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6

2005.10.18

고집 센 과학자들 노벨상 먹었네

창의적 발상 기존 사실이나 통념 뒤집기 … 로빈 워런·배리 마셜 올 생리·의학상 영광

  •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2005-10-12 17:0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고집 센 과학자들 노벨상 먹었네

    ① 테오도어 헨슈 ② 존 홀 ③ 리처드 슈록 ④ 로이 글라우버 ⑤ 배리 마셜과 로빈 워런 ⑥ 로버트 그럽스 ⑦이브 쇼뱅

    세상에는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실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진실인 경우도 있지만, 나중에 선입관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상대성이론의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물리학 학설은 무조건 옳다는 선입관을 버렸기에 새로운 이론을 만들 수 있었다.

    10월3일에 발표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호주의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학 배리 마셜 교수와 로열 퍼스 병원의 로빈 워런 박사도 의학계의 선입관을 깬 대표적인 사례다.

    많은 의사나 연구자들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만성질환은 유전이나 환경적 이유 때문에 생긴다고 믿었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속이 쓰린 증상을 보이는 위궤양도 당시 의학 서적에는 스트레스, 자극적인 음식, 유전적 요인 등이 원인이라고 기록돼 있다. 게다가 위벽 세포는 염산이나 황산보다도 강한 산성인 위산을 분비한다. 위에서 음식물을 잘게 부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 속이 이렇게 ‘극한’ 환경이니 많은 연구자들은 당연히 어떤 세균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79년 워런 박사는 만성위염 환자의 위 점막을 관찰하다가 세균처럼 보이는 나선 모양의 것들을 발견했다. 이것들이 있는 근처 부위에는 늘 염증이 나 있었다. 만성질환은 세균과 관련이 없다거나, 위에는 세균이 살 수 없다는 당시의 통념을 뒤로하고 워런 박사는 동료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이 나선 모양 수수께끼의 정체를 밝히는 연구에 착수했다. 그리고 이것이 세균임을 확신하고, 82년 학회에서 발표했다. 그러나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는 미치광이로 몰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한 사람, 바로 배리 마셜 교수만은 워런 박사의 이 발견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결국 마셜 교수는 실험실에 위 속과 같은 환경을 조성한 다음, 이 세균을 직접 키우는 데 성공했다. 워런 박사의 주장을 실제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구역질 감수 헬리코박터 직접 먹어

    마셜 교수는 이런 증명에도 믿지 않는 일부 의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급기야 헬리코박터를 직접 먹었다. 속이 쓰리고 구역질이 나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 것. 정말 위 속의 세균으로 인해 이런 증상이 생긴다면 항생제를 먹을 경우 세균이 죽기 때문에 치료가 돼야 한다. 물론 마셜 교수의 증상은 사라졌고, 90년대 들어 학계는 비로소 위염이나 위궤양이 이 세균에 감염돼 걸리는 병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미 알려져 있던 현상에 대해 지나치지 않고 학문적으로 설명해낸 끈질긴 노력에도 영광이 돌아갔다. 주인공은 10월4일 노벨 물리학상을 거머쥔 미국 하버드대학 로이 글라우버 교수.

    빛이 일으키는 각종 현상은 입자와 파동이라는 빛의 두 가지 성질로 설명된다. 전등이나 태양의 빛 속에는 성질이 각각 다른 여러 빛들이 모여 있다. 이에 비해 레이저에는 특이하게도 일정한 성질을 가진 빛만 모여 있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과학계의 어느 누구도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여기에 도전한 사람이 바로 글라우버 교수다. 글라우버 교수는 전등에서 나오는 빛의 경우 빛 알갱이, 즉 광자가 마구 헝클어진 채 움직이나 레이저는 광자가 질서를 지키며 움직인다는 이론을 만들었다. 전등 빛이 무질서하게 마음대로 이동하는 군중이라면, 레이저는 ‘열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인들인 셈이다.

    글라우버 교수는 이 이론에서 레이저 빛의 특성을 수학공식으로 설명해내는 데 성공했다. 어떤 현상을 공식으로 유도했다는 것은 그 현상을 여러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얘기다. 결국 글라우버 교수의 연구로 인간이 빛을 주무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실제로 글라우버 교수와 함께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 콜로라도대학 존 홀 교수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테오도어 헨슈 박사는 글라우버 교수의 업적을 바탕으로 레이저를 이용해 1000조분의 1초라는 극히 짧은 시간을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발달을 거듭해 현재 초정밀 시계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같은 첨단기술에도 응용되고 있다. 또한 형형색색의 레이저도 개발됐다. 향후에는 레이저로 상영되는 3차원 입체영화까지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새로운 물질 만들어내려는 시도

    화학산업 분야에서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계속 이뤄져왔다. 71년 프랑스 페트롤연구소의 이브 쇼뱅 박사는 화합물 안에서 손을 잡고 있는 원소들이 서로 자리를 바꿀 수 있도록 유도하면 전혀 다른 신물질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 아이디어를 현실로 이끈 이는 MIT의 리처드 슈록 교수. 그는 금속을 이용해 촉매를 개발했다. 촉매는 손잡고 있는 ‘원소 커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파트너를 가로챈다. ‘바람둥이’ 촉매에게 파트너를 빼앗긴 원소는 하는 수 없이 다른 파트너와 손을 잡게 돼 결국 새로운 원소 커플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물질이다.

    그러나 이 촉매는 공기나 물에 닿으면 금방 무기력해지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로버트 그럽스 교수는 공기나 물에 잘 견디는 또 다른 촉매를 개발해냈다. 슈록 교수의 촉매가 주변 환경에 민감한 바람둥이였다면, 그럽스 교수의 촉매는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는’ 카사노바급인 셈. 바람둥이 촉매 덕에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소프트렌즈, 목욕탕 욕조, 플라스틱, 의약품 같은 다양한 화합물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 세 과학자는 10월5일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기존 사실이나 현상을 뒤집어 보거나 해결하려는 창의적인 시도가 올해 노벨의 후예 8명을 탄생시킨 셈이다.



    댓글 0
    닫기