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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잘했다고, 9년 더 하래요”

국제해양법재판소 박춘호 재판관 두 번째 취임 … 세계 바다 분쟁의 심판관으로 변함없는 활약 예고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9년 잘했다고, 9년 더 하래요”

“9년 잘했다고, 9년 더 하래요”
“종신직에 가까우니 좋겠다구요? 어이쿠, 벌을 받는 셈이죠.”

박춘호(75·사진)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이하 해양재판소) 재판관이 10월2일자로 9년의 2차 임기를 시작했다. 박 재판관은 해양재판소가 신설된 1996년부터 초대 재판관(총 21명)으로 일해 왔기 때문에 이번 임기가 끝나는 2014년이 되면 모두 18년을 근무하는 셈이 된다. 그때 그의 나이는 84세.

해양 분쟁은 예고 없이 일어난다. 그때마다 박 재판관은 비행기로 11시간 걸리는 독일 함부르크로 날아가 수천 쪽에 달하는 소송 자료를 읽고 토론하는 ‘중노동’을 감내했다. 그는 이를 두고 ‘명예’가 아닌 ‘벌’이라고 표현했지만, 그의 중노동은 한국의 권리를 지켜내는 보루 구실을 하기도 했다.

6월22일 미국 뉴욕에 위치한 유엔 본부에서는 바다를 끼고 있는 147개국 대표들이 모여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들을 뽑는 선거가 치러졌다. 7명의 해양재판관(아시아 몫 2명)이 새로 뽑혔는데, 박 재판관은 득표율 3분의 2를 넘기며 재임에 성공했다(찬성 101표, 무효 27표, 반대 19표).

“올해 초에는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남태평양의 사모아까지 수만km를 돌며 선거운동을 펼쳤어요. 그리고 뉴욕에 선거 캠프를 차려놓고 선거 직전까지 100여개국 유엔 대표들을 일일이 만나 지지를 호소했지요. 외교통상부와 해양수산부의 헌신적인 노력과 제 체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를 향한 국제사회의 질문은 한국이 처한 국제적 위상과 무관치 않았다. 동북아시아 대표로는 중국과 일본만으로 충분한데, 왜 조그만 ‘사우스 코리아’ 출신을 선출해줘야 하냐는 것. 게다가 한국이 강점을 지닌 원양어업 산업을 견제하려는 해양 강대국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해양재판소 서열상 두 번째 위치에 오르게 돼

“우리는 바다 아니면 못살게 돼 있잖아요. 제3세계 국가들에는 한국인 특유의 스킨십과 인류의 공동재산인 바다를 함께 지키자는 동병상련의 정서로 접근했고, 강대국들에는 지난 9년간 재판관으로 일한 업적으로 승부를 걸었지요.”

그의 재선을 두고 정부 관계자들은 “전 세계를 돌며 발로 뛰었기에 이뤄진 일이라기보다는 그의 상품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해양 강국인 영국의 재판관 후보가 1차 투표에서 33표밖에 나오지 않았던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확인해준다.

실제로 박 재판관은 지난 9년간 학문적 업적을 쌓았음은 물론이고, 해양재판소의 출판 사업을 기획했다. 또한 한국의 국제교류재단의 후원을 받아 제3세계 학자들을 위한 국제인턴십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 신생 해양재판소의 기틀을 잡는 데 노력했다.

박 재판관은 연임에 성공함으로써 해양재판소에서 서열 두 번째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때문에 3년마다 치러지는 차기 재판소장 선거에서 소장으로 추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사회에서 70대는 한창 일할 젊은 축에 속해요. 해양재판소 경력으로 서열이 두 번째라고 해도 나이순으로 따지면 일곱 번째밖에 되지 않아요. 아직도 밤에 남아 일하며 학식과 경륜을 더 쌓아야 합니다. 허허.”

75세란 고령에도 사무실 불을 켜고 정진하는 모습에서 ‘지리산 산골 촌놈’인 그가 ‘세계 바다 분쟁의 심판자’로 우뚝 서게 된 비결을 엿볼 수 있었다. 박 재판관은 이미 6개 국어에 능통한데도 요즘 러시아와 베트남어 공부에 여념이 없다.

고려대 법대 교수를 지낸박 재판관은 현재 건국대 석좌교수, 사이버독도해양청장으로 일하며 많은 젊은이들을 만나고 있다. 그때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감상적 애국주의가 아닌 국제적 감각을 키워달라”고 강조한다.

“독일 해양재판소 사무실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HYUNDAI(현대)와 HANJIN(한진) 마크가 선명한 한국 배들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유럽 출신 재판관들이 빠르게 성장한 한국의 해양업을 놓고 시기하곤 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위상은 바다 때문에 가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주간동아 2005.11.01 508호 (p47~47)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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