반면 사자는 고양잇과 동물로는 특이하게 집단생활을 한다. 한 사자가 호랑이와 맞붙으면 떼로 몰려가 응징한다. 사자와 호랑이의 싸움에서 사자가 대체로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집단의 사자들이 단독자 호랑이를 누른다는 얘기다.

맹수의 제왕 전쟁 피도 눈물도 없다

키아라(맨 왼쪽)는 비너스와 함께 아이디-테크노 형제의 총애를 받는 암사자다. 그러나 질투가 동한 젊은 암사자들에게 자주 공격을 당한다. 키아라의 등은 상처가 전혀 없는 다른 암사자들과 달리 발톱 자국으로 가득하다. 로즈(가운데)와 보우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키아라가 반격하고 있다.

호랑이의 시대는, 호랑이들이 야생의 본성을 되찾아 흩어질 때-호랑이 제국이 내분으로 쪼개졌을 때-비로소 가족을 꾸린 수사자 포철에 의해 끝났다. 차례차례 호랑이들을 거세한 포철의 가족은 ‘왕가(王家)’로 격상되었다. 포철은 천하에게 ‘왕위’를 내놓는다. 천하와 포철의 왕위 다툼은 엎치락뒤치락 이어졌다. 비너스가 기억하는 ‘전설의 사자왕’이 바로 천하다. 천하의 치세는 태평성대였다. 천하는 호랑이와 사자를 하나로 아울렀다. 비너스는 천하의 품에서 권력의 맛을 알았고, 수컷을 다스리는 법을 익혔다.

외부의 적을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뜨린 ‘사자 제국’은 현재 크게 넷으로 쪼개져 있다. 외세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내분이 일어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사자 제국은 여제 비너스가 거느린 아이디-테크노 형제의 연립 정권(아이디가 왕이지만 테크노의 영향력도 만만치 않다. 테크노는 과격하기론 으뜸이다)과 투스(4·수컷)가 이끄는 서울대공원파(2001년생인 투스·탤런·키바·하울은 서울대공원 출신이다), 갓 어른 흉내를 내기 시작한 쿠쿠(2·수컷)와 사강(2·암컷·비너스의 딸)이 이끄는 쿠쿠파. 그리고 세를 잃은 옛 실력자 여비가 재기를 꿈꾸고 있다.

투스는 아이디-테크노 형제가 여비를 몰아낼 때 아이디 형제의 편에 섰다. 그러나 투스가 테크노의 편을 들어 아이디를 쫓아내거나, 여비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여비를 다시 왕위에 올릴 가능성도 있다. 사자의 세계란 본래 그렇다. ‘합종연횡’‘이합집산’이라는 정치권 용어가 떠오른다. 호랑이 제국을 끝장낸 포철은 동생 인철과 공동 정권을 만들었다가 인철이 천하와 손잡으면서 왕위를 내놓은 바 있다.

넷으로 쪼개진 사자 제국 끊임없는 권력 투쟁

사파리의 숨은 실력자는 쿠쿠다. 비너스가 벌써부터 6세 연하인 쿠쿠 앞에서 교태를 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너스를 얻은 맹수, 천하를 얻는다고 했던가. 이튿날 아침, 아이디가 잠을 자는 사이 쿠쿠가 비너스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쿠쿠는 다른 수사자나 암사자가 비너스에게 다가오면 송곳니를 드러내고 위협했다. 비너스는 쿠쿠의 목덜미와 사타구니를 능숙하게 핥고 또 빨았다. 쿠쿠는 비너스가 다른 수사자를 향해 발을 떼면, 엉덩이를 잡고 매달렸다. 비너스는 쿠쿠를 차기 왕으로 간택할 것인가.

비너스가 쿠쿠를 뿌리치고 투스 앞으로 다가섰다. 쿠쿠의 질투심이 동한다. 수사자 간의 싸움이다. 쿠쿠는 투스의 얼굴을 앞다리로 거세게 내리쳤다. 아직 투스는 쿠쿠의 상대가 아니었다. 젊은 사자의 괴력 앞에 투스는 꽁무니를 뺐다. 큰 싸움을 벌이는 수사자들과 달리 암사자들의 몸엔 상처가 별로 없는데, 비너스의 등은 발톱 자국투성이다. 사강, 로즈(2·암컷), 탤런(4·암컷) 등 다른 암사자들의 질투 때문이다. 젊은 암사자들은 수사자들의 눈을 피해 비너스를 공격한다.

맹수의 제왕 전쟁 피도 눈물도 없다

착호는 F1이다(백호의 유전인자를 가졌으나 엄밀히 말하면 백호는 아니다. 사진에서는 백호처럼 보이나 몸에 누런 털이 많다). 착호의 어머니는 백호, 아버지는 F1이었다.
곰은 사자 호랑이보다 머리가 훨씬 좋다. 남웅이 사람의 동작을 그대로 흉내내고 있다. 곰은 쇠로 만든 철문을 사이에 두고 사자, 호랑이와 격리돼 있다.

비너스와 쿠쿠가 수런거리는 사이 카시오(6·암컷)가 무료했던지 호랑이들에게로 향한다. 순간이었다, 비너스가 카시오를 따라 사자들을 이끌고 호랑이 구역으로 향한 것은. 호랑이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했다. 어떤 호랑이는 바위 꼭대기로 올라갔으나, 그곳도 속수무책이긴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단 한 마리의 호랑이는 예외였다. 한국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십육강. 그는 배를 땅에 붙이고 어깨를 곧추세웠다. 호랑이의 힘은 수염에서 나온다. 수염은 공기의 흐름을 잡아내 더듬이 구실을 한다. 광폭하게 호랑이들을 윽박지르던 테크노가 갈기털을 날리면서 십육강이 올라앉은 바위에 올라탄다. 십육강은 수염을 꼿꼿이 세우고 자세를 더욱 낮춘 뒤 으르렁거렸다. 일대일 맞장이었다.

호랑이 제국 꿈꾸는 타고난 싸움꾼 십육강

십육강은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그는 공동 정권의 한 축을 무찔렀다. 호랑이는 싸울 때 사자보다 빠르다. 치고 빠지는 전법을 구사하는데, 뒷다리로 버티고 서서 앞발 둘로 연거푸 가격한다. 순발력에서 앞서는 이유다. 반면 사자는 앞발 하나를 축으로 세워놓고 다른 발로 공격해 호랑이보다 파괴력이 세다. 십육강은 호랑이의 장점을 제대로 살렸다. 테크노의 훅을 연거푸 피한 뒤 정확하게 안면을 가격하길 수차례. 십육강이 가공할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하자, 쩔쩔매던 테크노는 꽁무니를 뺀다. 이빨은 최후의 일격을 의미한다. 대개의 싸움은 주먹질로 끝나지만 상대가 타격을 입고 큰 약점을 보이면 이빨로 숨통을 끊는다.

소란스러운 전쟁이 끝난 뒤 싸움에 끼어들지 않은 유일한 사자 아이디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곤 포효했다. 사파리의 호랑이와 사자들이 언제 소란을 피웠냐는 듯 숙연해진다. 다만 십육강은 달랐다. 십육강은 자세를 싸움질할 때처럼 낮추고 아이디를 노려보았다. 맞장에선 그 누구도 당할 수 없을 듯 보이는 한국호랑이 십육강은 ‘호랑이 제국’의 부활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 비너스는 어느 틈엔가 아이디의 옆 자리를 차지했다. 사강을 품에 안은 쿠쿠는 아이디가 영 못마땅한 눈치다. 제법 어른 흉내를 내는 쿠쿠의 갈기털이 곧추선다. 소슬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주간동아 2005.11.01 508호 (p56~60)

사진·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 글·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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