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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100년 명문高/계성

민족혼 숨쉬는 영남사학의 자부심

대구 만세운동과 개화기 신학문 주도 … 자유로운 교풍과 지덕체 겸비 인재 양성

  • 대구=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민족혼 숨쉬는 영남사학의 자부심

민족혼 숨쉬는 영남사학의 자부심

고색창연한 계성학교 전경.

“동포들아, 오늘부터 우리는 독립이다. 다 함께 뭉쳐라!”(1919년 3월8일 궐기한 계성학교 학생들)

1919년 3월, 만세운동의 불길은 대구에도 닿았다. 계성학교 교감이던 김영서 씨와 교사 최경학, 최상원 씨 등은 만세운동을 일으키는 데 의기투합한다. 학생들도 분기탱천했다. 김삼도, 이승욱, 허성도, 김수길, 김재범, 이이석 군 등은 계성학교 아담스관 지하실에서 서울에서 도착한 독립선언서를 등사한다. 학생들은 고향의 부모에게 고별편지를 띄우고 일제에 맞섰는데, 3월8일 대구 봉기를 신호탄으로 경북지역은 독립운동으로 회오리친다.

영남지역 최초의 중등교육 기관인 계성고등학교(대구 중구 대신동)가 내년 10월15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대구만세운동은 고색창연한 교사(校舍)와 더불어 계성고의 가장 큰 자랑이다. 아담스관, 핸더슨관, 맥퍼슨관 등 이 학교의 건물들은 계성고의 100년 역사를 고스란히 품에 안고 있다. 계성고의 건물들은 영남지역의 개화기 건축물 가운데서도 조형미가 특히 빼어나다. 김재현 교감(59회)은 “우아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교사는 계성고의 상징”이라며 “아담스관을 볼 때마다 선배들의 독립만세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며 웃었다.

민족혼 숨쉬는 영남사학의 자부심

계성고 1학년 학생들이 교정에서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초대 교장 안의와(한국명, James E Adams) 선교사의 이름을 딴 아담스관 벽면엔 이 학교의 교훈이 새겨져 있다. ‘인외상제지지본(寅畏上帝智之本)’. 이 독특한 교훈은 잠언 1장7절을 한자로 쓴 것으로,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니라’는 뜻이다. 20세기 초반 기독교 정신을 근간으로 서구의 신학문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고, 100년 역사를 이어오며 명문 사학으로 자리매김한 계성고의 학생들은 “오랜 역사를 가진 계성학교에 다니는 게 자랑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일제강점기 계성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은 처음엔 열등감을 가졌다고 한다. 주로 대구고보나 대구농·상고에 떨어진 학생들이 계성학교에 들어왔는데, 교장까지 미국 사람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이 학교를 2~3년 다니면서 학생들은 자부심을 갖게 됐다. 교사들의 수준도 이웃 학교들보다 높았고, 다른 학교들보다 크게 앞선 서구식 교육을 했기 때문이다. 한 졸업생은 “핸더슨 교장은 한국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피압박 민족인 우리에게 해방자 같은 느낌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계성학교는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명문으로 발돋움했다. 계성학교 출신 문인, 예술가들은 한국 근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박목월(시인·23회), 김동리(소설가·21회), 김성도(아동문학가·21회), 박태준(작곡가·5회), 현제명(작곡가·8회) 선생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조선 신극의 선구자인 홍해성(연극인·18회) 선생, ‘임자 없는 나룻배’의 감독인 이규환(영화인·9회) 선생도 계성학교의 세례를 받았다. 박목월 선생은 모교 강단에 서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 계성고는 바야흐로 중흥기를 맞는다. 다소 침체돼 있던 학교가 옛 영화를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계성고는 1960년대 중반 1년에 60명씩 장학생을 모집한다. 이때 입학한 장학생들은 대부분 명문대에 진학했고, 현재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인사가 되어 있다. 이들은 계성고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하다. 1960년대 후반 학교를 다닌 레인콤 양덕준 사장(56회)은 재학생들의 우상이다. MP3플레이어 ‘아이리버’로 세계시장을 석권한 양 사장은 얼마 전 학교를 찾아 강연했는데, 대선배를 맞은 학생들의 환호는 폭발적이었다.

한나라당 김석준 의원(56회)도 이 무렵 장학금을 받으며 계성고를 다녔다. 김 의원은 “기독교에 기반을 둔 자유로운 교풍과 지덕체(智德體)를 겸비하게끔 한 교육이 계성고가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된 이유”라고 말했다. 당시 계성고 졸업생들은 졸업하기 전까지 유도 초단을 땄어야 했다. 김 의원 역시 유도 초단인데, 그는 “유도 초단 가락으로 서울대 재학 시절 씨름선수로도 활동했다”며 웃었다. 박세진 한국법제연구원 원장, 김병일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김 의원과 동기다.

문화·예술계 거물 배출 … 안병근·김재엽 등 유도부도 빼놓을 수 없어

한국 유도는 계성고를 빼고는 논할 수 없다. 안병근(68회), 이경근(68회), 김재엽(70회) 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만 3명. 단일 학교에서 특정 종목 금메달리스트를 3명이나 배출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계성고 유도부는 1981년부터 1983년까지 3년간 각종 대회에서 총 18연승을 기록하는 ‘불멸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남기진 계성학교총동창회 부회장(51회)은 “계성학교는 법조계와 학계, 정치권 등에서 큰 족적을 남겼는데, 문화·예술계와 체육계, 특히 유도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과 민주노총 이수호 전 위원장은 김 의원의 1년 선배인 55회 동기다. 김 장관은 ‘공부 장학생’으로 이 학교에 들어왔고, 이 전 위원장은 학교 잡무를 하는 ‘근로 장학생’이었다. 둘은 절친했다. 박정희 정권에 항의키 위해 학교 방송실을 점거하려다 함께 무기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부 장관과 민주노총 전 위원장으로서 두 사람은 거세게 부딪쳤다. 이 위원장은 “김 장관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고 쏘아붙이면서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평준화 이후 계성고는 겉으로 보기에 내리막길을 걷는다. 명문대 진학률에서 ‘대구의 강남’이라 불리는 수성구에 자리한 학교들에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100년의 역사가 허투루 쌓인 게 아닐 터. 계성고는 100주년을 고비로 옛 명성을 뛰어넘는 학교를 만들고자 하고 있다. 청사진은 이미 마련됐다. 교사 이전과 자립형 사립고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정인표 교장(56회)은 “계성의 목표는 대구 최고가 아니라 한국 최고의 사학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대 계성학교총동창회 회장(38회·전 동아건설 부회장)은 요즈음 전국을 누비고 있다. 학교발전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다. 총동창회는 최근 계성장학회를 등록했고, 서울에 계성학숙을 지어 수도권으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의 보금자리로 꾸릴 계획이다. 박 회장의 노력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장학기금과 건설기금은 모두 교우들의 기부금으로 채울 요량인데, 박 회장은 “100주년을 계기로 계성의 뿌리(졸업생)들이 계성엔 불가능은 없다는 걸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과 총동창회는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에 여념이 없다. 재력이 단단하기로 소문난 재단과 학교, 총동창회가 머리를 맞대고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100주년을 맞는 내년엔 계성발전세미나, 3·1 만세운동 재현, 3·1운동 기념비 건립, 100주년 기념 상징탑 제작, 100주년 기념 체육대회, 100주년 기념 대수양회 등 40여개의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정 교장은 “100년이라는 역사는 허투루 쌓인 게 아니다”면서 “옛 명성을 뛰어넘는 다음 100년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05.11.01 508호 (p14~16)

대구=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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